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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상계3동 뉴타운 후보지
 서울 노원구 상계3동 뉴타운 후보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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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총선이 끝난 뒤 '뉴타운 논란'으로 시끄럽다. 일부에선 뉴타운 건설로 표심까지 바뀌었다고 분석했고, 몇몇 후보들은 거짓 뉴타운 공약을 했다고 비난받고 있다.

논란에서 한 발 비껴나 '뉴타운'이란 말에 주목하고 싶다. '뉴타운'이란 신도시쯤으로 바꿀 수 있을 듯 싶은데, 주택 형태는 똑같다. 모두 아파트를 뜻하며 그것도 고층 아파트를 말한다. 단독주택이나 다세대주택은 뉴타운에서 아예 빠졌다. '뉴타운=고층아파트단지'는 하나의 공식이 돼버린 것이다.

뉴타운이 왜 꼭 고층아파트단지여야 하는가에 대해선 아무도 의문표를 달지 않았다.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서일까?

2006년 나온 책이긴 하지만 <아파트의 문화사>는 아파트가 어떻게 우리 시대 주택의 표본이 됐는지를 설명해준다. 지은이는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박철수 교수. 그동안 <한국공동주택계획의 역사> <일본의 현대하우징> <도시공동체론> <지방화시대의 도시건축> <소설 속 공간산책> 등 여러 권 책을 펴냈다. 이번 책은 그 동안 낸 책에서 지금 시기에 맞게 재미있는 사례 위주로 엮었다.

국내 최초 아파트는 1956년 중앙아파트

박철수 교수가 쓴 <아파트의 문화사>
 박철수 교수가 쓴 <아파트의 문화사>
ⓒ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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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아파트는 언제 등장했을까. <아파트의 문화사>에 그 답이 나온다. (주)중앙산업이 1956년 서울 을지로4가-청계천4가 사이 주교동 230번지에 건설한 중앙아파트가 국내 최초다. 집엔 달랑 방 하나뿐이었지만 수세식 화장실에 입식부엌을 갖춘 이 집에 쏟아진 관심이 대단했다고 한다.

비록 1개 주거동에 12세대가 거주하는 3층짜리 건물이었지만, 당시 1층 한옥이 대다수인 가운데 3층짜리는 지금 63빌딩만큼이나 위용을 과시했다고.

지금과 같은 단지식 아파트의 원조는 1962년 도화동에 만들어진 마포아파트다. 주위에 담장이 있고 넓은 공지와 주차장, 어린이 놀이터 등 지금 아파트 단지와 여러모로 닮았다. 당시 아파트 준공식에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참석할 정도로 국가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새로운 주택 형태로 정부가 관심을 가졌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아파트에 대해 국민들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수요가 없으니 공급도 없을 수밖에. 1970년 우리나라 총 주택수는 443만3천여채였는데, 당시 아파트는 3만4천여채로 0.77%에 불과했다.

아파트는 '저소득층 주택' '질 낮은 주택'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져 있었다. 지금과는 정반대다. 당시 시민아파트 평균 평수가 8평일 정도로 방 크기도 작았다.

당시 사람들은 아파트보다는 마당 딸린 단독 주택을 얻는 게 꿈이었다. 지은이는 잡지 <주택>에 실린 수기를 통해 당시 상황을 전달하고 있다.

"아파트로 이사 간 첫날 저녁, 나는 밥상 위에 일거리를 펼쳐놓은 아빠를 가로막고 앉아 밤새도록 이야기를 강요할 만큼 기뻤다. 때로는 코피를 흘리면서도 조금도 싫증난 기색 없이 일을 계속해가는 억센 아빠의 손을 쥐고 나는 몹시 감격해하는 얼굴을 아끼지 않았다.…우리 소유의 아파트를 가진 즐거움이 있기는 했지만 그 상태에서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아빠는 계속 부업을 놓지 않았고, 직장에서 꾸준히 일한 보람이 있어 계장으로 승진했다.…모든 일이 잘되어, 순조롭게 금년 10월 말 새로운 장소로 짐을 옮겼다. 김장도 끝냈고, 이해 겨울이 지나면 봄 뜰에서 파릇파릇 잔디의 새순이 돋아날 때 나는 꽃씨를 뿌리려는 꿈에 부풀었다."

강남 개발과 함께 아파트는 순식간에 국민들 속으로 들어온다. 넓은 강남 택지를 개발하면서 집단 아파트 단지를 건설한 것.

