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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날씨는 사람을 한참 헷갈리게 합니다. 밤중엔 겨울이다 한낮엔 봄입니다. 바람은 겨울 끝자락에 봄을 섞어놓고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를 건너갑니다. 그때마다 나이테를 돌아 나온 새 생명의 숨소리가 나무 끝에 앉아 숨을 몰아쉽니다.

 

봄이 오고 있습니다. 봄은 울음기를 머금고 뼛속을 흔들며 가슴을 파고듭니다. 겨울잠에서 깨어나 하품을 하다 기지개를 켜며 비쩍 마른 나무 우듬지 끝으로 달랑 내려와 앉습니다.

 

봄은 낮은 들녘을 일으켜 세우며 옵니다. 봄은 서러운 풀빛, 아리고 시린 잔인한 추억으로 옵니다. 자작나무의 하얀 속살 안으로, 버들강아지 눈곱 사이를 보듬고 복슬복슬 피어오릅니다. 그러나 개 응달 여기저기 잔설이 남아 땅심을 밟아보면 아직 얼음 결이 두터워 서걱거립니다. 산골짝을 타고 내려온 눈물(雪水)로 길바닥이 질척대고, 개울물이 조금씩 불어 살얼음을 녹여냅니다.

 

 

우수(2월 19일) 때가 되면 강물이 풀리면서 수달이 육지로 올라와 물고기를 잡아 강가에 늘어놓고, 기러기는 봄을 피해 겨울을 몰고 북쪽으로 날아갑니다. 바람기가 차갑긴 하지만 매섭지 않아 여린 풀잎과 나뭇가지엔 물기가 돌고 싹이 트기 시작합니다.

 

농촌의 봄은 고추씨에 날아와 자리를 잡습니다. 우수를 전후하여 씨를 넣습니다. 씨알마다 여러 가지 색깔과 모습이 있어 해마다 종자를 선택하느라 꽤나 신중을 기합니다. 고추씨 종자를 묻다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많이 따'도 있고 '빨리 따', '또 따', '자꾸 따', '무한질주'도 있습니다.

 

올핸 신품종이라 어떤 모습과 색깔일지 궁금해 하며 물에 담가 하루 저녁 재워 열어 보니, 연분홍색 수줍음 탄 앳된 얼굴로 다가와 상견례 하자 합니다. 봄바람 이수선을 떨며 지나칠 때마다 따스한 햇볕을 하우스에 가둬 놓고 씨알이 터질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하우스엔 벌써 봄볕이 활활 타오릅니다. 고추씨를 넣다 심심하면 또 다른 봄볕을 바라봅니다. 긴 추위를 건너왔으련만 언제인 듯싶게 작은 생명이 잉걸처럼 뜨겁게 땅을 박차고 솟아오릅니다. 봄볕은 연분홍꽃물을 물들이며 어린 생명을 흔들어 깨웁니다. 돌 채송화·바위 솔·범의 귀를 좀 보세요. 봄볕을 얼마나 빨아드렸으면 저리도 붉은 물이 드는 건지 손을 대면 데일듯합니다.

 

그런가 하면 홍매화가 앞다퉈 꽃망울을 터트립니다. 꽃샘추위가 주춤주춤 머뭇거리는 사이로 여린 꽃잎이 그리움으로 다가섭니다. 나목에 매달린 꽃망울은 차라리 애처로움입니다. 봉긋봉긋 부푼 가슴에 매향이 코를 간질이고 분홍색 꽃술 속에선 새빨간 미소가 돌아 나옵니다.

 

 

홍매화 피어나면 동물들도 몸살을 앓기 시작하고 새소리도 하루가 다르게 가까이 들려옵니다. 까치 둘이서 종일 붙어다니며 마늘밭 지푸라기와 뗏장을 물어다 집을 짓느라 바쁘게 움직거립니다. 신방을 꾸릴 날도 멀지 않았나 봅니다. 겨우내 썰렁하고 덩그렇던 까치집이 둥글고 야무지게 변하는 모습을 올려다보며 올 농사 계획을 세워봅니다.

 

홍매화 아래선 들 고양이들의 암내 투정이 한창이고, 앞골 사슴 목장에서 들려오는 수놈들의 발정 등쌀로 사방이 시끄럽습니다. 씩씩 날뛰고 길길이 치솟아 사슴 망이 부서질 정도로 수선을 떨어보지만 암컷들은 그리 호락호락 붉은 마음을 열어 보일 성 싶지 않습니다.

 

 

봄은 시냇물 이끼들의 가녀린 떨림으로, 참새의 짝짓기 소리와 아지랑이 실타래 춤사위 속으로 자꾸만 스며듭니다. 봄은 연분홍빛으로 다가와 어린 생명들을 사정없이 흔들어 깨우며 우리 곁으로 다가섭니다.

 

강물이 술술 풀리고 대보름날 이른 아침 '아지작' 부럼 깨는 소리에 동장군이 슬슬 뒷걸음질을 하고 있습니다. 완연한 봄이 틀림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 농촌공사 전원생활, 네오넷코리아북집, 정보화마을 인빌뉴스에도 함께합니다. 쪽빛강물이 흐르는 '북한강 이야기'를 클릭하면 시골과 농촌을 사랑하는 많은 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태그:#홍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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