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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지지세가 뚜렷한 대구. 대구 중에서도 땅값, 아파트값이 제일 비싸고 교육열이 가장 높아 대구의 강남이라고 불리는 수성구. 저는 이곳, 대구 수성구에서 20년째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성구에 대해 잘 알뿐만 아니라 이곳의 선거분위기가 지금까지 어땠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대구는 지난 10여 년 동안 한나라당이 모든 선거를 싹쓸이해 온 지역입니다. 지난 17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탄핵 역풍으로 한나라당이 전국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음에도, 16대에 이어 12개 지역구 모두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특히, 대구에서도 수성구는 지난 17대 총선에서 수성갑 이한구 후보가 득표율 65%로, 수성을 주호영 후보가 득표율 62%로 대구의 다른 선거구보다도 높은 득표율로 당선된 지역입니다.

 

선거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한나라당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선거가 별 의미가 없어진 곳이 대구, 그중에서도 수성구입니다. 심지어는 '한나라당 간판만 달면 강아지도 당선될끼야!'라는 웃지 못 할 농담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대구 수성구입니다.

 

선거가 이처럼 긴장감도 없고, 경쟁도 없다보니 선거철이 되도 후보들의 치열한 유세는 물론 후보자 얼굴도 잘 볼 수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대구 수성구는 선거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는, 전국에서 가장 조용히 선거를 치르는 그런 지역입니다.

 

그런데 요즘, 이런 수성구 특히 수성을이 선거분위기로 시끌벅적 해졌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자주 듣게 됩니다. 수성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인 유시민 후보와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주호영 후보가 맞붙은 선거구입니다. 전국적으로 화제가 된 선거구답게 두 후보 간의 자존심을 건 유세전이 아주 볼만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유시민 후보에 대한 대구 시민들의 반응이 의외로 상당히 좋다고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수성갑에 묶여 있는데, 이곳에는 후보자 현수막 외에는 별다른 선거운동이 없다보니 이웃 수성을의 시끌벅적함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또 '대구 수성구하면 반 노무현 정서가 전국에서 가장 강한 곳인데, 노무현 사람인 유시민이 말을 아무리 잘 한다 해도 대구사람들이 설마 호응을 해줄까봐!'하는 의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진짜 수성을이 선거 때문에 시끌벅적한지 5일과 6일 이틀에 걸쳐 두 후보의 주말 유세현장을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유시민 후보 유세현장

 

 

먼저 유시민 후보의 유세현장을 찾은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얼핏 봐도 수백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유시민 후보를 연호하고 있었고, 선거홍보 음악에 맞춰 율동을 따라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유시민을 돕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유시민 지지자들이 유권자들의 흥을 돋우면서 유세현장은 월드컵 응원을 방불케 했습니다.

 

주호영 후보 유세 현장

 

 

주호영 후보의 유세 현장 역시 유시민 후보 유세 현장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도 붐볐습니다. 특히 지난 5일 토요일은 연예인 서세원씨가 함께 유세를 펼치며 유권자들을 즐겁게 했습니다. 흥에 겨운 유권자들이 그 자리에서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이며 지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 현장 역시 신나는 공연장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이틀 동안 두 후보의 유세현장을 돌아본 결과 수성을은 선거분위기로 정말 뜨거웠습니다.  과거 대구 수성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치열하고, 신명나는 선거운동이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유권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느 흑색선전도 없었고, 청중을 인위적으로 동원한 것 같은 어색함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두 후보의 열띤 연설과 눈길을 사로잡는 톡톡 튀는 선거운동만 있었습니다.

 

유세현장 분위기만으로는 누가 당선이 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양측 모두 뜨거웠습니다. 그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유세현장에 있던 유권자들 중에는 "니는 이번에 누구 찍을라카노?"라고 서로 의견을 묻는 이들도 있었고, "유시민이 자가 우리한테 8만원씩(기초노령연금) 준 거는 알아줘야 된데이", "뭐라카노! 주호영이가 이명박이 측근인데, 대구 잘 될라카믄 자를 뽑아야지!"하며 갑론을박하는 어르신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속으로 저는 '유시민, 주호영이 대단하긴 한 모양이네, 수성구 사람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거 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차 저와 함께 유세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50대 중반의 한 아저씨가 혼잣말로 이러는 것이었습니다.

 

"이야~, 인자 여도 선거분위기 나네!"

 

그렇습니다. 분명 대구 수성을은 과거 선거분위기와는 전혀 다릅니다. 유시민·주호영 두 후보들의 뜨거운 경쟁 덕분에 유권자들이 선거에 관심을 보이고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접전지역에서나 볼 수 있었던 긴장감이 대구 수성구에도 감돌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번 주말, 흥겨운 유세현장에 다녀오면서 대구에서도 선거가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이제는 대구에도 정당만 보고 찍는 것이 아니라 후보도 보고, 정책과 공약도 한 번쯤 살펴보고 투표하는 선거문화가 싹트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제 대구에서도 '선거'가 '축제'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조심스레 가져봅니다.


태그:#선거, #유시민, #주호영, #수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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