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조금은 심심할 정도였다. 그만큼 예상대로의 보도가 쏟아져 나온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삼성 비자금 의혹과 관련 특별검사제 도입을 수용한 직후인 지난달 28일부터 삼성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일간지들과 경제신문들이 한 목소리로 '경제위기론'을 외치기 시작했다. 어느새 국가 안의 국가로 자리 잡은 '삼성공화국'을 위한 구국의 회의라도 사전에 개최한 듯 말이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가 지난 10월 말 삼성 비자금 관련 의혹을 제기한 순간부터 삼성의 '구사대' 역할을 자처한 경제신문들은 '삼성 흔들기=국가경제 흔들기'라는 등식을 앞세운 보도들을 쏟아냈다.

 

이 같은 보도는 노 대통령이 특검을 수용하고 검찰이 이건희 삼성 회장 등 수뇌부에 대한 출국금지와 함께 소환 조사 계획을 밝힌 다음날인 지난 11월 28일자 경제신문들에서 정점을 이뤘다.

 

<한국경제>는 3면 머리에 '특검법 수용…계좌추적…최고경영진 출국금지-삼성 "손발 다 묶여 경영 어떻게 하나"' 기사를 배치하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인 이 회장이 검찰의 출국금지로 인해 베이징올림픽에 앞서 내년 상반기 중 열리는 IOC 총회에 참석하기 어려울 전망인데, 이는 삼성뿐 아니라 국가 차원의 대외신인도 하락을 부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의 "확인되지 않은 한 개인의 주장만 믿고 세계적인 경영인으로 존경받는 그룹의 총수를 출국금지시키는 것은 이 회장을 잠재적 범죄자로 인정하는 것"이란 말을 통해 검찰의 이 회장 출국금지 결정을 아닌 척하며 사실상 대놓고 비판했다.

 

같은 날 신문에 게재된 사설은 심지어 모순이기까지 하다. 우선 특검에 대한 기본 인식은 "법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문제가 많은, (정치권의) 정략적 차원에서 결정됐다"는 것이다. 또 "검찰수사가 착수단계에 있는데도 특검법을 만든 것은 검찰 전체에 대한 불신이며 재판 및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을 재차 수사한다는 것 자체가 사법질서를 뒤흔드는 것으로, 그럴 듯한 의혹만 내세우면 어떤 기업도 특검의 칼날에서 피할 수 없다는 나쁜 선례까지 만들었다"고 탄식했다. 그러면서도 "의혹은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말한다.

 

뭔가 아리송하다. 앞서 3면에선 이건희 회장 출국금지 방침과 관련해 국가신인도 하락 등 경제에 미칠 영향을 논하며 검찰의 수사를 문제 삼더니, 특검은 검찰이 수사 중인 사안을 재차 수사한다는 측면에서 옳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검찰 수사도 특검도 잘못됐다는 소리 아닌가. 그러면서 의혹은 명명백백하게 밝히라니, 차라리 삼성을 '언터쳐블(untouchable)'의 영역으로 남겨두자고 대놓고 주장하는 게 솔직하다.

 

같은 날 발매된 <아시아경제> 보도 '삼성특검, 한국경제 좌초 내모나', '경제 훼손하는 '정치쇼' 더 이상 안된다' 등과 사설 '삼성그룹과 시련의 경영학', <서울경제> 보도 '삼성 투자 차질·경영 공백 불가피', <머니투데이> 보도 '삼성 허탈·암담·한숨…그룹전체 위기감 고조' 등도 비슷한 논조의 마찬가지 모순을 안고 있다.

 

이날 발매된 경제신문의 기사와 사설 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매일경제> 사설 '李회장 出禁시켜 국제망신 줘서야'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세계 시장을 무대로 외국 기업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출금조치로 기업인 발이 묶이면 당장 대외 거래에 차질을 빚을 뿐더러 기업인과 기업 이미지 훼손은 더욱 심각하다. 이번 조치는 이 회장을 국제적으로 망신을 준 것이나 다름없다. 이로 인해 이익을 보는 것은 결국 외국 경쟁 업체들이다. 한국 최대 그룹 총수가 여행금지 조치를 당했다며 박수를 칠 것이다…(중략)…수사는 엄정하게 하되 기업과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자세가 아쉽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국가 이미지에 금이 가지 않도록 지난달 뇌물수수 혐의로 낙마한 전군표 국세청장에 대해서도 '깨끗한 국가이미지를 지키고 국정이 흔들리지 않도록' 봐주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가능하며, 극단적으로는 버마 민주항쟁을 총칼로 진압하며 모든 미디어를 차단한 군부의 행위 역시 '국가 이미지'를 위해선 정당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이렇듯 경제신문이 거의 '대놓고' 삼성 구하기에 뛰어들었다면 삼성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은근한' 어조로 삼성을 건드려선 안 될 이유들을 열거한다.

 

'외국투자자들은 '특검'을 물었다', 'WSJ "삼성 이미지 타격입고 있다"'(11월 29일, 중앙일보 6면), '삼성비자금 스캔들, 한국 주식회사 타격'(12월 3일, 중앙일보 6면), '금융회사 생명은 고객 비밀인데…'(12월 3일, 중앙일보 6면), '삼성 특검을 정치 선동에 악용 말라'(11월 28일, 동아일보 39면) 등의 방식이다. 삼성 특검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을 이용해 경제위기론을 퍼트리는 것이다.

 

언론의 이런 모습들은 과거 X파일 사태나 현대 비자금 사태 때도 볼 수 있었다. 겉으론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면서도 은연 중 덮어줄 건 덮어주자는 방식의 여론몰이로 정치권과 검찰을 압박한 것이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적당히 덮어주니 또 다시 드러나는 불공정 경쟁의 폐해밖에 더 있나. 삼성과 함께 언론도 정신 차려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 PD저널 >(http://www.pdjournal.com)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태그:#삼성 비자금, #삼성, #한국경제, #서울경제, #특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