1990년대 이후 전체 주택에서 아파트 비율은 급상승 곡선을 그린다. 전체 주택건설 사업량에서 재건축사업에 의한 아파트 건설이 차지하는 비율이 1993년엔 12.2%였다가 1994년엔 17.8%, 1995년엔 37.6%로 뛰어올랐다.

새로 짓는 주택도 대부분 아파트였다. 신규 주택 가운데 아파트 비율이 1996년엔 78.1%, 1997년 81.3%, 1998년 85.9%로 증가했다. 1999년 신규 주택 중 연립주택 비율은 1.9%, 단독주택은 8.2%, 다세대주택은 4.4%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건설교통부가 밝힌 바에 따르면 2006년 신규 주택 중 아파트 비율은 87.9%로 90%에 가깝다. 전국 주택건설 총계 46만9503가구 중 아파트가 41만2891가구를 차지한 것.

이런 과정을 거쳐 2006년 12월 말 전체 주택 가운데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52.7%로 높아졌다. 그동안 단독주택 비율은 급하락했다. 1990년 472만7000가구였던 단독주택은 2006년 426만4000가구로 줄었고, 비율은 66.5%에서 32.2%로 떨어졌다.

나홀로아파트, 논두렁아파트, 병풍아파트... 꼴불견 아파트들

아파트는 현대인들의 욕망을 자극하면서 꿈의 대상이 됐다. 동덕여대 교수 채완이 발표한 논문 <아파트 이름의 사회적 의미>에서 아파트 상표명에 나타난 우리 시대 사회상을 일곱 가지로 요약했다. 웰빙 바람, 신분상승과 과시 욕구, 지성과 첨단생활의 축구, 예술적 생활의 추구, 가정의 행복 추구, 꿈과 희망의 추구, 부자열풍.

문제는 아파트 집값을 올리기 위한 일에는 누구나 관심을 쏟지만 환경의 질을 높이는 데는 건축업자나 건축가, 언론 모두 둔감한 편이다. 지은이는 그런 문화가 '나홀로아파트' '논두렁아파트' '병풍아파트'를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나홀로아파트는 단독주택지역에 돌발적으로 솟아오른 형태다. 주변과 어울리지도 않는 '요상한' 모양이다. 논두렁아파트도 흔히 볼 수 있는 형태. 논밭에 아파트만 덩그러니 들어선 것을 말한다.

병풍아파트는 도시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산이나 강을 막아서 시민들의 공유자산인 자연경관을 누릴 수 없도록 만들었다. 자신들만 조망권을 누릴 수 있는, 이기적인 형태다.

지은이는 소설 속에 그려진 아파트를 통해 어떻게 사람들이 아파트에 빠지게 됐는지 진단한다. 책 속에 소개된 소설은 모두 15편.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를 비롯 <모델하우스>(서하진), <비탈진음지>(조정래), <겨울손>(서성란), <스물 셋 그리고 마흔 여섯>(이순원), <타인의 방>(최인호), <녹천에는 똥이 많다>(이창동), <부활무렵>(공지영) 등 1960년대 소설부터 최근 나온 소설까지 망라돼 있다.

그 중 1999년 나온 김숙의 <오래된 붉은 벽돌집>은 아파트에 빠지는 이의 심리를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남편에게 뿌리내리지 못한 제가 먼저 집에 목숨을 걸기 시작했는지 아니면 끊임없이 새 집을 찾아 헤매는 저를 견디지 못한 남편이 먼저 바깥으로 나돌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언제부턴가 저는 남편의 손 씻는 일을 까맣게 잊고 말았습니다. 45평짜리 아파트가 제 앞으로 떨어진 날부터였을 것입니다.…물론 저도 처음엔 세 식구 등을 맞대고 오순도순 살아가기 위한 집 한 채를 갖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꿈이 이루어지자 허기와도 같은 욕망이 또 다른 집으로 눈을 돌리게 했습니다.…새 집을 손에 넣을 때마다 이제 더는 부유(浮游)하지 않고 그 집에 닻을 내리리라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더 이상 집을 짓지 않는다면 모를까, 더 비싼 집, 더 화려한 집에의 유혹은 번번이 제 심신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공선옥의 <한 데서 울다>는 <오래된 붉은 벽돌집>이 나온 지 3년 뒤인 2002년 나온 책이다. 이 책에선 아파트에 대한 환상과 실제 살면서 겪게 되는 불편이 충돌하면서 새로운 아파트를 찾게 된다고 설명한다.

