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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천단공원의 중심적 건축물인 기년전. 1420년에 세워진 건축물이다. 천단공원 측이 판매하는 해설자료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기도의식이 행해졌다고 한다.
 북경 천단공원의 중심적 건축물인 기년전. 1420년에 세워진 건축물이다. 천단공원 측이 판매하는 해설자료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기도의식이 행해졌다고 한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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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을 지배하는 나라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는 갔다. 해양을 지배하는 나라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도 갔다. 이제는 우주를 지배하는 나라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물론 이 지구상에 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인공위성이나 우주선을 쏘아 올려 우주과학기술을 선도하고 국제사회를 리드하는 국가를, 좀 과장된 표현으로, 우주를 지배하는 나라라고 부른 것이다.

우주를 지배하는 나라가 지구를 지배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비단 오늘날만의 법칙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 점은 과거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글 서두에서는 예전에는 대륙이나 해양을 지배하는 나라가 세상을 지배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과거에도 우주를 지배하는 나라가 세상을 지배했다고? 앞뒤가 모순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그것이 결코 모순적이지 않은 것은, 과거에도 정신적 영역에서만큼은 우주를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관념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지배력이 육지나 해양에밖에 미치지 못하던 시대에도 정치권력들은 적어도 정신적 영역에서만큼은 우주와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천단공원 내에서 레저를 즐기는 중국인들. 천단공원은 관광지일 뿐만 아니라 레저 연습장의 기능도 하고 있다.
 천단공원 내에서 레저를 즐기는 중국인들. 천단공원은 관광지일 뿐만 아니라 레저 연습장의 기능도 하고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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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전근대 혹은 전통시대에는 하늘과 '접속'할 수 있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할 권능이 있는 나라라는 인식이 존재했다. 제사의식을 통해 하늘과 접속할 수 있는 정치권력만이 진정으로 이 지구를 지배할 수 있다는 그런 인식이었다. 

현대의 세계강국들이 우주를 향해 인공위성 혹은 우주선을 쏘아 올리듯이 과거의 세계강국들은 우주를 향해 '향불'을 쏘아 올림으로써 자국이 하늘과 접속할 수 있는 합법적 존재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래서 천제(天祭)는, 그 누구에게도 복속되지 않은 독립적 강대국의 표상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천제의 전통을 갖고 있는 민족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그 자부심이 대단한 편이다. 독자적 천제의식의 전통을 갖고 있는 한민족과, 자국 군주를 소위 천황이라고 부르는 일본민족에게서 그 같은 강력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을 세계의 중심에 놓는 중국인들에게서도 '하늘과 소통하는 자'로서의 강력한 자부심을 읽을 수 있다. 중국인들의 그러한 정신적 전통을 생생하게 입증하는 곳이 바로 북경 천단공원(톈탄공웬)이다. 전통시대의 '인공위성 발사기지' 혹은 '중화주의의 발사기지' 또는 '하늘과의 접속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컴퓨터로 치면 엔터키에 해당하는 곳이라고 할까?

천단공원을 둘러보는 중국인들.
 천단공원을 둘러보는 중국인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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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 남쪽인 숭문구(충원취)에 소재한 천단은 북경 지하철 5호선 천단동문(톈탄동먼)역에 붙어 있는 곳으로써, 명나라 영락 18년(1420)에 세워진 이래 몇 차례의 개수·증축 공사를 거쳐 청나라 건륭 연간(1736~1795년)에 이르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건륭제 시기는 조선 영·정조 시대에 해당한다.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고대 제천(祭天) 건축물이라고 중국인들이 자부하는 천단 안에는 기년전(치녠뎬)·원구(웬츄)·황궁우(황총위)·단계교(단졔챠오)·장랑(창랑)·재궁(쟈이궁)·신락서(션웨슈) 등 명·청 시대의 고건축물 600여 간이 남아 있다.

그중에서 중심적인 건축물은 기년전과 원구라고 할 수 있다. 제사의식이 이곳들을 중심으로 거행되었다. 그리고 1918년에 공원으로 지정된 이곳은 1998년 12월 2일에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공중에서 천단공원을 내려다보면 중심부의 건축물들을 둘러싼 주변의 넓은 숲이 인상적일 것이다. 숲의 길이가 어찌나 긴지 숲 전체를 다 돌아보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마 여름날 밤에 이곳에 오면 무더위를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공중에서 내려다본 천단공원.
 공중에서 내려다본 천단공원.
ⓒ 도록 <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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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지방(天圓地方)의 구조를 띠고 있는 천단공원.
 천원지방(天圓地方)의 구조를 띠고 있는 천단공원.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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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단공원의 건축구조는 소위 천원지방(天圓地方)의 모습을 띠고 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그 천원지방.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지만, 이 글의 주제와 관련시킨다면 이런 구조는 하늘과 지구의 접속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흥미를 끄는 곳 중 하나는 황궁우의 원형 담벽이다. 이 담벽을 향해 소리를 지르면 그대로 메아리가 되돌아온다 하여 이 벽을 회음벽(回音壁, The Echo Wall)이라고 부른다. 필자가 방문한 날에도 중국인들은 물론이고 서양인들까지 신기한 표정으로 이 회음벽에 자기 이름을 열심히 불러대고 있었다.

