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승희전'이 열리는 미술공간 現 내부와 '앤디워홀전'이 열리는 미술관가는 길 입구(오른쪽)
 '이승희전'이 열리는 미술공간 現 내부와 '앤디워홀전'이 열리는 미술관가는 길 입구(오른쪽)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한국의 신세대 팝아트작가 중 한 사람인 '이승희전'이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 옆 '미술공간現'에서 1월 29일까지 열린다. 마침 이 작가가 좋아하고 영향을 크게 받은 '앤디워홀전'이 '미술관가는길'에서 2월 5일까지 열리고 있어 두 전시를 한데 묶어봤다.

팝아트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미술장르로 이 운동은 워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요즘엔 여기에 첨단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더해져 이를 토대로 한 새로운 시도와 실험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승희전] 물신숭배에 빠진 현대인 풍자

이승희식 팝아트도 마찬가지다. 그는 기성제품과 광고사진을 디지털작업과 콜라주기법으로 재조합하여 새로운 메시지가 담긴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동기 등 우리나라에도 팝아트 작가가 많지만 그도 한국 팝아트의 다양한 변주와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승희 '꼭 가지고 있어야 할 품목(Must have item)' 복합매체 80×80cm 2007
 이승희 '꼭 가지고 있어야 할 품목(Must have item)' 복합매체 80×80cm 2007
ⓒ 이승희

관련사진보기


위에서 보듯 검은 바탕에 명품이 그득 담긴 이승희 판화의 명품 시뮬레이션은 호화스러운 색채와 세련된 감각을 번뜩이며 모자이크처럼 널브려져 있다. 이를 보고 있으면 이 세상의 모든 명품을 내 손에 다 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게다가 포만감까지 느껴져 기분도 좋다.

이번 전에서 부제로 '꼭 가지고 있어야 할 품목(Must Have Item)'과 어려서 어린아이가 엄마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 하듯이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받으려고 하는 '인정욕망(desire of recognition)'을 붙인 건 분명 그가 그림을 통해 할 말이 많다는 뜻이리라.

그도 작가노트에서 "일상적 사물에 대한 취향과 선택에 있어 우리의 의지는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브랜드이미지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소비품으로 인정받으려 하는 인간의 모습"을 되짚어보려 했다고 적고 있다.

소비사회에서 상품은 기호

이승희 '꼭 가지고 있어야 할 품목(Must have item)' 복합매체 80×35cm 2007
 이승희 '꼭 가지고 있어야 할 품목(Must have item)' 복합매체 80×35cm 2007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그의 그림을 보면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말하는 '소비사회'가 떠오른다. 소비사회에서 상품은 하나의 사회문화적 기호이며 사람들은 단지 상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상품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기능성보다는 상징성을 더 쫓는다.

판화에서 등장하지만 고급차를 선망한다는 것은 단순히 차의 효용가치만이 아니라 그런 기호를 통해 다른 사람의 시선을 받고 자신의 브랜드이미지를 높이고 사회적 특권이나 정신적 보상을 얻으려는 속셈이다. 또한 이는 비쌀수록 더 잘 팔리는 심리와도 통한다.

그의 작품마다 술, 가방, 구두, 향수, 시계, 안경, 반지, 핸드백, 자동차, 만년필, 화장품 등 명품이 가득 채워져 있는 건 일종의 희화이자 풍자이다. '꼭 가지고 있어야 할 품목'이라는 부제는 단지 반어법일 뿐, 오히려 작가는 그런 것들이 꼭 필요한지 묻고 있다.

풍요 속 빈곤과 인간소외

이승희 '꼭 가지고 있어야 할 품목(Must have item)' 복합매체 80×45cm 2007
 이승희 '꼭 가지고 있어야 할 품목(Must have item)' 복합매체 80×45cm 2007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이는 바로 작가가 우리의 소비 중독을 꼬집고 있다는 증거다. 이런 메시지는 우리가 소비를 할 때 정말 자발적 필요에 의한 건지 아니면 소비사회가 조작한 이윤창출의 원리나 무차별 광고홍수에 끌려 그런 건지 다시 한 번 묻게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평균 이상의 소비자가 되려 한다. 그러려면 대학 입시는 물론이고 이보다 더 치열한 직장전쟁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 결국 우리의 삶이 주객전도되면서 우리가 진정 바라는 삶보다 돈 더 버는 데 치중하다 보면 겉만 화려하지 속은 텅 빈 삶이 되기 쉽다.

이리하여 우리는 보드리야르의 말대로 그 주체성을 잃게 된다. 그리고 자신보다 생활수준이 높은 사람들하고만 비교하여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다. 놀랍게도 원시사회는 물질적 결핍에도 풍요를 누렸지만, 현대사회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빈곤을 맛보게 되었다.

그림으로 시대풍속 읽기

이승희 '꼭 가지고 있어야 할 품목(Must have item)' 복합매체 65×75cm 2007
 이승희 '꼭 가지고 있어야 할 품목(Must have item)' 복합매체 65×75cm 2007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아무튼 이 작가는 인간의 물신숭배에 따른 '삶의 덧없음(바니타스 Vanitas)'을 이번 전의 주제로 삼고 있다. 이런 그림은 이미 17세기 초 네덜란드에서도 유행했다고 하는데 시기적으로 네덜란드가 최고 전성기였을 때 일어났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런 풍자화는 분주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게 한다. 우리도 정말 거리에 현란한 쇼윈도에만 현혹될 것이 아니라 가끔은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도 봐야 할 것 같다. 이렇게 그림을 통해 우리 시대의 풍속까지 읽어 낼 수 있다니 퍽 흥미롭다.

