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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씨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취임 즉시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 시작된다고 한다. 특별위원회가 설치되고 4년 안에 공사를 끝낸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렇게 중차대한 국사가 선거공약으로 등장하고 서둘러 친위세력들이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것을 보면 흡사 노무현 정권이 수도 이전 공약을 내세우고 벼락치기로 수도를 옮기려던 모습을 연상케 한다.

 

한반도 운하는 이미 거론된 환경문제 외에도 다음과 같은 문제가 검증되어야 한다.

 

첫째, 규모의 경제 문제다.

 

어떤 프로젝트나 사업도 '규모의 경제'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경제성이 있으려면 어느 정도 규모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운하를 주요 내륙운송 수단으로 삼는 나라 치고 1800 km 이하의 운하를 운영하는 나라는 없다. 한반도 운하는 겨우 540 km다. 짐을 싣자마자 내려야 한다. 하역비가 선박운송의 장점인 저운송비를 상쇄해 버린다. 대운하라 하지만 실제는 소운하이다.

 

둘째, 운송할 물건의 문제다.

 

운하의 목적은 유람선이 다니는 게 아니라 화물을 운송하는 선박이 다니는 게 주목적이다.  운하를 이용하는 장점이 있는 화물은 중후장대(重厚長大)한 물품, 부피가 많은 원자재 등이다. 실제 미국의 예를 보면 운하를 이용하는 화물은 철광석 23.4%, 곡류 24.5 %, 대량화물 34.5%, 석탄 7.9 % 이고 일반화물은 9.7% 밖에 안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후장대한 선박, 철강 등은 생산업체가 이미 부산, 포항 등 해안포구에 위치해 있다. 곡류는 호남지방에서 주로 생산되기 때문에 경부운하를 이용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출품이나 부품을 항구까지 실어나르는데 주로 이용할 것으로 보이나 우리나라 수출품의 주종인 전자제품은 부피가 작고 운송비가 물품가에 미치는 비율이 미미하고 신속한 배달을 요하기에 운하가 개통되어도 외면하고 자동차를 이용할 게 뻔하다.

 

셋째, 우리나라의 지형은 남북으로 길고 동서가 짧다.

 

그런데 지금 건설하려는 운하는 서북에서 동남으로 길게 파자는 것인데 이 경우 인천에서 싣고 부산으로 배로 가더라도 1000 km 안짝이다. 그런데 540 km짜리 운하를 판다는 것은 옥상옥 격이다. 오히려 운하건설에 소요되는 돈이면 부두시설을 보강하거나 새로운 부두를 건설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지형을 보라. 해안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내륙운송이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다. 영국에서 운하가 효과를 본다는 얘기를 들어본 일이 있는가?

 

넷째, 우리나라는 공업단지가 대부분 마산, 창원, 울산, 광양, 여천 등 해안에 몰려 있다.

 

내륙에 있는 공업단지라고 해봐야 고작 대구, 구미 정도인데 대구, 구미에서 운하를 이용해 부산으로 짐을 뺄 바보는 없다. 왜냐? 상차비, 하차비, 상선비, 하역비를 빼고 나면 하등 이익될 게 없기 때문이다.

 

독일이 운하 효과를 보는 것은 루르공업단지가 내륙에 위치한 때문이다. 충주, 조령, 문경, 상주에서 어떤 물건을 배로 실을 것인가? 인삼을 배로 싣기 위해 운하를 판다? 이보다 더한 넌센스가 있는가?

 

이명박 당선인은 '공급은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을 들먹인다. 그런데 예천공항을  보라.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이용을 안 해 버려진 지방공항, 그 재판이 한반도 소운하가 안될 거라는 보장이 있는가? 

 

다섯째, 이 거대한 사업에 고용효과는 없다.

 

이미 건설업종은 이른바 3D업종으로 분류되어 제3국 인력들이 일자리를 대신 차지한 지 오래다. 오히려 4년 안에 이 거대 토목사업을 끝내려면 외국에서  또 대거 이민자들을 불러모으게 될 것이다. 골재를 채취해 팔아도 추가로 최소 16조 원이 든다는 이 돈으로 다른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이치에 맞다.

 

여섯째, 이 사업을 위하여 국내 대형토건업체 5군데다 협의체를 구성해 맡긴다는 절차도  잘못되었다.

 

이른바 1군에서 10군으로 업체를 등분해 놓고 나눠먹기식 공사 수주를 하고 있는 우리나라 건설관행은 대표적 불공정 행위로 지탄받는 마당에 큰 회사끼리 나눠먹으라고 공사를 발주하는 것은 온당치 못할 뿐더러 이들은 공사수익을 위해 당연히 한반도운하 사업에 찬양의 깃발을 흔들 것이다. 혹, 이명박 당선인이 1군 출신 그것도 상위 5위 업체 출신이기 때문은 아닌가?

 

이 문제는 우선 물류전문회사들로 협의체를 구성하는 게 맞는 이치다. 청계천 사업에서 성공했으니 운하사업도 문제없다는 것도 오류다. 청계천 사업은 고객이 불특정 시민들이다. 운하의 경우 고객은 물류회사와 그와 계약하는 화주들이다. 이들의 의견을 검증해야 하고 이용에 관한 가계약이라도 확보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청계천 사업과 운하사업은 본질이 다를 뿐더러 텍스트(text)가 다른 게 아니고 차원(sphere)이 다르다.

 

운하 찬성론자들은 경부고속도로 건설 시에도 국민의 반대가 많았지만 결국 잘 한 것으로 판명되지 않았느냐는 예를 곧장 든다. 그 때는 우리 국민들 수준이 낮았을 때고 고속도로가 뭔지 본 사람들이 전 국민의 1 %도 안 될 때였다. 지금은 우리 국민들의 지식 수준이 선진국을 능가하고 있다. 왜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찬반 양론의 자유로운 토론 후에 국민투표에 부치지 않는가?

 

최고 통치권자가 되면 누구나 '역사에 길이 남을 빛나는 업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 그러나 단언컨대 '한반도 운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영광의 업적'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의 '확실한 무덤'이 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하드웨어에는 강점을 보였으나 소프트웨어에는 약하다. 그래서 BBK문제도 생겼고 본인은 피해자이면서도 구설수에 휘말렸다. 그러나 대통령의 지위에 있는 사람은 남의 머리를 빌려서라도 자기 머리를 보강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패러다임을 바꿔 하드웨어인 운하에 집착하다 실패한 수의 양제를 본받지 말고, 소프트웨어인 훈민정음를 창제하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을 벤치마킹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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