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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가 심상치 않다. '치킨게임'도 불사할 태세이다. 치킨게임은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자동차 게임의 이름으로, 한밤중에 도로 양쪽에서 두 명의 경쟁자가 자신의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경기를 일컫는다. 핸들을 꺾지 않으면 자존심을 세울 수 있다지만, 그 대가는 목숨이다.

 

물론 '현재' 남북관계가 이 정도까지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양측에서 자동차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지금부터 위기 관리에 나서지 않으면,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는 '경고음'인 것이다.

 

회동 거절, '키리졸브' 훈련, 인권문제 갈등... 어두워지는 남북관계

 

일부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일단 아무것도 하지 않고 두고보자'는 '무위(無爲)의 정책'이라고 일컫는다.

 

적어도 4월 9일 총선 전까지는 이러한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도 많았다.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하듯 북한은 최근까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면서 '관망'하는 듯이 보였다. 남측 정부의 '무위'와 북측 정부의 '관망'이 맞물리면서 당분간 남북관계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는 상태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근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상대방이 손을 내밀었는데 그걸 뿌리치면 그것은 '무위'의 단계를 지나 '무시'가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인 1월 중순 북한으로부터 회동 제의를 받았지만 '목적이 뚜렷하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한 것(<동아일보> 3월 5일자)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리고 2월 25일 이명박 정부가 공식 출범한 이후 '치킨게임'의 불안한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미 양국은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연례적인 비난'으로 일축하고 핵항공모함, 핵잠수함, 이지스함이 대거 동원된 '키 리졸브' 훈련을 강행했다.

 

그러자 북한은 과거 팀 스피리트 훈련에 대한 반발을 방불케 하는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수동적 방어가 아니라 "오랫동안 비싸게 마련해 놓은 모든 수단을 총동원한 주동적 대응 타격"으로 맞서겠다고 말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비싸게 마련해 놓은 수단은 핵무기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3월 1~2일에는 서해상에서 300여발의 해안포 발사 훈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키 리졸브' 훈련 시작과 겹치는 시기이다. 아울러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월 1일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을 전격 방문해 양국의 우호관계를 과시한 것 역시 최근 한미동맹 강화 기류에 북중동맹 강화로 맞서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여기에 인권 문제를 둘러싼 갈등도 표출되었다. 제네바 유엔인권이사회 회의에서 박인국 외교통상부 다자외교실장은 "한국 정부는 보편적 가치로서 인권의 중요성에 입각해 북한의 인권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우려에 대해 북한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의 신중하고 조용한 대북 인권 외교 기조가 바뀌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이에 대해 제네바 북한대표부 최명남 참사관은 답변권을 통해 "한국측은 남북관계에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이러한 무책임한 발언에 따른 모든 결과에 책임져야 할 것"이라며, "한국측의 발언은 한국정부가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합의내용과 정신을 알고 있는지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고 반발했다. 남측의 새로운 정부가 '내정 불간섭'이라는 그간의 남북관계의 합의 정신을 어겼다는 것이다.

 

'3차 서해교전' 경고를 새겨들어야하는 까닭

 

김장수 전 국방장관이 퇴임 직전 합동참모본부 등 군 수뇌부에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북한이 도발한다면 서해쪽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진 것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군의 경계태세 강화를 위한 일상적인 조치라고 보기에는 너무 구체적이고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의 경고 직후 북한이 서해안에서 대규모의 해안포 훈련을 실시한 것은 그러한 경고가 더욱 예사롭게 들리지 않게 한다. 작년 10월 2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긴장의 파고가 낮아질 것으로 기대되었던 서해가 또 다시 남북한의 무모하고도 위험한 치킨게임의 장이 될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 남북한은 서해상에서 구원(舊怨)을 갖고 있다. '연평해전'으로 일컬어지는 99년 1차 교전 당시에 북한은 수십명의 병사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작전수칙을 바꾼 북한은 2002년 6월에 남측 해군에 선제사격을 가함으로써 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물론 2차 교전 당시에도 북한의 피해 역시 컸다. 그리고 남측 역시 2차 서해교전 직후 공세적으로 작전수칙을 바꿨다.

 

 

불안의 조짐은 남북관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핵 신고를 둘러싼 북미간의 갈등은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에서는 올해에도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할 공산이 커지고 있다. 또한 4월 중순으로 예정된 이명박-부시 정상회담 이전까지 북핵 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열리지 않으면, 강경 기조의 대북정책이 다시 등장할 가능성도 높다.

 

여기에는 대북 제재는 물론이고 한국의 대량살상무기(PSI) 및 미사일방어체제(MD) 정식 참여도 포함될 수 있다. 공교롭게도 이와 같은 불안한 시나리오는 서해상의 꽃게잡이 철의 시작과 겹친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병행 악화'가 맞물리면서 한반도가 또 다시 감당하기 힘든 불확실성에 휩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실용적' 예방외교에 나서라

 

이명박 정부의 키워드는 이른바 '실용주의'이다. 이것이 21세기 한국의 전략과 정책의 기조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가의 논란은 많지만, 정작 이명박 정부 스스로 실용주의 원칙에 충실한 지도 의문이다.

 

실용주의는 비용과 이익에 대한 판단을 기초로 결과를 중시하는 태도를 일컫는다. 특히 대외정책에서의 실용주의는 이념이나 윤리에 경도되지 않고 국익을 중시하는 의미로 거론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미국이랑 더욱더 친해지고 북한에는 할 말을 하는 대외정책을 지향하겠다고 한다. 이념과 도덕에 국익을 종속시키지 않겠다고 해놓고는 정작, '미국은 선(善)이요 북한은 악(惡)'이라는 선험적 결론이 대외정책의 프레임에 녹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냉정해야 할 시점이다. 이명박 정부식의 일방적 상호주의는 '아쉬운 쪽은 북한이다'라는 주관적 신념에 기초하고 있다. 북한에 할 말을 하고 보편주의 외피를 쓴 '한미동맹의 강화'에 나서더라도, 못 먹고 못 사는 북한이 손을 내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북한으로 하여금 '그래, 아쉬운 쪽이 누군가 한번 해보자'는 식의 반작용을 야기할 공산이 크다. 실제로 최근 분위기는 그렇게 가고 있다. 김장수 전 장관이 '3차 서해교전'을 경고하고 나선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최선은 예방이다. 이명박 정부가 진정 실용을 중시한다면,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고 3차 서해교전이 발생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대한민국의 안보와 경제에 치명적인 위험을 가져올 수 있는 결과를 막아야 한다. 이러한 상황을 예방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글로벌 코리아'가 아니라 '위험한 코리아'라는 인식이 더욱 확산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실용적인 예방외교를 추구해야 할 까닭이다.


태그:#남북관계, #서해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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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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