"아파트는 온통 소음의 도가니였다. 남편은, 좀 시끄러우면 어때, 라고 말했다. 집 없는 것보다 낫지, 라고도 했다. 처음에는 남편의 말에 수긍하기도 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것이 아니었다. 견딜 수 없이 화가 끓어오르기도 했다. 내가 이런 '집구석'을 마련하려고 그 고생을 했던가, 싶어서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그러니까 정희의 '집 보러 다니기'의 대장정은 정작 '내 집 장만'을 한 연휴부터 시작되었다. 남편이 출근을 하고 큰 아이들이 학교를 가고 시어머니가 노인정에 나가고 나면 정희는 부리나케 이제 겨우 돌쟁이 막내를 놀이방에 맡긴 뒤 마치 도둑질을 하러 나가는 것처럼 소음 가득한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서러움이 그녀를 그렇게 하게 했다."

지은이는 청약률이 100대 1을 넘어서는 아파트가 다른 아파트에 비해서 그다지 주거환경이 좋지는 않은 것 같다고 의아해한다. 지은이는 청약률이 높은 이유로 "'불황에 강하며, 가격회복이 빨라 거주자를 안심시키고 투자자의 눈길을 끄는 집'이라는 업체의 선전문구와 '분양권 전매허용에 따른 차액보장'을 내세운 일부 부동산 중개업자의 사탕발림에 현혹되어 뭉칫돈을 들고 분양사무실을 찾았을 터이다"라고 냉정하게 진단한다.

주택 수명 영국은 141년, 우리는 고작 14.8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른쪽이 아파트단지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른쪽이 아파트단지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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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가 아파트에 대해 메스를 들이댔지만 아파트 무용론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파트를 주택으로 인정하면서 접근하자고 말한다. 그는 아파트를 '상품'으로만 인식하면서 온갖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본다.

재건축을 통해 집 가치를 높이기 위해 15년쯤 지난 아파트에 대해선 '안전하지 못하다'는 조사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심리와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찬거리를 파는 길가 할머니들이 내몰리는 현실을 지은이는 받아들이기 힘든 듯하다.

너무나 짧은 우리나라 주택 수명도 기이하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었다고 가정하고 신축주택은 수명이나 내구성이 다한 재고주택을 대신하는 것이라고 해서 지은이가 재고주택 갱신 기간을 분석했다. 이 분석은 달리 말하면 주택의 수명이 된다.

분석에 따르면 영국은 141년으로 가장 길고 미국이 103년, 프랑스가 86년, 독일이 79년이다. 일본이 30년으로 짧은 편이다. 우리나라는 14.8년으로 일본의 절반 수준이다. 분석 방법에 따라 기간은 조금씩 달라지는데, 우리나라 아파트 평균 수명은 30년 정도라고 한다.

'상품' 가치에는 주목하면서 아파트를 '작품'으로는 인정하지 않는 이중성도 지금 아파트 문화를 만든 주범이라고 꼬집는다. 지은이에 따르면 그 대표 주범 중 하나는 언론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경우와는 달리 아파트는 건축가의 땀과 노력이 배어있는 건축작품으로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례나 기록을 축적하거나 전문가를 육성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이 그저 광고수입을 위해 부동산 섹션의 한 면을 홍보성 기사로 채워나갈 뿐이다."

지은이가 결국 아파트의 '상품' 가치보다 주거공간이라는 점에 주목해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문하는 것이다.

즉 지금 초고층아파트가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물려줄 만한 주택인가, 부모를 봉양하면서 자식을 잘 기르자면 공간 구조가 어떠해야 하는가, 이웃과 교류를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사회 약자를 위해선 어떤 시설과 공간이 있어야 하나 등이다.

지난 3월 주택공사 아산신도시사업본부는 건물 평균수명이 100년 이상 가는 장(長)수명 공동주택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화장실이나 방 구조 변경 등 필요가 생길 때 이를 바꿀 수 있도록 설계한 것. 그 때 그 때 바꾸면 되기 때문에 불편한 상태로 살다가 건물을 통째 무너뜨릴 필요가 없다. 이 땅에 아파트가 등장한 지 50여년이 지난 뒤에서야 오래 가는 아파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건물만 오래 가는 것은 의미없다. 조합원들이 모두 동의했으니 허물어달라고 요청하면 막을 도리가 없다. <아파트의 문화사>를 쓴 박철수 교수가 말한 것처럼 '살 만한 아파트, 삭막하지 않은 아파트'가 되기 위해선 어떡해야 하는지 지금부터 함께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아파트의 문화사

박철수 지음, 살림(2006)


태그:#아파트, #주택수명, #아파트의문화사, #박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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