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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러분은 어떤 꽃을 좋아하시는지요? 취향에 따라 나이에 따라 좋아하는 꽃도 다르다고 하는데 취향이야 각양각색이니 뭐라 말할 수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화사하고 큰 꽃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저의 경우는 작고, 단순하게 생긴 꽃들이 좋습니다. 색깔도 너무 화사하지 않은 것을 좋아합니다.

 

이슬 한 방울이면 꽉 찰 것만 같은 작은 꽃의 이름이 ‘나도물통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많이 웃었습니다. 저 물통이 채워봤자 얼마나 채우려고 하는 생각 때문이었죠. 제주도 어느 오름 자락에서 만난 후 4년여 만에 남도에서 만나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야, 나는 너 만나려면 제주도에나 가야 하는 줄 알았어. 게다가 간다고 만나는 것도 아니고 시기를 맞춰가야 하니 이젠 영영 널 못 볼 줄 알았지.”

 

 

이렇게 나도물통이처럼 작은 꽃들은 참 많습니다. 나도물통이는 색깔이나 예쁜데 작은데다가 색깔도 별로인 꽃들, 그래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하는 작고 못생긴 꽃들이 있습니다. 그 꽃들이 오늘의 주인공들입니다.

 

달래는 꽃보다 차라리 줄기가 멋진 꽃입니다. 작아도 가만 살펴보면 제법 볼만합니다. 작고 못생긴 꽃이 당당하게 하늘을 향하는 모습을 보면 기특하기까지 합니다.


‘그래, 이렇게 살아야지. 작고 못생겼다고 기죽을 이유 하나도 없지.’

 

작으면 색깔이라도 화사했으면 좋으련만, 작은 꽃 중에는 녹색을 띤 꽃들이 있습니다. 이파리에 가려 꽃이 피었다는 것을 제대로 알리지도 못하니 어쩌면 더 서러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아무리 못 생긴 꽃, 작은 꽃이라도 기죽지 않고 피어납니다.


“내가 살아가는 데는 이 정도의 꽃이면 딱 좋은데 뭘.”

 

개구리발톱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씨가 맺히면 씨방의 모습이 영락없이 개구리 지느러미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인데 익살스럽게도 ‘개구리발톱’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동물들의 이름을 따서 진 많은 이름 가운데에서도 참으로 특이한 이름을 가진 식물이죠.


“작고 못 생겼다고 꽃 아닌가요? 참, 난 단 한 번도 내가 못생겼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것은 당신들의 기준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가치기준으로 재단하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다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아는 것처럼 재단해 버리고, 쓸모없는 잡초라 하고, 오로지 인간들에게 소용되는 것만 소중하게 여기다가 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긴꼬리산호랑나비를 아시나요? 내가 없으면 그네들도 살 수 없어요. 내 이파리를 갉아먹을 때야 징그럽고, 싫지만 그들이 하늘을 나는 것을 보면 참 내가 대견스럽죠.”

 

자신을 다 주어도 결코 다 줄 수 없는 것이 자연입니다. 자연에는 잘생긴 것, 못생긴 것의 구분이 없는 것 같습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최선을 다한 다는 것, 포기하줄 모른다는 것, 절망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 주고도 풍족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장미같이 예쁜 꽃들만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가시가 필요한 것은 아니죠. 나도 가시가 제법 많거든요.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나는 내가 못생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꽃보다는 붉은 열매가 예쁜 청미래덩굴, 열매보다는 이파리가 더 사랑을 받는 식물입니다.

‘망개떡’이라고 들어보셨지요? 청미래덩굴을 ‘망개’라고도 부르거든요. 은은한 향기와 음식이 상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청미래덩굴 이파리 연할 때 망개떡을 만들 준비를 하는 어머니들의 손길이 떠오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어머니, 올해는 우리도 망개떡을 해 먹어볼까요?”

 


습지에 자라는 연복초, 복수초와 뿌리가 연결된 풀이라는 이름인데 혹시나 근처를 찾아봐도 복수초는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같이 있는 곳도 있겠지요. 아시다시피 복수초는 얼마나 예뻐요. 거기에 비하면 연복초는 꽃이라고 할 수도 없죠. 그래도 줄기 꼿꼿하게 펴고 화들짝 꽃피운 것을 보면 경쟁의 대열에서 밀려나 힘없이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들이 뭔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 않나요?


“나는 나대로 살아가면 되는 거지요. 비교하지 말고, 나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죠.”

 

다닥다닥 붙어 피는 꽃만큼 다닥다닥 붙어 맺히는 산초열매, 산초향은 아주 독특해서 생선비린내를 없애거나 누린내를 없애는데 좋습니다. 추어탕을 끓일 때에도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이죠. 연한 이파리는 또 얼마나 향이 좋은지 막된장에 이파리 서너 개만 올려놓고 먹어도 입안에 산초향이 가득하지요.

 

“내가 품은 향기는 온 산을 뒤덮을 만도 하지요.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향기를 품고 살아가는 자부심에 난 늘 기쁘죠.”

 

 

오늘 소개하는 작고 못생긴 꽃 중 으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꽃입니다. 작은데다가 별 향기도 없고, 쓰임새도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서울 하늘에서도 그다지 만나기 어려운 것도 아니니 그야말로 별 볼일 없는 놈일 수도 있죠. 그러나 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나에 대해서 아직도 모르는 비밀이 많아요. 그 비밀을 밝혀내는 것은 당신들 몫이에요.”

 

못 생긴 꽃들, 잡초 하나 허투루 존재하는 것들 없습니다. 작고 못 생겼어도 꽃입니다. 그 작고 못생긴 꽃들에게 자꾸만 눈길이 가는 이유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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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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