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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께 세배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 2008 국경없는마을 설날 설잔치 어르신들께 세배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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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께 세배를 한 후 박천응 목사로부터 세뱃돈을 받는 어린이들
 어른들께 세배를 한 후 박천응 목사로부터 세뱃돈을 받는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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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벅 마이 바드쎄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어설픈 발음으로 외치며 곱게 세배하는 외국인들에게 설날은 결코 남의 나라 명절이 아니었다. 어린아이부터 시작해 청년들과 아프리카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까지 각각 설날 세배를 하는 모습은 어설프면서 다양한 모습이었지만, 세뱃돈을 들고 좋아하는 모습과 새해를 맞아 복을 기원하는 모습에 국경은 없었다.

음력으로 새해를 맞는 즐거움은 외국인도 마찬가지였다. 곱게 전통의상을 차려  입고, 자기나라만의 전통 음식을 나누는 모습에는 밝은 미소가 가득했다. 

투호놀이와 림보, 윷놀이 등 함께 즐기는 놀이에는 나라 간의 경계가 없었고, 푸짐한 상품을 하나둘씩 받아들며 각 나라의 장기자랑을 펼치는 외국인들에게 쌀쌀한 날씨는 큰 어려움이 아니었다.  

어설픈 세배, 세뱃돈은 좋아라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2008 국경 없는 마을의 설 잔치'가 안산 외국인 지원 단체들 주관으로 7일 안산 원곡동 국경 없는 거리에서 펼쳐졌다. 음력 새해를 맞는 즐거움을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에는 외국인과 주민 등 10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각종 부대행사와 더불어 펼쳐진 장기자랑에는 중국·인도네시아·스리랑카·몽골·우간다·에디오피아 등 10여개 나라 25개팀이 참여해 노래와 민속공연 등으로 설날의 흥겨운 분위기를 돋웠다.

전통의상을 입고 나와 전통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몽골팀.
 전통의상을 입고 나와 전통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몽골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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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팀은 25개팀이 참여한 이날 행사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몽골팀은 25개팀이 참여한 이날 행사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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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만큼이나 공연 내용도 다양했다. 인도네시아 밴드는 보컬 공연을 선보였고, 필리핀 노동자들로 구성된 비보이 팀이 힙합 댄스를 보여주는가 하면, 스리랑카 노동자는 윤택의 '마이웨이'를 멋지게 불렀고, 에디오피아 밴드는 자국의 전통 춤 공연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전통 의상을 입고 전통 악기를 연주한 몽골팀의 공연. 몽골 전통 민요와 우리 민요인 아리랑 등을 선사한 몽골 팀은 이날 최우수상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는데, 상당한 실력을 선보여 준비에 애쓴 모습을 드러냈다.

이와 관련해 안산 외국인 근로자 지원센터 김재근 사무국장은 "오늘 행사는 외국인 동아리 조직이 주도적으로 준비했다"며 "현재 활동 중인 외국인 동아리가 50여개 가까이 된다"고 밝혔다. 한국 생활을 오래 하면서 자기 나라 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삼삼오오 모이면서 동아리 형태로 발전했고 이런 행사를 통해 발표의 장을 갖는다는 것이다.

몽골 전통 악기로 연주된 아리랑 

스리랑카에서 온 프라산나씨(왼쪽 두번째)와 케냐, 우간다, 파키스탄에서 온 그의 친구들
 스리랑카에서 온 프라산나씨(왼쪽 두번째)와 케냐, 우간다, 파키스탄에서 온 그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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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안산 원곡동의 국경 없는 거리는 명절을 즐기기 위해 나온 외국인들로 가득했다. 외국인들이 많이 몰려사는 특성상 한국 속의 이국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공단이 밀집해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몰려사는 안산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생각하는 제 2의 고향. 그래서 한국의 명절 때면 외국인 노동자들은 안산으로 모여들고, 그 곳에서 친구나 같은 나라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나라 사람끼리 모여 이야기 나누고 있는 그들에게 설날은 모처럼 넉넉하게 쉴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방글라데시에서 왔다는 슈먼씨는 "한국 설날 좋아요!"를 연발하며, 다른 나라 동료들이 펼치는 장기자랑에 몰두하고 있었다. 한국 생활 3년째인 그에게 설날은 모처럼의 긴 연휴와 함께 친구들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랠 수 있는 시간이다.

인도네시아 노동자 에릭씨는 음력설을 아느냐는 질문에 "무슬림들의 라마단이 한국의 설날과 같다"고 말했다. 2개월 밖에 안 됐다는 그는 한국에서 처음 맞는 설날이 "노는 날이 많아 좋다"며 웃음 지었다.

