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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일 진보신당 공동대표 심상정이 부친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필 이럴 때.

 

나는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2004년 2월에 제17대 총선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경선에 나선 심상정을 인터뷰한 인연이 있다. 당시 금속노조 사무처장 자리를 그만둔 지 얼마 안 된 심상정은 민주노동당이라는 둥지에서 새 출발을 앞두고 있었다.

 

말하자면, 권투를 하다가 이종격투기로 경기종목을 바꾼 선수 같이 심상정은 노동운동에서 정치로 경기종목을 바꾸고 나서 데뷔전을 어떻게 치를 것인지 잔뜩 숨을 고르는 중이었다고나 할까.

 

그 후 심상정은 민주노동당 당내 경선에서 비례대표 1번이 되고, 민주노동당이 열 석이나 차지하며 제17대 총선에서 원내진출에 성공한다.
 
4년이 흘렀다. 총선이 돌아왔다. 많은 일이 생기고 많은 것이 변했다. 출중한 의정활동 능력을 보이며 실력있는 국회의원으로 인정받은 심상정은 또 다시 새로운 둥지에서 새로운 시험에 들었다. 민주노동당을 탈당하여 노회찬 의원과 함께 창당한 '진보신당'이라는 새로운 둥지, '지역구 출마'라는 새로운 시험.

 

4년 전의 만남

 

4년 전의 인터뷰라는, 아주 작은 인연이 나를 문상길로 이끌었다. 직접 심상정을 보고 싶었다. '철의 여인' 심상정이 지금 거기에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4월 3일 오후, 동국대 일산병원. 빈소 안에 손님들을 맞느라 분주한 심상정이 있다. 그간의 강행군으로 인해 좀 야윈 듯 했지만 여전해 보이는 심상정과 인사를 나눈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조심스럽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며 4년 전의 인터뷰어에게 반가움을 표시하는 심상정에게 문상객으로서 인사를 한다.

 

손님상이 차려진 곳에 앉아있노라니, 삼삼오오 계속 들어오는 손님을 맞이하던 심상정이 누군가를 이끌고 와서 내 앞에 앉히며 이야기를 나누어보라고 소개해 준다.

 

심상정을 수행했던 남수정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대학원에서 평화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남수정은 작년 6월 5일부터 9월 15일까지 국회의원 심상정의 수행비서로 일했다고 한다.

 

"2004년에 심상정 의원을 언론에서 처음 보고 호감을 느꼈어요. 국회의원의 특권을 폐지하고 포기하려는 것이 신선하고 인상적이었거든요. 저는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약칭 여세연)'라는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모임 회원인데요. 2004년에 6개월 동안 심 의원 의정활동을 제가 모니터링했어요. 기사 스크랩하고 정책자료 모아서 여세연에 제출하는 일이었어요. 심상정 의원을 꼭 하겠다고 자원했죠. 처음 볼 때부터 호감이 있었지만 모니터링을 하면서 더 호감을 가지게 되었고요."

 

심상정은 제17대 국회에서 동료 의원들과 함께 국회의원의 특권 폐지 등을 위해 노력했고, 2004년 12월에 출범한 '국회 개혁을 위한 초선의원 연대모임' 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2006년 2월 최연희 전 한나라당 의원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이 발생하자, 심상정은 동료 의원들과 함께 국회윤리특별위원회에 최 의원을 제소하고 '최연희 의원 사퇴촉구 결의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도록 했다.

 

최연희 의원 성추행 사건 직후인 2006년 3월 심상정은 국회의원이 국회 밖에서 성추행 등 부도덕한 행위를 저지른 경우에도 징계를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하였고, 그 결과 네티즌들이 뽑는 그 해의' 베스트 정치인'으로 선정되었다.

 

"만약 제가 국회에 들어갔는데 국회 내에서 여성 비하나 성차별 문제가 발생하면 절대 가만히 안 있습니다. 단호히 쳐야 합니다." 

 

2004년 <퍼슨웹> 인터뷰에서 심상정이 한 말이다.

 

"심 의원님을 수행하면서 가장 맘 아팠던 일은 작년 여름 상암동 홈에버 노조 점거농성 때 공권력이 투입되는 순간이어요. 잊을 수가 없어요. 매장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조합원 노동자들이 끌려 나갔죠.

 

그 순간 제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으니까 무력감이 몰려왔어요. 글쎄, 저는 우느라 경황이 없어서 사진 찍는 것도 몰랐는데, 옆에 있던 노회찬 의원 보좌관 이 제 우는 얼굴을 찍어서 '어느 보좌관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당시 민주노동당 당원 게시판에 사진을 올렸어요."   

 

아버지를 잃은 막내딸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빈소에는 손님들이 조금씩 더 늘어난다. "아버지 돌아가셨는데 선거운동하러 다닐 수는 없잖아." 한창 바쁠 때인데 선거운동을 못 해서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해주는 누군가에게 심상정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심상정은 2남2녀 중 막내딸이다.

