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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 찾아와서 나의 친구가 되어도
병든 몸과 상한 마음 위로받지 못했다오
예수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의지할 곳 없는 이 몸 위로받기 원합니다
(복음성가 '주여 이 죄인이' 일부)

 

새해 둘째 날인 2일 오전 서울 구로구 가리봉1동에 위치한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아래 외노의원) 중환자실. 김영자(69·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씨가 막내딸 이계숙(40·중국 길림)씨 앞에 앉아 복음성가 '주여 이 죄인이' 가사 필사본을 보며 속으로 부르고 있었습니다. 중풍으로 누운 딸을 돌보면서 부르는 노래이니 얼마나 절절하겠습니까.

 

2004년 7월 개원한 외노의원은 중국동포를 비롯해 외국인노동자들을 무료로 진료, 치료, 수술하는 전용의원입니다. 복음성가 '주여 이 죄인이' 가사처럼 의지할 곳 없고, 돈도 없는 중국동포와 외국인노동자 환자를 위로하는 곳입니다.

 

지난해 9월 뇌출혈로 쓰러졌던 이씨는 부평의 S병원과 안양의 A병원에서 수술과 입원 치료를 받다가 지난해 12월 18일 외노의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이씨의 경우 다른 외국인노동자 환자들과 달리 중국동포인 남편이 의료보험에 든 덕분에 병원비에 덜 시달렸지만, 결국 병이 길어지면서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외노의원을 찾았습니다.

 

2005년 12월 국적을 회복한 어머니 김씨는 심장 질환을 앓고 있는 막내딸을 수술해 주려고 지난해 6월 19일 초청했습니다. 그런데 3개월 만인 9월 26일, 남편이 일터에 나간 사이에 뇌출혈로 쓰러진 것입니다. 오른쪽 뇌수술을 한 이씨는 왼쪽 반신이 마비된 상태입니다. 김씨는 어미보다 먼저 쓰러진 딸이 애처롭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감사한 마음을 표시합니다.

 

"중국에선 산골벽지에서 살았는데, 거기에서 쓰러졌으면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중국은 한국처럼 의학이 발달하지 못해서도 그렇고, 우리 인민 같은 사람은 중한 병이 들면 어떻게 할 수 없어요. 이렇게 무료로 치료해주니 원도 없습니다."

 

"죽을 자리 찾아들기도 이리 힘들어요"

 

지난해 마지막 주일인 12월 30일 '중국동포교회'(담임 김해성 목사)에 출석해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선희 목사는 광고 시간에 병원비가 없어 심한 복통을 앓다가 숨진 불법체류 이주노동자 태국인 A(49)씨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우리 병원을 알았으면 죽지 않았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이 말을 듣다가 외노의원 최장기 입원 환자인 장성호(42·중국 하얼빈)씨가 떠올랐습니다. 지난해 10월 갑자기 쓰러지면서 의식불명이 된 장씨는 경기도 구리의 H병원에 입원했지만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지난해 11월 24일 외노의원으로 옮겨져 1년 넘게 장기 입원하고 있습니다.

 

장씨를 처음 본 것은 지난해 12월 14일이었습니다. 개신교계 모 단체 관계자들이 외노의원을 방문해 입원 환자들에게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장씨에게도 선물이 놓여졌지만 그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고는 자리를 떠났지만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장씨를 찾았습니다. '태국인 A씨의 비극적인 사망소식에 절망하는 이들에게 외국인노동자들의 생명을 무료로 살리는 병원이 있다는 소식을 알리자'라는 마음으로 외노의원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장씨를 돌보던 어머니 이금자(71)씨의 얼굴이 매우 어두웠습니다.

 

"1월 4일 퇴원하라고 합니다. 그동안 이 병원에서 너무 많은 혜택을 받아서 뭐라고 할 말도 없습니다. 그런데 갈 곳이 없습니다. 이 겨울에 환자를 이끌고 중국에 가기도 힘들고, 간다고 한들 받아줄 곳도 없고, 단칸방으로 데리고 가자니 비좁아서 들어갈 수도 없고…."

