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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왕릉을 제외하고 크고 화려한 삼국 통일의 명장 김유신 장군의 묘를 찾았다. 추운 날씨인데도 찾는 이들은 있었다. 흥무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마치 신라왕릉을 보는 듯 화려하고 웅장한 크기로 입구에는 조선시대 비석이 있다. 

십이지신상이 조각된 무덤

크고 화려하다.
▲ 김유신장군묘 크고 화려하다.
ⓒ 김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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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은 삼국을 통일을 한 명장으로 흥덕왕 대에 이르러 그를 흥무대왕에 추봉하였다. 묘는 지키는 12방위에 12지 신상을 조각했는데 머리 부분은 동물상이고 몸은 사람이며 모두 무기를 잡고 평복을 입고 서 있는 모습이다.

둘레로 십이지신상이 새겨져 있다.
▲ 십이지신상 둘레로 십이지신상이 새겨져 있다.
ⓒ 김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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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에는 병풍석을 둘러 난간을 설치하였다. 김유신 장군의 할아버지는 무력(武力)이고, 아버지는 서현(舒玄)이다. 신라에서 금관가야 왕족의 후예들이다. 김유신 장군 묘와 인접한 맞은편에는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릉이 있다.

무덤의 주인공을 밝힌 비석

태종 무열왕릉 입구에는 국보 제25호인 태종무열왕릉의 비가 있다.  비는 현재 거북모양의 받침돌에, 몸위의 머릿돌에는 이무기의 모습을 새겨져 있다. 태종무열왕릉비는 이러한 양식이 나타난 그 최초의 예이다. 거북은 목을 높이 쳐들고 발을 기운차게 뻗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진취적인 신라인의 기상을 표현한 모습이다. 등에는 큼직한 육각형 모양을 새긴 후, 등 중앙에 마련된 비몸을 꽂아두는 네모난 홈 주위로 연꽃 조각을 장식하였다.

조각이 우수하다.
▲ 태종무열왕릉비 조각이 우수하다.
ⓒ 김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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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돌에는 좌우에 3마리씩 6마리의 용이 뒤엉켜 여의주를 받들고 있으며, 앞면 중앙에 ‘태종무열대왕지비’라고 새겨 놓았다. 당시 명필가로 유명했던 무열왕의 둘째 아들 김인문의 글씨이다. 무덤의 주인공의 알 수 있는 중요한 비석으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

이무기들이 여의주를 물고 있다.
▲ 이수돌 이무기들이 여의주를 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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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진 왕

태종무열왕이 바로 뒤에 있는데, 무열왕은 김유신 장군과 함께 삼국 통일의 주역이다.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최초의 진골 출신 왕으로, 본명은 김춘추이다. 신라의 왕릉 가운데 무덤 주인공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왕릉이다.

주인공을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신라왕릉이다.
▲ 무열왕릉 주인공을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신라왕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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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는 왕위에 오른 지 8년만인 서기 660년 6월에 왕이 죽으니 시호(諡號)는 무열(武烈)로, 묘호는 태종(太宗)이라 하고 영경사(永敬寺)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한다.

4기의 큰 대형 고분

무열왕릉 바로 뒷편 구릉에는 4개의 대형 고분이 있다.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토무덤이다. 아직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내부구조 시설은 확실히 알 수 없다. 무덤의 주인에 대해 첫 번째 무덤은 법흥왕릉, 두 번째 무덤은 진흥왕릉, 세 번째 무덤은 진지왕릉, 네 번째 무덤은 문흥대왕릉 등으로 추정하기도 하나 학자들 간에 의견차가 다소 있다.

서악리 고분군이라 하나 주인공들은 왕릉으로 추정된다.
▲ 4기의 대형 고분 서악리 고분군이라 하나 주인공들은 왕릉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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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문와 묘비

무열왕릉 맞은 편 길을 건너면 김인문의 묘와 묘비가 있다. 김인문은 태종무열왕의 둘째 아들이며 문무왕(文武王)의 친동생이다. 당나라에 일곱 차례나 왕래하며 당나라와의 외교에 큰 역할을 하였다. 삼국통일 전후하여 당나라의 힘을 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글씨도 능하여 태종무열왕의 비문을 직접 쓸 정도였다.

당나라에서 관직을 지내다가 죽었는데 당(唐) 고종(高宗)은 그의 관을 신라로 호송하여 보냈다. 효소왕은 김인문에게 태대각간(太大角干)을 추증(追贈)하고 이듬해에 지금의 자리에 장사 지내게 했다.

단순한 형태의 원형 봉토분이다.
▲ 김인문묘 단순한 형태의 원형 봉토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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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는 현재 서악리 귀부라 하여 비각에 보호하고 있는데, 비신과 이수가 없는 거북모양의 비석받침돌만 남아 있고, 거북은 목을 뽑아 들고 멀리 앞을 바라다 보고 있다. 목에 새겨진 다섯 가닥의 목주름은 사실적이면서도 자연스럽다. 거북의 등에 새긴 큼직한 육각무늬 역시 조각솜씨가 뛰어나며, 등 주위에 새긴 구름무늬는 정교하다. 중앙에는 비를 꽂아 두었던 네모난 홈이 마련되어 있다.

김인문의 묘비로 추정된다.
▲ 서악리 귀부 김인문의 묘비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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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가까운 곳에 이렇게 교과서에서나 배운 역사적 인물들이 살아 숨쉬는 유적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경주이다.


태그:#무열왕릉, #김유신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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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문화유적을 찾아 답사를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석진 곳에 우리문화를 찾아서 알리고 문화관련 행사를 좀 더 대중에게 보급하고자 하며 앞으로 우리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나아가려고 합니다. 괌심분야는 역사유적, 석조조형물과 민속,고건축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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