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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연일 화제다. 한미동맹의 새로운 관계 정립,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간 논의, 한-미FTA 등 각종 굵직한 의제들이 다뤄질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한국 여론을 미국으로 집중시키고 있다.

 

모두들 한미동맹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가운데, 4월 17일에는 다소 의아스러운 기사가 신문을 장식하였다. "이명박, 북한에 연락사무소 제의" 기사가 그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남북 연락사무소 제의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이제야 대북대화로 돌아섰다는 낙관적 전망을 제시하기도 하고 또 일각에서는 '이제 공은 북한측으로 넘어갔다'는 의견도 보이고 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지만 공통점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변화'될 조짐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사물의 현상에 집착한 나머지 본질적인 접근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과 '대결' 중

 

현재 이명박 정부는 취임 후 두 달이 채 안되는 짧은 시간에 UN 인권이사회에서 북한인권문제를 제기하고 북핵문제와 개성공단을 연계하며 북한을 자극했다. 동시에 '키 리졸브' 한-미 군사훈련과 더불어 김태영 합참의장이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론을 흘리는 등의 대북무력공세도 빠짐없이 가해왔다. 이명박 정권의 대북공세는 방미기간에도 지속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4월 16일 반기문 UN사무총장을 만난 자리에서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하였으며 미 상-하원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는 민간 대북방송의 송출을 허용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렇듯 이명박 정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북한 길들이기'에 나서면서 북한과 '무언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명박식 대북공세의 절정은 '비핵, 개방 3000'이라는 대북정책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북한을 시장경제체제로 전환시킴과 동시에 북한주민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에 이를 정도로 경제적 지원을 하겠다는 '비핵개방 3000'은 핵문제와 경제지원이라는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의제를 마음대로 끼워 맞춘 조합에 불과하다.

 

북한은 "미국의 안보위협" 때문에 핵을 개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안보위협문제를 해결하면 되고 6자회담도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북핵문제를 남북경협에 억지로 끌어다 맞추겠다는 것이다.

 

경제지원으로 미국의 안전보장을 받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북한이 '비핵개방 3000'에 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북한이 응하지 않는데 남북경협이 잘 이루어질리 만무하다. 결국 '비핵개방 3000'은 논의되면 될수록 북핵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남북경협도 활성화될 수 없는 무용지물 정책일 뿐이다. 이렇듯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을 제시하고 남북관계 결렬의 책임을 한국의 제안에 응하지 않은 북한측에 떠넘기려 한다.

 

연락사무소 제안의 숨은 발톱

 

이명박 대통령의 연락사무소 제안도 대북대결정책 연장선에서 존재하는 반북대결적 제안이다. 그 이유는 첫째로 연락사무소가 국가 대 국가의 정식 외교관계 전 단계 조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연락사무소는 북-미가 수교를 하기 전에 평양과 워싱턴에 설치하는, 말 그대로 국가와 국가의 관계에서 존재하는 외교적 조치이다.

 

그런데 남북관계는 통일로 나아가는 잠정적 특수관계이므로 연락사무소가 아닌 별도의 개념으로 정립되어야 한다. 남북 사이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면 다음에는 수교를 맺고 대사관을 두자고 주장할 수 있다. 이는 그야말로 남북을 영원한 두 개의 코리아로 분열시키는 결론을 낳고 만다.

 

둘째로 연락사무소가 제기되는 시점 문제이다. 이명박 정권이 연락사무소를 거론하는 지금 시점은 오히려 미국과 일본이 적극적으로 대북 연락사무소를 추진해야 할 상황이다. 북한과 미국은 4월 8일 싱가포르 합의를 상호 확약하는데에 이르러 가까운 시일 내에 9․19 성명 2단계 조치가 완료되고 3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이 경우 한국전쟁 종전선언 등에서 북-미 정상회담도 전망되며 북-미간 연락사무소 설치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될 수 있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북한과 이렇다 할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못하는 일본 역시 전향적으로 나와 북-일 연락사무소를 개설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 설치해야 할 연락사무소를 이명박 정부가 제안하고 있으니 연락사무소의 진원지가 의심스럽다.

 

세 번째, 연락사무소의 제안 장소가 미국이란 점이다. 애초 연락사무소는 미국측의 제안이었던 듯하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연락사무소를 두고 "남북간의 실질적인 관계 진전을 위해 오래전부터 구상해온 안"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하루도 못가 새빨간 거짓말임이 드러나고 말았다.

 

4월 17일, <워싱턴포스트>가 이명박 대통령의 인터뷰 기사에서 "미국은 클린턴 정부 시절 때부터 이 안(연락사무소 개설)을 한국정부에 주장해왔다."(The United States, since the Clinton administration, has urged Seoul to take this step)고 밝힌 것이다.