[워홀전] 일체의 편견이 없는 팝아트의 거장

워홀 '로버트 케네디(컬러)' 실크스크린 102×81cm 1980. 그림에 다이아몬드 가루가 뿌려짐. 이렇게 평범한 사진이 부와 명성을 상징하는 명화가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워홀 '로버트 케네디(컬러)' 실크스크린 102×81cm 1980. 그림에 다이아몬드 가루가 뿌려짐. 이렇게 평범한 사진이 부와 명성을 상징하는 명화가 될 줄 누가 알았으랴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이번엔 진부하고 저급하고 천박해 보이는 것에서 현대미술의 가능성을 발굴한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1928~1987)전을 보자. 이 특별전은 종로구 경운동 '미술관가는 길'에서 2월 5일까지 열린다. 국내에서 워홀전이 처음은 아니나 부담 없이 감상하기 좋은 기회다. 사실 그림은 직접 눈으로 봐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20세기 초 유럽이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로 서구미술의 비상구를 뚫으려 할 때 미국은 현대미술의 돌파구로 이를 능가하는 팝아트를 탄생시켰다. 물론 뒤샹이 이전에 모나리자의 콧수염 그림 등에서 그런 전조를 보였으나 이를 확고히 한 건 워홀이다.

뒤샹이 변기통을 들고 나오니까 워홀은 캔통과 콜라병을 들고 나왔다. 워홀은 니체 풍의 지나치게 심각하고 난해한 그래서 대중과 너무 멀어진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를 걷어차고 나와 누구나 미술에 쉽게 접근하게 했고 사람들을 어려운 미술에서 구해냈다.

워홀 '만 레이' 실크스크린 80×80cm 1974. 그리다 만 것 같으나 만 레이의 인간적 체취는 고스란히 살아있다.
 워홀 '만 레이' 실크스크린 80×80cm 1974. 그리다 만 것 같으나 만 레이의 인간적 체취는 고스란히 살아있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워홀은 그 어느 것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으로 대중적이고 상업적 것일수록 미술에 더 많이 적용했다. 마릴린 먼로, 케네디가(家), 마오쩌둥, 만 레이 등과 같은 유명 배우, 가수, 정치가, 작가의 사진을 공장에서 물건 만들 듯 실크스크린으로 찍어냈다. 이렇게 아주 평범한 데서 특별한 것을 만들어내는 그의 혜안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것이다.

워홀은 당시 외모나 행동거지에서 엉뚱한 망상에 젖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가 새로 옮긴 작업실(팩터리)에서 솔라니스라는 여자에게 저격당했다 살아난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파격적으로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면서 예술에 대한 통념을 깼다.

난해함이란 장벽을 걷고 누구나 편하게

워홀 '덴마크여왕(컬러)' 실크스크린 100×80cm 1985. 여왕그림을 이렇게 편하게 그린 사람이 있을까.
 워홀 '덴마크여왕(컬러)' 실크스크린 100×80cm 1985. 여왕그림을 이렇게 편하게 그린 사람이 있을까.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팝아트는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라 말한 독일의 전위예술가의 요셉 보이스를 연상시킨다. "나라도 이런 그림이라면 그릴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는 미술의 세속화 내지 대중화라 할 수 있는데 그동안 너무 높았던 미술의 문턱을 낮춘 셈이다.

위의 '덴마크여왕'을 보라. 여왕 그림이지만 얼마나 편하고 거리감 없이 감상할 수 있는가. 워홀은 이렇게 미술의 난해함이란 폭력적 장벽을 걷고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그림을 보게 하는 데 기여했다.

워홀 '망치와 낫' 실크스크린 7개 세트 1977. 이런 망치가 그림이 될 것이라고 누구 예상했겠는가. 작품가격은 2억 정도. 아래는 '마릴린 먼로' 31×31cm 1967
 워홀 '망치와 낫' 실크스크린 7개 세트 1977. 이런 망치가 그림이 될 것이라고 누구 예상했겠는가. 작품가격은 2억 정도. 아래는 '마릴린 먼로' 31×31cm 1967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하여간 이번에 그의 작품을 직접 보니 매우 아름답고 우아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하지만 아직도 이런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이렇게 보면 어떤 고정관념을 깬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가 보다. 뉴 팝아트가 유럽에서 부활하는 걸 보면 이 운동은 역시 현대미술의 거대한 흐름임이 틀림없다.

낫과 망치, 마오쩌둥 등 사회주의 이념이나 상징이 들어가는 워홀의 그림을 보면 그의 작품엔 성역이 없다. 또한 고급, 저급, 상업, 순수 등 미술의 경계도 없다. 나와 생각이 다른 것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없는 이런 열린 자세가 바로 그의 천재성이 아닌가 싶다.

덧붙이는 글 | [미술관 소개]
'이승희전' 미술공간現 인사동 안국동쪽 크라운베이커리를 지나 가나아트스페이스 옆골목
www.artspace-hyun.co.kr (02-732-5556) 29일까지 전시연기
'워홀특별전' 미술관가는길 운현궁 건너편 낙원상가와 라이온스회관 중간
www.gomuseum.co.kr (02-738-9199) 무료입장.
[작가소개]
이승희 이화여대 미술학부 회화판화전공(2004) 동 대학원 졸업(2007) 제3회 개인전
앤디 워홀 1928년 필라델피아 출생. 카네기공대에서 산업디자인 전공.
영화, 광고, 사진, 디자인 등을 미술에 도입 60년대 전세계미술계에 큰 영향을 준 팝아트의 대가.



태그:#이승희, #앤디 워홀, #팝 아트, #소비사회, #추상표현주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