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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중국 CCTV에서 '나의 신화'라는 제목으로 이명박 당선자를 다루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그때는 대선 과정에서 그토록 도덕성 논란이 나왔는데도 그에 대해 별다른 언급이 없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외국 언론이 보는 시각이니 '그럴 수도 있겠거니' 했고, 그것이 '차라리 나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중국 친구랑 한국 대선 얘기를 하다가 이런 말을 듣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런데 너네는 그렇게 도덕적 의혹이 많은 사람을 왜 대통령으로 뽑았어?”

 

믿지도 못하면서 대통령으로 뽑았어?

 

말문이 막혔습니다. 무어라 대답하겠습니까. 괜히 중국 친구와 정치 이야기를 했다는 자책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중국 TV에서 이명박 당선자를 한 편의 인생 성공 드라마처럼 다루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한국에 깊은 관심을 갖지 않는 중국인들은 '그냥 한국 대통령이 바뀌었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런 기대를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27일 아침에도 중국어 듣기 실력 향상을 위해 중국 TV를 켜놓았습니다. 듣기 실력 향상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TV를 켜놓고 화장실에서 양치질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이라는 소리가 들리자 무슨 뉴스인지 조금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허나 그때까지도 최근 실종된 선원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중국 CCTV를 통해 선원 실종 사실을 먼저 알았을 정도로 중국 CCTV 뉴스를 볼 때마다 선원 실종 이야기를 자주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그런 이야기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화장실에 있었고 중국어 실력이 높지 않았기에 ‘한국’이라는 소리만 귀에 쏙쏙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하는데도 뉴스에서 계속 ‘한국’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세수를 대충 끝내고  TV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때 제 눈에 보인 것은 바로 ‘김경준!’이었습니다.

 

“어? 어! 저거 뭐야? 저거 뭐야?”

 

그랬습니다. 세수를 하는 동안 중국 CCTV에서 ‘BBK 특검’에 대해서 보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중국 CCTV에서 이명박 당선자를 다룬 '나의 신화'라는 프로그램을 보는 순간에는 그저 씁쓸했을 뿐이지만, BBK 특검 뉴스를 중국 땅에서 보고 나니 절로 한숨이 쉬어졌습니다. 앞서도 말했듯 어쩐지 중국 친구들과 정치 얘기를 할 때마다 그들이 할 질문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너네들은 검찰이 조사해서 혐의가 없다고 결론을 내려도 믿지 못한 국민이 절반이 넘었다면서 왜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어?”

 

왜 뽑았느냐고? 그것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적당한 답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몇 가지 답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굳이 중국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바로 그들이 무슨 반론을 할지 눈앞에 훤히 그려졌습니다.

 

“현 정권의 무능에 대해 사람들이 심판하고 싶었기 때문이야!”
“대선에 도전한 후보가 10명도 넘었다면서 왜 굳이 그런 사람을 뽑은 것인데?”
“어, 뭐, 그래도 제1야당이니까, 그러니까. 뭐.”

 

역시 ‘정권 심판론’은 논리가 궁색합니다. 이명박 당선자가 제1야당의 후보이기는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어느 때보다 출마자가 많았던 대선이었기에 절대적인 이유라고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이 분명했습니다. 다른 이유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경제! 우리는 경제 대통령을 원했지 않습니까!

 

“경제를 살리고 싶었기 때문이야.”

“경제 대통령을 원했기 때문이야.”

 

우리나라 사정을 잘 모르는 중국인들은 그럭저럭 수긍을 할 법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곰곰이 따지고 보면 그것도 이유로 내놓기에는 적절한 답변이 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BBK 특검 결과가 이명박 당선자가 '아무런 관련 없음'으로 나온다는 가정을 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명박 당선자는 김경준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됩니다. 이런 논리가 성립되면 ‘한국인은 경제 대통령을 원했다’는 말이 보기에 따라 우습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경제 대통령’이라고는 하지만 ‘금융 사기를 당한 사람’, 그런 사람을 한국인들은 ‘경제 대통령’을 원해서 뽑았다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설명을 해도 납득시키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BBK 특검도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하지 않은 만큼 특검을 통해 공정하고 모든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을 만한 결론을 내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정말로 이명박 당선자가 아무런 관련이 '없으면 없다'고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고 관련이 있으면 '관련이 있다'고 명명백백히 밝혀야 할 것입니다. 이제 BBK 특검을 보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뿐만이 아닙니다.

 

해외에서도 BBK 특검 과정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비록 저는 중국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이미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지만 괜찮습니다. 앞으로 진행될 BBK 특검이 공명정대하게만 이루어져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온다면 상처받은 제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BBK 특검, 국가 이미지에도 영향 줄 수 있어

 

기실 BBK 특검은 단순히 제 자존심과 관련된 문제만은 아닙니다. 작게는 제 자존심에 불과하지만 크게는 우리나라 이미지와도 관련되어 있는 부분입니다. BBK 특검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면 못할수록 외국 언론들은 더 큰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민주주의 국가를 자부하는 미국에서 부시 대통령과 앨 고어 후보가 맞붙었을 때 일어났던 투표 과정이 공정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연이어 들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외국 언론들이 그때 어떤 평을 했는지 다시 한 번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BBK 특검 과정’을 다시 돌아봐 주십시오. 이 과정을 보는 우리나라 밖의 눈으로 ‘BBK 특검’을 바라볼 때 과연 어떨까요?

 

보수 언론과 집권당에 속해 있는 정치인들께서 특검법 반대를 외치시면 이런 논리를 폈습니다.

 

“이미 당선이 되었고, 국정 운영을 하루빨리 파악해야 한다. 그런 중대한 시기에 특검으로 당선자를 흔들어 일에 전념할 수 없게 되는 것이 국가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얼핏 보면 타당합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이 왜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수없이 많은 이들이 대답을 해주었기에 여기서 다시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적어도 우리나라 안에서, 집안에서 그런 논의가 이루어진다면 그나마 참을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외국에서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얼마나 부끄러운 줄 아십니까? 온갖 도덕적 의혹이 있는 대통령을 뽑은 국민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그래도 견딜 수 있습니다. ‘위장 전입’, ‘위장 취업’ 등 사실로 드러난 것도 있지만 ‘BBK’는 아직까지 분명히 밝혀진 사항이 아니니 말입니다.

 

그런데 대선 전에 ‘BBK 특검을 수용하겠다’고 했다가 당선이 되자 ‘특검은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그야말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대체 외국에서 우리나라 정치인들을, 아니 우리나라를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이제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을 일만 남았습니다. 해외에 있는 동포들의 자존심은 물론 국가 이미지도 더 높일 수 있는 마지막 방법, 그것은 정치인들도 검사들도 다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해외에서 외국 친구들 보기 부끄럽지 않게 살아갈 수 있도록 좀 도와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드리겠습니다.

 

“BBK 특검 이번에는 온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그런 결과물을 내놓는 수사를 해주십시오!”


태그:#중국, #이명박, #B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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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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