 

연락사무소가 대결정책의 연장인 것은 네 번째로 북한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제안이기 때문이다. 연락사무소 설치안은 과거 노무현 정부 때에도 지속적으로 고려하였으나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부정적 의미로 인해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10․4 선언 당시 남북은 대화의 필요성을 "정상회담을 수시로 개최", "남북총리회담 개최",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 "남북 국방장관급 회담" 등을 연이어 계획함으로써 연락사무소 수준을 실질적으로 뛰어넘은 방식으로 해결한 바 있다.

 

미일의 연락사무소 필요가 대두되자 이명박 정부가 앞장서서 '연락사무소'를 거론하는 점과 더불어 그 발표자리가 미국인 점은 한미일간의 물밑 공조체제가 있고 남북 연락사무소는 그 공조체제의 결과, 다시 말해 미국의 의중이 집중적으로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고려할 때 연락사무소 발상은 이명박 정부가 아니라 미국정부란 해석이 가능하다. 이 경우 이명박은 미국측의 구상을 읊조려준 앵무새에 불과하다. '연락사무소 제안'이 나온 시점도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 정부 고위직들과 연쇄 회동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니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측 관리의 말을 듣고 그대로 내뱉은 것일 가능성이 높다.

 

연락사무소는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한 '트로이의 목마'다. 이는 향후 남북관계 결렬의 책임을 북한측에 떠넘기려는 미국과 이명박 정부의 '화해의 대북공세'다. 연락사무소 제안으로 결국 남북관계는 화해가 아니라 지난한 대결의 국면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타격 대상은 6․15 공동선언

 

그렇다면 이명박은 미국의 대북정책을 고스란히 이어받는 상호대결 구도를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것일까? 미국과 이명박 정부의 당면 목표는 6․15 공동선언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6․15 공동선언은 북미회담 타결을 앞둔 미국이 한국사회의 개입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데 있어 최대의 걸림돌이다. 미국은 북핵폐기를 위해 북미관계의 일시적 개선을 감수하고 있는데 6․15 공동선언이 이행되면 미국이 한국정부에 개입할 가능성이 현격히 줄어들고 마찬가지로 동북아시아의 패권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미국은 6․15 공동선언을 파탄시켜 남북관계를 긴장의 틀에 묶어 북미관계가 일시적으로 개선되더라도 남북화해 분위기 속에 남북이 통일로 가는 것을 막고자 한다.

 

미국과 이명박이 6․15 공동선언을 부정하는 이유는 6․15 공동선언이 남북관계 발전의 총적인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제1항인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민족자주선언은 미국과 이명박으로 하여금 잠을 못 이루게 만들 항목이다. 남북관계에서 자주적 해결이 중시된다면 필수적으로 한미동맹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또한 6․15 공동선언 2항의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는 항목 역시 미국과 이명박은 결코 인정할 수 없다. 남북 통일방안의 공통성을 인정한다면 한국정부도 통일문제에 나서야 하며 남북관계 개선과 상호교류, 경제협력 사업으로 신뢰를 꾸준히 높여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로 한미정상회담을 추진 중인 미국과 이명박은 6․15 공동선언을 파기하기 위한 단계적 수순에 돌입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6․15 선언으로 '트로이 목마' 저지해야

 

남북관계에서 연일 부정적인 발언을 쏟아내던 이명박 정부는 미국에 가서 고위급 관리들을 잇따라 만나는 자리에서 '연락사무소'라는 제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는 북미회담의 2단계 타결이 임박한 현 시점에서 미국측의 입장과 조언이 반영된 결과일 뿐 이명박 정부가 나름대로 구상한 화해의 손짓이 아니다.

 

연락사무소 제안을 보면 미국과 이명박은 북한에 대한 창을 거두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연락사무소 취지를 설명하는 자리에서도 청와대 대변인은 "북한인권 등의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며 인권문제를 거론해 북한이 그나마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마저 봉쇄해버렸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강경한 공세로 취임초기부터 친미적인 행각에 제동을 가하려 하고 있다. 이를테면 창과 창의 대결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사회의 6․15 공동선언 이행 국면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대한 담론이 시민사회에서부터 형성되어 한반도 평화의 시대에 남북관계를 재규정하는데로 나아가야 한다. 이명박의 친미냉전 폭주를 멈추는 유력한 해법은 6․15 공동선언이다.

덧붙이는 글 | 곽동기 기자는 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원입니다.


태그:#이명박, #한미동맹, #남북관계, #비핵개방, #6.15공동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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