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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중 통일부 장관(자료사진)
 김하중 통일부 장관(자료사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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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파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아무리 영혼이 없는 사람이라도 영혼을 파는 일은 쉽지 않다. 영혼을 파는 자가 겪을 심적 고통을 타자가 어떻게 감히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래서일 것이다. 그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불편해지는 것은.

김하중 통일부 장관의 '반성'을 지켜본 기자들의 마음이 무척 불편했던 듯 하다. 26일 통일부 업무보고 자리에서다. 김하중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날 통일부가 국민의 소리를 경청하지 않고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우려를 자아냈으며, 그런 비판과 우려에 깊은 책임을 느낀다."

"새로운 출발에 앞서 저희는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통일부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대통령의 애정어린 지도편달을 부탁한다."

<한국일보> 염영남 기자나 <한겨레> 이제훈 기자는 그의 이런 발언이 불편했다. 김하중 통일부 장관의 이력을 잘 알고 있는 까닭이다.

염영남 기자는 오늘(27일) 기자칼럼인 '기자의 눈'에서 김하중 통일부 장관의 '영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가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 의전비서관과 외교안보수석으로 DJ의 신임이 두터웠고, 노무현 정부 말까지 중국대사를 역임했다. 그가 두 정권을 거치며 대북 포용정책에 깊숙이 관여했고 그 실천의 현장인 중국에서 열심히 뛴 것을 다 안다."

'햇볕정책 전도사'의 반성

염영남 기자가 기억하는 한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햇볕정책의 전도사"였다. <한겨레> 이제훈 기자가 기억하고 있는 김하중 장관 역시 다르지 않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간 대북정책 추진 과정에서 중추적 구실을 해왔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180도 입장을 바꿔 지난 10년간의 햇볕정책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고백'했으니, 이들 두 기자의 심사가 불편했을 법도 하다.

그의 변신은 청문회 때부터 감지됐다. 청문회에서 김하중 장관은 "나는 직업 외교관으로 주어진 상황에서 대통령이 어떤 방침을 정하면 충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의 말대로 이명박 대통령의 '코드'에 맞춰 과거를 자성하고, 대통령의 지도 편달을 부탁했다.

염영남 기자는 김하중 장관의 이런 모습을 보고 "정말 관료들은 영혼이 없는 것일까"라고 자문했다. 이제훈 기자는 정부 한 관계자의 말을 빌어 보다 직설적으로 김 장관을 비판했다. "솔직히 전임 정부가 그렇게 잘못 했다면 책임있는 자리에 있던 사람으로서 물러나는 게 도리이지, 말을 갈아탄 뒤에 '반성한다'고 하는 게 온당한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비단 김하중 장관뿐만이 아니다. 오늘(26일) 미디어의 모습도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통일부 업무보고를 받고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관계에서 상호주의를 강조하면서 1991년 체결된 남북합의서의 정신을 강조했다. <한겨레>는 이를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이뤄진 남북관계의 성과를 부정하는 데 치중했다"고 평가했다. 다른 미디어들의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01년 10월 5일 김대중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김하중 신임 주중대사에게 신임장을 수여하고 있다.
 2001년 10월 5일 김대중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김하중 신임 주중대사에게 신임장을 수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도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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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마저 <조·동> 따라잡기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이같은 입장 때문이 아니다. 이 대통령의 이런 입장 표명에 대한 일부 미디어의 반응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이대통령의 이같은 입장 천명을 "제대로 방향을 잡은 대북 접근"이라고 평가했다. 김대중·노무현 시절은 "일방적으로 북한의 입장을 수용했고, 지원하려는 정책이 추진됐다"고 평가했다. "대북 대화의 목표가 없었"으며 "대화 자체에 목을 맸고, 대화가 끊어지면 큰일 난 것처럼 허둥"돼 "대화의 주도권은 북한이 쥘 수밖에 없다"고 했다. "6·15나 10·4 공동선언은 이런 잘못된 정책기조가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까지 했다.

<중앙일보>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동아일보>나 <조선일보>가 대북 햇볕 정책에 대해 '북한 퍼주기'라고 맹공을 펼칠 때 그래도 햇볕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랬던 신문이 이제는 그 태도를 크게 바꾸었다. 마음이 불편해지는 이유다.

<조선일보>의 사설 또한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조선일보> 사설은 국군 포로·납북자 송환 문제에 집중했다.

통일부는 업무보고에서 국군 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적 비용 부담을 포함, 모든 수단을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그 방안으로 과거 서독의 정치범 석방거래 사례를 참조하겠다고도 했다. 분단 시절 서독이 비밀협상을 통해 동독의 반체제 인사들을 서독으로 이주시킨 방법이다. 그 대가로 서독은 거액의 현물을 동독 측에 제공했다.

<조선일보>는 이런 서독방식을 그대로 원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돈을 받고 정치범을 넘겨준 일이 밖으로 알려지길 원치 않은 동독 정부의 입장을 감안해 서독은 몇 차례의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비밀에 부쳤지만, 동독보다 더 자존심을 앞세우는 북한 정권이 서독방식이 쉽게 응할 리 없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협상 내용이 공개될 가능성만 보여도 아예 말조차 꺼내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이렇게 주문했다. "상대(북한)에 맞는 우리만의 '한국방식'을 찾아내 이 문제를 풀 수밖에 없다"고. "국정원과 통일부는 바로 이런 일을 하라고 있는 부서들"이라고.

<조선일보>가 말한 '한국적 방식'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전체 맥락에서 이해하자면 과거 동독보다 더 자존심을 앞세우는 '북한'에 맞는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는 주문일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동안 북한에 대해 강경 대응만을 주문해왔던 <조선일보>의 태도에 견주어 보자면 이 또한 마음을 착잡하게 한다.

관료들이라고 해서 영혼이 없는 존재라고 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모독이다. 더구나 그것이 고위 관료일 경우에는 더 그렇다. 우리를 불편케 하는 것은 그들이 영혼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영혼을 파는 모습 때문이다. 미디어가 영혼을 파는 것은 더 그렇다. 이래저래 씁쓸한 통일부 업무보고 풍경들이다.


태그:#김하중, #이명박, #통일부, #남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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