스리랑카의 프라산나씨는 "스리랑카에는 4월에 있는 '알룻 아우르데'라는 축제가 한국의 설날과 비슷한 의미"라며 "케냐 우간다 파키스탄의 친구들과 함께 설 잔치를 즐기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부대행사로 마련된 놀이에 참여해 받은 상품이라며 배드민턴 채를 자랑삼아 흔들어 댔다.

베트남에서 온 록안씨는 전통음식 마니토를 설명하며 베트남에도 "설날 트리를 만들고 소원을 담은 엽서와 돈이 들어있는 봉투로 장식을 하는 음력설이 있으며  '뎃(Tet)'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부대행사(림보)에 참여해 유연함을 뽐내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부대행사(림보)에 참여해 유연함을 뽐내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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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국경없는마을 설잔치' 부대 행사를 즐기고 있는 참석자들
 '2008 국경없는마을 설잔치' 부대 행사를 즐기고 있는 참석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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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통해 건강한 다문화 공동체를 형성

"Smile again!"

이번 설 잔치를 준비하며 주최 측은 주제를 웃음으로 잡았다. "부대행사, 공연, 푸짐한 먹거리 나눔을 통해 잃었던 웃음과 행복을 회복하는 데 목적을 뒀다"는 것이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기왓장 깨기, 윷놀이 등의 부대행사는 웃음을 회복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됐다.

행사 시작 전 참석자들에게 나눠준 버튼에 그려진 웃는 얼굴은 웃음을 통해 낯선 나라에서의 힘듦을 잘 이겨내자는 격려도 담겨 있는 듯 했다.

떡국과 각국 음식, 차를 나누면서 서로에게 웃음을 전달해주는 상징적 행사를 통해 움츠렸던 심신을 추스리면서 웃음을 다시 한번 회복하게 하려는 것 또한 이번 행사의 취지다. 이를 통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것을 돕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 상생하는 건강한 다문화 공동체를 형성하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떡국을 나눠주는 부스는 행사가 진행되는 내내 찾는 사람들로 가장 많이 붐볐다. 떡국을 나눠주고 있던 자원봉사자는 "1000여 명 정도가 먹을 수 있을 만큼 많이 준비했기 때문에 모자라지는 않다"며 "줄 서있는 분들이 많지만 보람있는 행사"라고 말했다.

2008 국경없는마을 설잔치를 시작하며 각각 인사말과 축사를 하고 있다.
▲ 박천응 목사님과 천정배 의원 2008 국경없는마을 설잔치를 시작하며 각각 인사말과 축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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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에서 외국인들을 위한 명절 행사가 시작된 것은 1994년부터. 이번 행사를 주최한 곳은 안산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 안산이주민센터, (사)국경없는마을 등이다. 모두가 안산외국인센터에서 시작된 단체들로 지금은 역할에 따라 세분화되고 규모 있게 조직화 되면서 우리나라 외국인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애쓰고 있다.

안산 외국인 노동자 지원을 이끌고 있는 분은 박천응 목사님. 안산 외국인 노동자의 대부로 통하는 박 목사님은 80년대 반독재 민주화 학생 운동을 경험한 뒤, 90년대 민중교회운동을 통해 안산에 자리 잡았다. 이 과정에서 안산에 하나 둘 늘어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게 됐고 처음에는 남의 일로 생각했으나 그들의 어려움을 모른 체 하기 힘들어 도와주기 시작했다. 그것이 가난한 아시아의 외국인 노동자 운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는 시간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행사는 다른 나라에서도 배워가는 중이고, 국내의 여러 지역에서도 보고 배워갔다고 한다. 

주최측은 이를 잘 발전시키면 우리의 문화를 풍부하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행사를 통해 다문화 콘텐츠를 실험중이기도 하다. 소수자의 문화를 잘 품어 발전시킨다면 우리 문화가 풍부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차를 대접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이날 설 잔치에는 35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해 곳곳에서 많은 활약을 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차를 대접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이날 설 잔치에는 35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해 곳곳에서 많은 활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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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문화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김희경 팀장은 "명절맞이 행사가 한국인들의 문화를 외국인들에게 주입시키는 것이 아닌 다른 나라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는 시간”이라고 말하고 "이번 행사는 초창기처럼 지원 단체들이 이끌어가는 게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진행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원은 국내 외국인 지원단체들이 맞지만 진행은 외국인들이 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 안에서 우리 국민들과 함께 갈 수밖에 없는 외국인 이웃들. 그들이 우리 안에 스며들어 서로의 경계를 허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행사를 이어오고 있는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모습일 것이다.

각 나라의 새해인사가 섞이며 흥겨운 분위기를 즐기는 외국인들의 모습은 가장 풍성한 설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 및 주민 등 1000여명이 참석한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노래가 나오자 흥겹게 춤을 추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및 주민 등 1000여명이 참석한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노래가 나오자 흥겹게 춤을 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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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외국인 노동자, #국경없는마을, #안산외국인근로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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