 

- 폐암이셨다면서요? 임종은 하실 수 있었습니까?

"네, 마지막 자리에 있었습니다. 연세(83세)는 있으셔도 건강하신 편이었는데 작년 겨울부터 안 좋으셔서 진단을 받아보니 폐암이셨어요. 진단 받고 나서 약 40일 만에 가셨습니다. 수술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어요."

 

의연하고 담담한 얼굴이다. 금속성 목소리가 차분하다. 아직 실감이 안 날 수도 있다.

 

- 예전 인터뷰에서 가장 속 썩인 자식이었고 노동운동 밖에서는 별로 평가 받지 못한 삶이었다고 말씀하신 게 기억납니다.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나간다고 하니까 처음엔 되겠어 하다가 나중에 될 가능성이 보이니까 태도가 바뀌어갔죠. 국회의원 되니까 아버지가 좋아하셨죠(말끝이 흐려지며 엷은 미소)."

 

- 통합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는데요.

"당대당 통합이 아니고 중앙당이 제안한 것도 아니에요. 통합민주당 후보 본인이 지역 주민들의 뜻을 고려해서 제안한 거지요. 고양의 시민단체 인사들이 강력하게 후보 단일화를 요구했으니까요. 지역정서를 고려한 판단입니다."

 

당일(4월 3일) 문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전화 출연한 심상정은 이렇게 말했다.

 

"이 제안은 우리 한 후보님(민주당 한평석 후보)이 지역 내에 대운하 강행에 대한 한나라당의 견제가 필요하다는 시민사회계 의견을 받아들여서 결단을 하신 거거든요. 그런 결단을 굉장히 높이 평가하고요. 대운하 문제는 전국적으로도 지금 국민들에게 최고의 관심사일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정치적 사안이고 또 정치권에 연대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정책을 매개로 한 그런 단일화는 정치발전에도 도움이 되는 합리적인 그런 공조라고 생각합니다…(중략)…

 

이번에 한 후보님이 저한테 제안하신 것은 대운하 저지를 위한 단일화를 제안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적극적으로 검토를 하고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제 덕양 지역에 대표를 뽑는 자리인데 덕양지역의 특수성도 한몫을 했습니다. 고양시에는 고양시장하고 일산시장을 했다고 할 정도로 불균형이 굉장히 심하기 때문에 6년간 집권한 한나라당 시장을 견제해야 한다는 지역 주민의 요구가 높습니다…(중략)…

 

그리고 정책연대라는 건 당대당 차원도 있을 수 있고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간의 연대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지역 차원에서 한평석 후보가 심상정 후보에 대한 단일화를 요구한 것이지 당대당의 연대나 공조차원은 아니거든요."

 

다시 문상객을 맞으러 가면서 심상정은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꼭 쥐었다.

 

"그러니까 너무들 걱정 마시고 힘든 때이니까 힘내서 잘 하겠습니다."

 

신발을 신고 있는 내 곁에 두 손을 꼭 모으고 지켜 보고 서 있는 이, 얼굴을 보니 심상정의 언니 같다.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지지율이 오르고 있는지 걱정을 많이 하셨지요.

 

이렇게 금방 가실 거라고 생각은 못했지만 고생 오래하고 가신 것보다는 낫다고 가족들끼리 위로하고 있습니다."

 

화정역에서 만난 정태인

 

병원을 나와 화정역으로 갔다. 심상정 없이 출근길 선거유세를 하고 있는 곳. 심상정은 4월 4일 발인을 마치고 늦은 오후부터 선거운동을 재개한다.

 

단체점퍼를 입은 선거운동원들이 서 있는 가운데 '마르고 구부정한 사람'이 전철역을 오가는 사람에게 쉼 없이 고개를 숙이며 심상정에게 한 표를 호소한다.

 

- 혹시 정태인 전 청와대 경제비서관 아니십니까?.

"어제는 원당역에서 두 시간 유세를 했는데 세 사람이 알아봤어요. 원당역은 출퇴근길에 사람들이 마을버스를 타려고 정신 없이 달려가는데 그럴 때 말 잘못 걸면 큰일나요. 표가 더 떨어지죠."

 

- 홍세화 선생님도 심상정 후보 지원유세 나왔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근데 어색해 하셨다면서요.

"요즈음 젊은이들이 홍세화 선생님을 잘 모르죠. 학생들 모인 데서 홍세화 선생 책 읽은 사람 있느냐고 하니까 별로 없었다고 하니까요. 저도 경험하고 있는데 젊은이들에게 말 걸기가 제일 힘들어요. 정치 무관심을 넘어 적대감 같은 게 느껴져요. 요즘 젊은이들이 혼자서 어떻게 해 보려고 하는가 본데 그렇게 해서는 잘 안 되거든요. 전혀 반응 없는 무표정한 중장년 아저씨들도 힘들어요."

