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피곤하실 텐데 다음에 한가하면 오세요.'

 

삼성SDI 하이비트 하청노조 이지현 사무국장과 인터뷰를 하려고 사전에 연락을 취하니, 야간근무를 하고 농성장에 오면 피곤할테니 다음에 오라는 문자가 왔다. 그래서 나는 '다음엔 시간 내기도 쉽지 않고 또 평일 농성장 분위기는 어떤지 보고싶기도 해서 오늘 가겠노라'고 답문을 보냈다. '와도 좋다'는 응답을 받고서 야간작업을 했다.

 

오전 8시. 일을 마치고 퇴근하려는데, 부슬 부슬 비가 내린다. 나는 그동안 모아 놓은 삼성관련 보도자료와 우리 일터 노조 소식지 꾸러미를 들고서 퇴근했다.

 

"오늘 방송국에서 우릴 찍으러 온데요"

 

오전 10시 30분경 언양에서 통도사로 가는 중간지점에 있는 삼성SDI 하이비트 하청 노동자들의 노숙 농성장에 도착했다. 다행히 울산과 달리 그곳은 비가 내리지 않았다. 대형 텐트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여러 농성자들이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 무슨일 있어요? 모두들 바쁘네요?"

"네, 오늘 공중파 방송국에서 우리 찍으러 온데요. 그래서 준비하고 있어요."

 

그들은 텐트 안을 정리하고 또 새롭게 꾸미고 있었다. 잘 안 보이는 글자는 매직으로 다시 쓰기도 하고 벽보도 새로 붙였다. 몇몇 노동자는 앉아서 예쁜 편지지에다 열심히 뭔가를 적고 있었다.

 

"지금 뭐 써요?"

"이거요? 삼성SDI 관리자들에게 복직 시켜 달라고 편지쓰고 있는 거예요."

 

그들은 벌써 몇차례 편지를 삼성SDI 관리자들에게 보냈다고 한다.

 

 
활기차게 움직이는 농성자들의 모습을 뒤로하고 이지현 하이비트 노조 사무국장과의 인터뷰를 시작했다.
 

- 밖에 있는 가로등 양쪽 모양이 다르던데요?

"삼성, 참 야비해요. 우리가 여기다 텐트 농성 하는 줄 미리 알고는 고성능 감시카메라를  달아 놓은 거예요."

 

- 노숙 농성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지난 3월 말 하청업자는 일방적으로 우리와 계약해지를 하고 4월 2일부로 위장폐업 해버렸어요. 물론 원청회사인 삼성에서 시켜 한 일이었겠죠. 삼성SDI 원청의 구조조정 일환으로 진행된 거예요. 2007년 초부터 우리업체(하이비트)가 없어진다는 소문이 나돌아서 업자에게 물어도 봤지만 완강히 부인했었어요. 그러다 갑자기 3월 말, 한곳에 우리를 모아 놓고 사직서를 쓰라고 강요했어요."

 

 

- 삼성SDI엔 언제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나요?

"지난 2000년 1월 24일 입사했어요. 그때가 고3 겨울 방학 때였어요. 가을에 삼성 단체 취업 설명이 있었거든요. '삼성'하면 이미지 좋잖아요. 또, 학교에서 추천도 하고 해서 입사하게 됐죠."

 

- 입사 당시 삼성SDI 하청업체에 입사 하는줄 알고 있었나요?

"전혀 몰랐어요. 고3이 세상물정 알았겠어요? 입사 교육도 삼성 측에서 하고 삼성 측에서 와서 취업설명할 때도 분명히 '정규직 입사'한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얼마간이나 정규직인줄 알고 다닌 거죠. 사람을 속여도 어떻게 그렇게 야비하게 속일 수 있는 거죠?"

 

- 근무형태는 어땠나요?

