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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정권'으로서는 10년만의 고위 당·정·청 협의회였지만, 정부와 여당은 현안마다 의견 충돌을 빚었다. 정권을 교체하고 국회 과반수 의석까지 차지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안정적 국정운영을 하려면 '갈 길이 멀다'는 얘기가 절로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과 정부는 18일 오전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강재섭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 한승수 국무총리, 류우익 대통령실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첫 고위당정협의회를 열었다. 당정은 인수위 시절 두 차례 정책협의회를 가진 바 있지만, 이명박 정부 공식 출범 이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총선에서 과반의석을 확보한 만큼 여당 지도부의 어깨에는 힘이 들어갔다. 한편으로 이들은 최근 정부가 보여준 '좌충우돌'에 대한 실망감도 숨기지 않았다.

 

일장훈시하는 여당 지도부, 바짝 자세 낮춘 국무총리

 

강재섭 대표는 회의 시작부터 "우리가 여당이라고 무조건 정부 편을 들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강 대표는 "최근 혁신도시 논란, 학교 자율화 문제, 추가경정예산 편성 문제 등 당정간의 협의나 조율이 안된 정책들이 일방적으로 발표되거나 잘못 알려져서 국민들에게 불편과 혼란을 안겨드린 것은 심히 유감"이라며 "여당과의 사전 협의, 정치권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도 "최근 보면 정부의 설익은 정책이 언론에 발표되면서 정책혼선을 가져오는 사례가 빈번하다"며 "정부가 발표하면 우리가 뒤치닥거리하는 식으로 가면 안 된다"고 섭섭함을 토로했다.

 

안 원내대표는 각 정부 부처별 당정협의가 이뤄지는 과정을 상술한 뒤 "당 정책조정위는 말할 것도 없고 상임위 간사들과 협의를 갖고 혼선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주문했다.

 

여당 지도부의 '일장 훈시'에 국무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은 거듭해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한 총리는 "한 때 국회에 몸담고 있었던 사람으로서 국회, 특히 여당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당정이 긴밀하게 협의하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다짐했다. 류우익 실장도 "초기에 정부와 청와대를 안정적으로 꾸려내고 선거를 치르느라 사실 경황이 없었고, 제가 개인적으로 경험이 미숙해서 도움을 못 드렸다"고 자세를 낮췄다.

 

그러나 각론에 들어간 후에도 양측의 긴장감은 팽팽히 이어졌다.

 

한나라당은 추경예산 편성을 위한 법 개정을 요구하는 정부의 요구를 일축했다. '17대 국회 중 한미FTA 비준안 처리'의 경우 양측이 쉽게 의견 일치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여당이 갑자기 피해대책의 보완을 요구해 청와대와 정부측 인사들을 당황케 했다.

 

① "내수진작 위해 추경예산 써야" 대통령 의지에도 정부-여당 입장차 '여전'

 

이명박 대통령은 13일 기자회견에서 "내수 진작을 위해 지난해 걷힌 추가경정 예산을 쓰는 방안을 임시국회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미국에 가기 전에 특별히 지시한 사항인 만큼 재정경제부로서는 국가재정법을 고쳐서라도 추경예산을 써야겠다는 입장. 그러나 국회가 2006년 9월 여야 합의로 추경예산의 사용요건을 ▲ 전쟁 등 대규모 재해 ▲ 경기침체와 대량실업 등으로 제한하는 방향으로 국가재정법을 개정했기 때문에 정부의 뜻이 관철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

 

한승수 총리는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강만수 재정경제부 장관에게 정부 측 입장을 설명할 기회를 줬다.

 

강 장관은 "올해 경제성장률이 저하될 것이 우려되고 내수부진 현상이 심화되고 고용부진도 심화되는 등 경제지표가 좋지 않다"며 "작년 세계잉여금 15조3000억원을 지방교부세 정산과 국가채무 상환에 우선 투입하고 남은 4조8000억원 중 3조원을 추경예산 편성을 통해 재정지출에 쓴다면 경제성장률이 0.2% 상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이 야당 시절부터 인위적인 경기부양이 아니라 감세를 통한 내수 진작을 얘기했지만, 효과가 나타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니 단기처방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 총리도 "지난 정권이 초기에 지나친 경기부양을 시도해 실패한 적이 있어 당이 우려하는 걸 이해한다"며 "이번에 내놓은 제안은 경기부양책이 아니라 경기중립적 정책"이라고 강 장관을 거들었다.

 

그러나 여당의 입장은 확고했다.

 

이한구 정책위의장은 이명박 정부가 '작고 알뜰한 정부'를 강조해온 점을 상기시키며 "경제정책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수립돼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추경편성보다는 감세를 통해 내수진작을 도모하는 게 맞다"고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이 의장은 "국가재정이 방만하게 운영되지 않도록 법을 개정했는데, 지금 추경예산을 쓰자고 법을 고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정부 주장의 모순점을 꼬집었다.

 

한 총리는 "앞으로 당정이 긴밀히 협의해서 해결책을 내놓도록 하자"며 아무 결론도 없이 논의를 매듭지었다.

 

② 여당 "FTA 피해대책 먼저 마련해야"... '비준안 임시국회 처리'도 삐긋?

 

한미FTA 비준안의 임시국회 처리도 당·정간의 의사소통이 잘 이뤄지는 듯 했지만, 여당은 이날 "확실한 피해 보상대책이 수립하다"며 제동을 걸었다.

 

이한구 의장은 "FTA 비준동의안 처리도 중요하지만 피해보상대책을 함께 시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자 외교부 차관이 "피해대책을 이미 마련해서 발표했다"고 답했다. 그러자 여당 참석자들은 너나 없이 "그런 정책이 있었냐? 우리도 모를 정도로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고 정부를 질타했다.

 

이 의장은 "그것으로는 미흡하고 훨씬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내가 지금 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니 곧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방미기간에 쇠고기 협상을 타결짓는 등 FTA 비준안 처리에 박차를 가했던 정부로서는 맥이 빠진 순간이었다.

 

여당의 조윤선 대변인은 "피해대책이 병행되지 않으면 비준동의안 처리에도 어려움이 예상되지 않겠냐? 당이 선후 관계를 분명히 말한 것은 아니지만, 피해대책이 미흡해서는 비준안 처리가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한승수 총리는 이 부분에 있어서도 "적극 검토하겠다"며 논의를 마무리했다.

 

 

③ 강재섭 "어떻게 이런 일이?"... 혁신도시 논란으로 질타 받은 한 총리

 

야당과 지자체들이 반발하고 있는 '혁신도시 재검토' 논란에 대한 질타도 이날 모임에서 어김없이 나왔다.

 

강재섭 대표는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정부여당이 지방의 균형발전에 소홀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도대체 혁신도시 문제가 어떻게 불거져 나온거냐"고 따져 물었고, 한 총리는 "정부로서는 정책 변경을 결정한 바가 없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한 총리는 "지방의 균형발전은 이명박 정부의 중점과제중 하나이고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감사원이 문제점을 지적한 후 보완책을 점검중"이라고 덧붙였다.

 

강 대표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된다.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혁신도시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부여당은 결국 이날 협의회에서 현안들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사항 없이 양측의 이견만을 확인한 채 회의를 마무리했다.

 

조윤선 대변인은 "가장 중요한 협의사항은 국민적인 관심 현안과 민생 현안에 대해서 당·정·청이 사전에 긴밀하게 협의하고 협조해서 정책을 수립하도록 하자고 합의한 것"이라고 전했다.


태그:#강재섭, #강만수, #이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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