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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과 함께 공연을 즐기는 내외국인들
 외국인들과 함께 공연을 즐기는 내외국인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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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목요일 밤 9시. 2012여수엑스포가 열릴 여수 여서동의 C카페에는 20~30여명의 외국인들이 모여 향수를 달래며 정보를 교환한다. 모이는 멤버들은 미국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의 백인들로 거의 대부분 영어 강사들이다.

보통은 2~3명의 한국인이 외국인들과 어울려 영어도 배우고 담소를 즐기다 늦은 시각 돌아간다. “별 문제는 없느냐”는 질문에 종업원은 “말썽 피우지 않고 조용히 얘기하거나 기타를 치며 즐겁게 놀다가 돌아간다, 재미있고 때론 같이 친구가 되어 좋다”고 말했다.

소문을 듣고 찾아간 6일엔 여느 날과 달리 별난 손님들이 찾아왔다. 20여명의 엑스포 통역자원봉사자들이 리사와 함께 오늘 공연할 이안을 기다리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던 것. 그들은 여수시 영어통역자원봉사자 모집에 응시한 200명 중 선발된 멤버들이다.

간단한 필기와 면접을 거쳐 여수를 소개할 관광가이드로 선발된 이들은 매주 월·수·금 10시부터 11시 30분까지 리사선생님과 함께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여주시에서는 이론교육만으로는 무료할 것이라고 판단, 격주로 현장에 가서 실습도 겸할 수 있게 했다.

자원봉사자 중 한분은 "영어도 배우고 지역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데서 보람이 있다"며 "현장을 순회하면서 기존 영어안내문의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고 개선하면서 새로운 영어 안내문을 작성하고 있다"고 전했다.

참석한 한국인 중 유일한 남자인 고충신(55)씨는 미국에서 생활한 지 24년 만에 한국에 왔다. 고향인 고흥 포두를 떠나 여수수산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미국버지니아 조선소에서 엔지니어로 정년퇴임을 한 후, 몸이 불편한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온 것. 한국에 온 지는 2년째다.

24년 만에 한국을 찾은 고충신씨
 24년 만에 한국을 찾은 고충신씨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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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는 자녀들은 부인과 함께 버지니아에 산다. 영어로 말하기를 좋아하고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방송통신대학에 진학, 현재 영어과 4학년에 재학 중인 그는 “작은 힘이나마 조국에 보탤 기회가 생겨 참여 했는데, 유능하고 잠재력 있는 젊은 사람들하고 같이 있다는 게 즐겁다”고 한다.

정말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오니 이방인 같은 느낌이고, 너무나 변한 게 많다는 고씨는 자원봉사자들과 같이 공부하며 느낀 심정을 이렇게 얘기했다.

"한국 사람들은 어려운 단어는 많이 알고 있지만 정작 영어로 표현을 하지 못한다. 중학교 정도의 실력만 있으면 충분히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데 어려운 단어로만 하려고하고, 문법과 독해 중심의 영어가 한국 영어 교육의 맹점이다."

"영어 교육의 맹점이 한국의 맹점 아니겠느냐"는 그는 "밖에 나가면 어! 뭔가 잘못됐구나!하는 생각이 든다"며 사회 각 분야의 변혁이 필요하단다. "특히 정신적인 면에서 무비판적으로 남의 생각을 받아 들인다"며 한국사회를 꼬집었다.  

그는 이어 "세계 몇 위만 따지고 좋은 대학, 좋은 자리만 탐내면서 앞만 보고 산다, 먼저 간다고 발전이 아니다, 앞만 보고 가다가는 낭떠러지에 떨어질 수도 있다"며 "뒤도 돌아보고 삶을 즐기면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줄 알아야 한다"고 따끔한 충고를 줬다.

미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한국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봤을 땐 깜짝깜짝 놀랐다는 그는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는 후퇴를 해서라도 도덕재무장과 정신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시에만 근무하려고 하고 열악한 시골은 가기를 꺼려하는 원어민 영어교사를 위해, 지역 모 기업의 지원으로 낙도를 돌며 영어를 가르치는 이안은 캐나다 토론토 출신이다. 음악을 좋아해 수업 도중  기타를 치며 재미있게 영어를 가르치는 그는 9시부터 11시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공연을 했다.

4살난 아들의 죽음을 겪고 몇 달간 비통에 싸여 있다가 작곡한 에릭 크랩튼(Eric Clapton)의 ‘Tears in Heaven'의 노래가 시작되자 시끄럽던 장래는 커다란 박수 소리로 가득찼다.

이안과 그의 여자친구 쉐난이 함께 노래하고 있다
 이안과 그의 여자친구 쉐난이 함께 노래하고 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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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1960년대 데뷔이후 다양한 음악적 활동으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가수 닐영(Neil Young)의 ‘Heart of Gold'와, 비틀즈의 'Let It Be'를 부르자 홀안은 웃음과 환희로 가득했다.

미국에서 올해 초 왔다가 이안의 공연을 보고 반했다는 쉐난(Shannon)은 이안의 장점을 통찰력, 합리적, 결단력으로 종합했고 감정이 풍부하단다.

깊어가는 겨울밤, 흥겨운 노래 소리를 들으며 여수엑스포유치 성공의 기쁨과 함께 고씨의 충고가 귓가에 맴돈다.

덧붙이는 글 | SBS와 남해안신문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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