"우리는 보통 새벽 6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에 마쳐요. 야간은 오후 6시까지 들어와 새벽 6시까지 일하구요. 그렇게 2교대 하다가 물량 증감에 따라 3교대도 하고 그러죠. 또 그러다 물량 없으면 가위, 바위, 보를 시켜 지는 사람 집에 가라 그래요. 참 어처구니가 없죠? 완전히 자기들 멋대로 잖아요."

 

- 지난 7년간 이 회사에 다니면서 무얼 느꼈나요?

"처음엔 원하청이 같이 일해서 저도 원청인줄 알았어요.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칸막이를 설치하더니 원하청 완전분리하여 작업을 시켜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게 불법파견 피하려고 위장 도급화를 한 것이었죠. 그때부터 어제까지 친하던 원청과 하청이 완전 분리되어 우린 찬밥신세 된 거죠. 잔업 때 간식 주잖아요? 그 간식도 정규직 나누어 주고 남은 거 먹으라고 줘요. 어느 정규직이 2개씩 가져가는지 우리에게 오는 간식은 항상 모자라서 먹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또 어떤 날은요. 정규직 휴게실 넓혀 준다면서 우리가 쓰던 휴게실을 비우라며 내쫓는 거 있죠. 정말 황당하더라구요."

   

- 휴게실 없인 어떻게 지냈나요?

"우린 일할 때 청정복을 입고 해요. 우리도 쉬는 시간 앉아 쉬고 싶잖아요. 그런데 청정복 입고 앉아 쉬게도 못하더라구요. 그래서 서서 쉬기도 했어요."

 

- 240일이 넘었는데 처음부터 투쟁에 가담했나요?

"아니에요. 처음에 투쟁을 시작한 사람들은 모두 떠났구요. 우린 2진이죠. 제가 왜 투쟁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느냐면요. 너무 억울해서 그래요. 너무 억울해서 그냥은 못 물러 나겠더라구요. 정리해고 당할 때 하청업자가 뭐라는 줄 아세요? 위로금 300만원 줄 테니 조용히 하고 나가래요. 그 전에도 그런식으로 소규모 인원 정리는 있었거든요. 7년 동안 일해왔는데 너무 억울했어요. 우리가 돈벌러 왔지 착취 당하러 온 거 아니잖아요."

 

- 앞으로의 계획은요?

"계획같은 건 없어요. 처음엔 멋도 모르고 가담했지만 그동안 투쟁을 이어오면서 뭔가를 조금 알 거 같아요. 그래서 끝까지 가보려구요.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 분들이 삼성 문제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어요. 처음엔 몇개월 투쟁하면 복직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또, 우리가 투쟁해서 그런지 얼마 전 1천여명 인원정리 한다는 내용도 보류되고 하청도 전보단 대우가 좋아 졌다고 해요. 우린 고생하고 있지만 복직의 희망은 놓지 않을래요. 저는 꼭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덧붙이는 글 | 나는 또 야간 출근해야 하고 하이비트 노동자도 바쁜 거 같아 서둘러 현장을 떠났다. 버스 타려고 정류장에 있는데 다른 여성 노동자들이 화장실 갔다가 지나간다.

"가시려구요?"
"네, 그런데 버스가 안오네요?"

"직행버스 자주 안와요"
"어떡하지? 카드 뿐인데..."

그 말을 듣자 한 여성 노동자가 2천원을 주며 오는 차 타고 가라고 했다. 부당해고 당해 240일 넘게 투쟁중이면서 무슨 돈이 있다고... 고맙게 받았고 그 돈으로 차비해서 울산까지 빨리 올수 있었다. 내가 탈 직행은 하루에 몇 대 뿐이어서 놓지면 1시간이나 두시간 기다려야 한다. 고마워 떼먹을 수 없을 거 같다. 나중에 시간나면 가서 갚아야지. 날씨가 많이 추워졌는데 추운 텐트안서 밤은 잘 지내는지.


태그:#노동, #비정규직, #하이비트, #삼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간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노동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청소노동자도 노동귀족으로 사는 사회는 불가능한가?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