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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입에 감히 올리기도 무참한 어린이 피해 사건들이 속속 발생하면서 초등학교뿐 아니라 어린이집과 학교들도 '성폭력 예방 교육'을 서둘러 하는가 보다.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도 가을에 예정되었던 유괴·성폭력 예방 교육을 앞당겨 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오늘 어린이집 홈피를 확인하니 상냥한 선생님이 낯선 아줌마의 가면을 쓰고 역할극을 하며 아이들의 안전교육을 하고 있다.

 

그 옆에 선 남자아이는 다섯 살은 되어 보이는데도 선생님이 나쁜 아줌마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잊어버렸는지 잔뜩 겁에 질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다. 급기야 선생님은 아이를 낚아채기까지 하고 아이는 그 안에서 버둥거리는 사진까지 있다.

 

이제 갓 세돌이 지난 어린아이들이 '안전교육'을 받으며 공포를 느낄 것이 마음이 아프다. 아이들 틈에서 열심히 안전교육을 받고 있는 내 아이의 또랑또랑한 눈동자를 보고 있으니 다른 수업 시간에는 그리도 기특하고 대견했던 그 눈망울 앞에 죄책감이 들고 미안해 가슴이 저린다.

 

 

서른 넘은 나도 내 몸 못 지키는데 네살짜리가 어떻게

 

안전을 교육하기 위해서는 곧 아이들이 감히 상상도 못할 공포를 교육해야만 한다.

 

"찻길 건널 때 조심해라. 왜냐하면 차에 다칠 수가 있으니까."

"낯선 사람을 조심해라. 너를 잡아갈 수도 있다, 너를 해칠 수도 있다."

 

갓난아이에게 뜨거운 것을 만지지 못하게 알려줘야 하듯이 공포와 위험을 알게 하는 것은

생존과 안위에 필수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 공포가 우리 어른들의 도덕성과 사회 시스템의 문제로 발생한 것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다른 사회에서는, 혹 다른 시대에서는 불필요했을 공포를 교육하는 것에 대해 반성해야 할지도 모른다.

 

안전교육의 주제는 '내 몸은 내가 지킨다'였다. 네 살짜리 아이가 어떻게 스스로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가.

 

이제 막 걸음걸이가 안정되고 겨우 달릴 줄 아는 아이, 밥을 혼자 먹을 수는 있지만 아무리 배고파도 배고프다는 말을 할 줄 모르고, 제 앞에 챙겨주어야만 그 때서야 허겁지겁 바쁘게 먹는 아이가 말이다. 서른 넘은 나조차도 내 몸을 내가 지키지 못해 밤거리를 다니기가 오싹한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최근 인터넷 뉴스로만 시끄러운 정몽준 후보의 여기자 성희롱 파문을 언론에서 좀 더 공개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때였으면 그저 넘길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아이에게 이러한 공포를 교육해야 하는 사회를 절망적으로 느끼면서 좀더 예민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 후보 성희롱 파문은 성의식에 얼마나 둔감한지 보여준 사례

 

명백한 사실은 하나다. 어떤 변명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상황에서 그 여기자보다 더 어린 남자기자였다면 정 후보가 그런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 부인이 있는 자리였고, 공개된 유세 현장이었다는 사실은 문제의 행동이 성희롱이 아니었다는 근거가 못 된다.

 

오히려 공개된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부지불식간에 그러한 행동이 나왔다는 점은 얼마나 그러한 행동과 의식이 일상화되어 있고 성의식에 둔감한지를 일러주는 적나라한 지표일 뿐이다.

 

아직 우리나라의 성의식은 명백히 성추행을 한 바 있는 최연희 전 의원이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자 지역경제를 살리려 한다는 지역주민들의 지지로 당선이 유력시 되고 있는 수준이다.

 

우리 자신의 성의식의 잣대는 어떠해야 할까? 합리적이고 타당한 기준을 가질수록 우리 아이들에게 부담해야 할 공포의 크기가 줄어들 것임은 분명하다.  


태그:#정몽준 , #성희롱,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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