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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대로다. 이명박 정부로부터 괄시를 받아온 북한이 행동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개성이 있는 남북경협사무소 남측 관리들을 철수시킨 데 이어, 서해상에서 수 발의 지대함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또한 외무성 대변인을 통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 및 시리아 핵개발 지원설을 전면 부인하면서 미국이 계속 자신이 할 바를 하지 않으면 핵 불능화 조치를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처럼 남북관계 경고음이 핑퐁처럼 왔다갔다하고, 이것이 교착상태에 빠진 6자회담과 맞물리면서 한반도의 불확실성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그런데 돌파구는 잘 보이지 않는다. 서로간의 불신을 넘어 감정 싸움의 양상까지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가 이미 '치킨게임'으로 들어간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우려가 드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보다 더 비실용적일 수 없다!

 

그런데 정작 오늘날 사태의 중요한 원인을 제공하고, 위기를 관리·예방해야 할 이명박 정부는 뒷짐을 진 채,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만 내놓고 있다. 마치 "핵을 가진 자와 악수할 수 없다"던 김영삼 정부 시절을 보는 듯 하다.

 

김태영 신임 합참의장은 '북한이 소형 핵무기를 개발해 남한을 공격할 경우 어떻게 대처하겠느냐는 김학송 한나라당 의원의 질문에 "중요한 것은 적(북한군)이 핵을 가지고 있을 만한 장소를 확인해 타격하는 것"이라며 '선제공격론'을 언급했다.

 

그런데 '선제공격론'의 상징인 부시 행정부조차도 최근 북한에 대해 선제공격론을 입에 올리지 않고 있다. 일례로 미국의 정보기관 수장인 존 맥코넬은 2008년 2월 미 상원 청문회에서 "북한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전투수행보다는 억제와 강압외교의 목적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북한이 정권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는 군사적 패배에 직면하거나 급변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한 유명환 외교부 장관은 "북핵 문제에 대해 시간과 인내심이 다해가고 있다"고 발언했다. 과거 부시 행정부 발언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그리고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북핵 문제가 타결되지 않으면 개성공단 확대가 어렵다"고 말해, 경협사무소 인력 철수 사태의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이명박 대통령도 통일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한반도 비핵화 원칙이 담긴 91년 남북기본합의서 정신만 강조했을 뿐, 북측이 합의 이행을 강조했던 6.15 공동선언과 10.4 남북정상선언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조금만 실용적으로 생각했다면, 안 해도 되었거나 다른 식으로 할 수 있었던 발언들이다. 실용을 앞세운 정부가 비실용적 발언으로 남북관계의 실용적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총선용인가?

 

그렇다면, 이러한 무위(無爲)의 대북정책 속에서 잇따라 나오고 있는 대북 강경 발언들이 의도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두 가지가 엿보인다.

 

하나는 결국 아쉬운 쪽은 북한이라는 일방적 인식이다. 북한에 할 말을 하고 보편주의 외피를 쓴 '한미동맹의 강화'에 나서더라도, 못 먹고 못 사는 북한이 결국 손을 내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북한으로 하여금 '그래, 아쉬운 쪽이 누군가 한번 해보자'는 식의 반작용을 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다른 하나는 '총선용'이다. 이명박 정부는 총선을 앞두고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계승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면 보수표가 이탈할 것이라는 우려를 갖고 있는 듯 보인다.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가 정통보수를 자임하고 있는 것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계산은 '대북정책을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지 않겠다'던 이명박 정부의 공언을 스스로 뒤집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득표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많은 젊은층과 중도 성향의 국민들이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데에는 기존 보수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대북정책 재검토해야

 

어떤 의도에서 나온 것이든, 이명박 정부는 더 늦기 전에 자신의 대북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자칫 '코리아 리스크'를 야기해, 세계 경제 위기와 맞물려 한국 경제에 더욱 짙은 주름살을 안겨줄 수 있다. 총선이 지나고 한미정상회담 이전까지 남북관계의 악화를 막지 못하면, 감당할 수 없는 위기 국면이 도래할 수도 있다. 꽃게잡이철이 다가오고 있는 것 역시 심상치 않다.

 

이명박 정부는 '설마'하겠지만, 지난 수십년간, 아니 수년간의 남북관계만 돌아봐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추가적인 상황 악화의 방지에 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자존심을 조그만 누그러뜨리고 발상을 전환하면 돌파구는 의외로 가까운 데 있을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6.15 공동선언과 10.4 남북정상선언의 존중 의지를 밝히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것만 언급하는 것이 곤란하다면, 두 선언 앞에 7.4 남북공동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를 함께 언급해도 된다. 그러면서 북한의 인도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쌀과 비료 지원 의사를 밝히면서 이를 위한 대화 제의를 한다면, 확실히 돌파구는 열릴 수 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북한과의 기싸움에서 밀리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또한 상호주의 원칙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기싸움을 고수하는 것은 실용적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 또한 남북관계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원칙은 없다.


태그:#대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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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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