 

- 배우 김부선씨나 문소리씨 같은 대중적으로 얼굴이 잘 알려진 분이 아무래도 이런 거리 유세에는 사람의 이목을 끄는데 도움이 많이 되겠네요.

"인지도를 올리는 데는 확실히 도움이 되지요. 그런데, 인지도 올라가는 거랑 그 후보가 좋은 상품인가 여부는 다른 이야기거든요.

 

그런데 지원유세 나와서 이렇게 인사하는 거 말고는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선거법상 정책 선거가 불가능하게 되어 있어요. 길거리에서 이런 식으로 말을 거는 걸로 어떻게 정책설명을 하겠어요. TV토론도 후보 한 사람이라도 거부하면 열 수가 없어요. 토론에 자신 없거나 정책 없는 후보가 거부를 해 버리면 별 수가 없는 거죠."

 

- 선관위가 대운하 관련 집회나 서명운동은 선거법 위반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놓았습니다만.

"그러게 말이에요. 뭔가 열심히 해 보려고 해도 사람을 좌절하게 만들어요."

 

- 요즈음 근황은 어떠십니까?

"보시다시피 이렇게 지내잖아요.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정책과 한미FTA에 대한 강연 가고. 강연 없으면 나와있고. 선거운동 시작된 이래로 강연 일정 없는 날에는 줄곧 나오고 있어요. 다 친구 잘못 둔 죄죠."

 

- 여기(고양 덕양 갑)가 유시민 의원 지역구였다면서요.

"상정이도 시민이도 다 친구인데. 시민들이 심상정과 유시민을 동일시하는 면이 있어요. 지역에 도움이 될까 의구심을 가지죠. 정책선거가 안 되기 때문에 심상정 후보의 장점을 제대로 알리기가 어려워요." 

 

- 미국 경제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일정이 확정되었습니다.

"쇠고기 수입개방이랑 다 풀고 오겠지. 뭐. 내가 예측했던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움직이고 있어요. 규제완화도 다 재벌이 원하는 거잖아요. 이명박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계속 쓸 텐데 그러면 2~3년 후쯤 거품이 빠지게 되면 심각해질 거에요. 우리 수출의 대미의존도가 15% 이하이기 때문에 미국 경제위기로부터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위험은 적지만, 중국을 거치면서 간접적인 타격을 받을 위험이 있지요."

 

경쾌하게 답변하는 중에도 전철역에서 행인이 나올 때마다 재빨리 다가간다. 거의 자동적인 반응이다. 도로변에 선 지원유세차량 위에서는 '인기강사' 이범이 확성기를 잡고 연설 중이다. 심상정의 교육정책을 지지한다면서 심상정이 당선되면 덕양구 고등학교에서 방과후 교사를 하겠다고 나선 사람이다.
 
차량 곁에는 민주노동당 대표를 지냈던 김혜경 진보신당 공동선대위원장이 선거운동원들과 열심히 율동을 하고 있다. 다른 후보들의 선거운동원들도 각기 총천연색의 단체복을 맞춰 입고 오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붙잡으려 제각기 열심으로 애쓰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진보적' 국회의원이 된다는 것
 
문득 2004년 퍼슨웹 인터뷰에서 심상정과 한 마지막 문답이 떠올랐다.
 
- 국회의원 되는 거는 결국 정치를 하는 건데요. 진보정당의 원내 진출이란 역사적인 과제도 막중한 것이고요. 정치가가 되실 준비가 되셨는지? 정치가 심상정, 어떻습니까?
"정치가 심상정이라, 생소하네요(웃음). 선례 없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 부담스럽기는 합니다. 사실 걱정이 많아요. 당의 중심이 튼튼하게 갖추어지는데 복무하고 싶습니다. 원내 진출은 외연의 확장이지만 내실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중심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결국 현실론을 따를 수밖에 없어요. 앞으로 노선 문제가 본격화될 거고 현실이 노선을 규정하는 힘이 엄청날 겁니다. 국회의원이라는 허울은 그럴 듯하지만, 아, 물론 국회의원으로 해야 할 중요한 일이 많죠, 원칙이나 방침 없이 밀려가다가 되려 나중에는 당과 운동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어 내 개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제일 먼저 사라져야 할 대상이 될지도 모릅니다."
 
다시 새로운 시험대에 선 심상정과 진보신당은 어떤 결과를 안게 될 것인가. 4월 9일 제18대 총선이 며칠 안 남았다. 뛰어라, 여기가 바로 선거의 현장이다! 
 

덧붙이는 글 | 인터뷰를 진행한 공숙영 기자는 인터뷰전문웹진 퍼슨웹(www.personweb.com)의 편집장을 지냈고 현재 대학원에서 '국제법과 인권'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태그:#심상정, #정태인, #진보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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