회음벽에 고함을 쳐대는 관광객들. 넓은 공원 구경하느라고 다리도 아플 텐데, 목마저 쉬게 할 텐가?
 회음벽에 고함을 쳐대는 관광객들. 넓은 공원 구경하느라고 다리도 아플 텐데, 목마저 쉬게 할 텐가?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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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흥미를 끄는 또 다른 곳은 원구의 한 가운데에 있는 천심석(天心石)이다. 태극석(太極石)이라고도 하는 곳이다. 명·청 시대에는 억조경종석(億兆景從石)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이 지점에 서서 하늘을 향해 축문을 읽으면 소리가 가장 크게 울려 퍼졌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億兆)을 거느린 채 천제를 올릴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늘의 상제도 쉽게 응답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이 천심석을 중시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축문을 읽으면 마이크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소리가 사방으로 잘 울려 퍼진 모양이다. 

천심석을 둘러싸고 있는 관광객들.
 천심석을 둘러싸고 있는 관광객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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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볼 때, 인간과 하늘의 접속지점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인지 천단공원은 상당히 크고도 넓은 편이다. 건축물도 매우 크고 웅장하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숲도 한없이 넓기만 하다. 다른 중국 유적지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천단공원을 다 돌아본 뒤의 느낌은 '다리가 너무 아프다'는 것이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성전의 크기에 관계없이 자기 백성들의 마음의 깊이를 살피신다고 했는데, 혹시 중국의 하나님은 깊이보다는 크기를 먼저 보시는 건 아닐까? 물론 아니겠지만….

천단은 명·청 시대(14~19세기)에 세워진 건축물이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국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하늘에 대한 제사를 통해 자신들이 천(天)의 아들임을 과시해왔다. 일종의 선민의식을 과시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비단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한국·중국·일본 등도 각기 그 나름대로의 선민의식을 가진 셈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중국을 포함한 세계 각 민족이 자신들의 천제의식에 대해서만 우주적 정통성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바로 옆에 사는 한민족이 동맹(고구려)·영고(부여) 등의 독자적 제천의식을 행하는 걸 빤히 지켜보면서도 중국의 한족은 자신들의 제사의식만이 합법적인 것이라고 인식했다. 이 점은 천제를 지낸 모든 민족의 경우에 다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자기 민족만이 합법적인 하늘의 아들이며 이 지구상에서는 자신들만이 '최고'라는 자부심 하에 세계 각 민족이 각각의 천제를 지냈으므로, 결국 이들이 추구한 그 '최고'라는 것은 '상대적 최고'에 불과한 셈이 된다. '절대적 최고'는 없었던 것이다.

 천심석이 있는 원구의 모습.
 천심석이 있는 원구의 모습.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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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중국의 경우에 자신들이 실제로는 '상대적 최고'를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적 최고'를 누리고 있다는 착각을 갖도록 만든 이념적 바탕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예기>였다. <예기> '왕제'편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천자가 순행하고자 할 때에는 류(類, 천신에 대한 제사)를 올리고 의(宜, 지신에 대한 제사)를 올리고 조(造, 조상신에 대한 제사)를 올려야 한다. 제후가 순행하고자 할 때에는 의(宜)를 올리고 조(造)를 올려야 한다."

이에 따르면, 천자와 제후는 자기 영역을 순행하기 전에 반드시 제사를 올려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천자와 제후가 지낼 수 있는 제사의 종류가 달랐다. 천자는 하늘과 땅과 조상에게 제사를 올릴 수 있었지만, 제후는 하늘을 제외한 땅과 조상에게만 제사를 올릴 수 있었다.

천신에 대한 제사는 천자의 고유 권한으로 떼어놓은 것이다. 자신들의 천자만이 하늘과 소통할 수 있다고 못을 박아놓은 것이다. 이런 이념적 바탕을 통해 하늘에 대한 제사를 올리는 자신들의 천자만이 합법적인 하늘의 아들로서 이 지상에서 최고의 권력을 누릴 수 있는 자라는 자부심이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중화주의라는 배타적 특성을 낳은 한 가지 요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예기>의 기록은 처음에는 중국 내에서 천자와 제후의 관계에만 적용되었지만, 이후 중국의 영향력이 확장되면서 중국과 외국의 관계로도 확대 적용되었다. 중국 황제는 자국에게 머리를 숙이는 나라에 대해 독자적인 천제를 지내지 못하도록 강제함으로써 자국만이 정통성 있는 하늘의 아들임을 과시하고자 했다. 어찌 제후의 나라가 하늘에 제사를 올릴 수 있겠느냐며 말이다.

물론 자국 외에도 천제를 지내고 있는 나라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런 '곤란한 경우'에 대처하는 중국인들의 자세는 둘 중 하나다. 전쟁을 벌이거나 아니면 모른 척 하는 것이다. 그냥 모른 척 한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우리의 천제의식만이 합법적'이라는 자기세뇌를 끊임없이 행하면서 말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중국 특유의 선민의식인 중화주의는 천제라는 행사를 통해 표출되었다. 마치 현대의 세계강국들이 우주를 향해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듯이 과거의 중화제국은 우주를 향해 '향불'을 쏘아 올림으로써 자국만이 합법적인 유일 세계강국임을 과시하고자 했다.

그 같은 중화주의의 발사기지 중 하나가 바로 북경 천단이었다. 오늘날엔 비록 공원이라는 이름을 띠고 있지만, 명·청 시대에 이곳은 '중화주의'라는 인공위성을 쏘아 올려 중국의 힘을 세상에 과시하고자 하던 곳이었다.

그러므로 중화주의의 정신적 원천을 살펴보고자 한다면, 북경 천단공원을 한 번쯤 방문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물론 '절대적 최고'가 아닌 '상대적 최고'라는 관념을 전제로 중국의 중화주의를 객관적으로 관찰해야 할 것이다.


태그:#천단공원, #중화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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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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