 

아들뿐 아니라 이금자씨도 외노의원 덕분에 생명을 건졌습니다. 지난해 1월 유방암 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은 것입니다. 그러나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대뇌 기능이 거의 정지된 아들은 식물인간 상태입니다. 코에 연결된 줄로 영양공급 등을 하고 있지만 치료 대상에선 벗어난 것입니다.

 

외노의원 관계자는 "계속 보살펴드리고 싶지만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데다 입원하려는 환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어 병석 한 자리가 절박한 상태"라면서 "사정은 딱하지만 또 다른 환자를 살리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퇴원을 결정한 것"이라고 안타까워합니다.

 

외노의원은 밀려드는 입원 환자를 위해 5배석을 늘려 1월 4일 현재 34명의 환자들이 입원해 있습니다. 정부지원이 전혀 없이 후원에 의존하는, 국내에서 유일한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은 매년 운영적자에 따른 폐원 위기를 겪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회생 불능 환자를 퇴원결정하면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장씨의 몸에 열이 오르면서 퇴원은 일단 7일로 사흘 연기됐습니다. 경기도 부천에서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15만원짜리 단칸방 생활을 하고 있는 이씨 가족(남편, 며느리)은 주변에 단칸방을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집주인이 중환자가 들어오는 것을 알고는 입주를 거부하고 있다면서 어머니 이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단칸방을 어렵게 마련했는데 집주인이 '송장 치를 일이 있느냐'면서 입주를 거부하고, 병원엔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더 이상 사정도 못하겠고…. 같이 죽지도 못하고, 죽을 자리 찾아가기도 이리 힘들고…."

 

10만원 봉투 들고 온 중국동포 청년

 

"김해성 목사님, 이선희 목사님 수고하십니다. 저는 김분옥 사망자 자녀로서 감사의 뜻을 보내고자 합니다. 자그마한 성의지만 받아주십쇼." - 2007년 12월 28일 신재순

 

지난해 12월 28일 오후 중국동포 송경국(27, 여행사직원)씨가 10만원이 담긴 봉투를 들고 '외국인노동자의집/중국동포의집'(아래 외노-동포의집)을 찾아왔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돌봐주고 유해까지 안치해 준 데 대해 작은 성의를 표시하기 위해 어머니 대신 온 것입니다.

 

김분옥(82·중국 하얼빈) 할머니는 지난해 10월 뇌출혈로 쓰러져 구로 G병원에 입원했다가 H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병원비 때문에 외노의원에 7개월간 입원해 치료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서울시 산하 병원인 서울의료원에서 돌아가신 김 할머니의 유해는 외노-동포의집이 운영하는 '안식의 집'에 안치됐습니다. 이곳에는 중국동포를 비롯해 스리랑카 외국인노동자 등 모두 38기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배은분(47) 간호사는 김 할머니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치매 증세가 있어서 엉뚱한 소리를 많이 하셨고, 엉덩이에 욕창이 생겨서 드레싱을 해드린 생각이 난다"면서 "간혹 감사함을 표시하기 위해 찾아오는 분들이 있는데 그럴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손주 송씨는 "중국동포들은 일하다 다치거나 몸이 아파도 병원비가 너무 비싸서 그냥 참는 경우가 많은데 외노의원이 있어서 너무나도 다행이다"면서 "외할머니의 유해는 이곳에 잠시 모셔놨다가 조만간에 하얼빈으로 모시고 갈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외노의원이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료보험 있는 한국사람도 돈 없으면 병원에서 내쫓기는 형편인데 중국동포를 누가 돌봐줄 것인가? 그럼에도 식물인간 상태인 아들의 죽을 자리를 못찾아 피눈물 흘리는 저 어머니를 어찌해야 하나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중국동포, #외국인노동자, #외노의원, #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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