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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비자금 의혹'을 제기한 김용철 변호사는 26일 4차 기자회견에서, 삼성 비자금 조성 의혹, 삼성-<중앙일보> 위장분리, 분식회계 의혹 등을 거론했습니다.

 

'분식회계', 어떻게 이뤄졌는가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그룹의 비자금 생성과정에 '분식회계'가 존재했다고 주장합니다. 김 변호사는 본인이 제기한 '삼성물산의 분식회계 방법'을 알기 쉽게 풀이했습니다.

 

"즉 삼성물산이 100원에 사온 물건을 SDI에 120원에 팔아서 1원은 삼성물산이 대행수수료 수입으로 하고, 19원은 비자금으로 조성되는 것입니다. SDI가 삼성물산의 런던지점을 통하여 구매한 장비총액을 계산하면 그중의 120분의 19가 조성된 비자금입니다.


삼성물산 타이뻬이지점은 2%의 수수료에 신용장 개설금액은 메이커 공급가격+15%라고 했으니, 13/115가, 삼성물산 뉴욕지점은 2.5%의 수수료에 신용장 개설금액은 메이커 공급가격+20%라고 했으니 17.5/120가 비자금으로 빠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전형적인 분식회계입니다. 분식회계란 '기업이 재정 상태나 경영 실적을 실제보다 좋게 보이게 할 목적으로 부당한 방법으로 자산이나 이익을 부풀려 계산하는 회계'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가지며, 쉽게 풀이하면 '실적을 실제보다 부풀려 비자금을 남기는 회계'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여기서 새로운 실명이 등장합니다. '강부찬', 삼성SDI의 구매담당이라고 하는데, '메모랜덤'을 비롯한 비자금 관련 서류를 복사해 미국으로 도망가면서 삼성에 미국 비자와 생활비를 달라고 협박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구매담당'인만큼, 만일 삼성SDI가 삼성물산을 통해 분식회계를 했다면 그 과정을 너무나도 잘 알 수밖에 없는 인물일 것입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김인주 사장이 "강부찬, 죽여 버릴까"라고 진지하게 말했다는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도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거대한 댐도 언제나 바늘만한 구멍으로부터 시작해 무너지는 법이거든요.


문제의 인물 '강부찬', <시사인>과 인터뷰하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BBK 의혹'과 '삼성 비자금 의혹', 정국을 달구는 이 2개의 이슈는 <오마이뉴스>와 <한겨레>, <시사인>을 통해 적극적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시사인>이 '한방'을 날렸습니다. 문제의 인물 '강부찬'과 인터뷰를 했으며, 이 인터뷰는 MBC <뉴스데스크>를 통해 전국에 보도됐습니다.

 

김용철 변호사가 비자금 조성 증거라며 공개한 '계약서 사본'에서, 강부찬씨는 당시 삼성전관 구매담당 서모 부장과 더불어 직접 서명한 것으로 표기돼 있습니다. 강부찬씨는 계약서 작성을 시인하면서, 비자금 조성까지 했다고 시인한 것입니다. '13/115'라는 비자금 조성 수법까지 시인했습니다.

 

"암호처럼 쓴 거죠. 이 공문서가 드러나도 '아 이거 샘플비구나'라고 알게끔 꾸며 놓은 거죠."

 

그러니까, 삼성 직원(특히 구매담당)만이 알 수 있는 암호와 같은 방식으로 작성된 서류라는 의미입니다. 강부찬씨는 그러면서 "비자금은 임원들의 차명계좌에 보관된다"던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에도 뜻을 같이 했습니다.

 

"금융실명제 하고 난 다음에 본사 쪽에서 (차명계좌는)임원 몇 사람하고. 난 그때 당시에 대상자가 아니었으니까."

 

물론, 삼성 측은 김용철 변호사와 강부찬씨의 폭로를 모두 부인했습니다. "강부찬씨의 주장이 신빙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해 돈을 주지 않았다"는건데, 해명의 강도가 좀 약합니다. '분식회계'가 사실이 아니라면, 좀 더 강하게 대응했겠죠.

 

만약 제가 삼성 측 관계자였다면 "신빙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해 돈을 주지 않았다"는 반응이 아닌, "그런 사실 자체가 없었기에 요구를 무시했다"는 반응을 보였을 것입니다. 말꼬리를 이렇게 흐렸으니, 다시 한번 해명의 신빙성을 완벽하게 믿기는 어려워보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용철 변호사에 이어 다시 한번 김용철 변호사의 증인을 자처하는 인물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물론 검찰 특별수사본부와 특검 팀의 수사단계가 남아있으니,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지만 증언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증인이기에 무시할 수만은 없어보입니다.

 

분식회계의 사례와 그 처벌

 

'분식회계'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재벌그룹은 '대우'와 'SK', 그리고 미국의 '엔론'일 것입니다. 대우의 경우, 23조원의 추징금과 함께 대법원에서도 유죄가 확정됐습니다.

 

김우중씨는 40조원에 이르는 분식회계를 저지르면서 총액 9조 8천여억 원의 사기대출을 받았다고 하는데, ㈜대우와 대우자동차, 대우전자, 대우중공업 등 수출거래를 많이 하는 주력 계열사를 동원해 '수출대금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분식회계를 저지른 것입니다.

 

삼성이 삼성물산과 삼성SDI를 이용해 SDI의 장비구매대행계약을 통해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면, 대우는 외국 유통업체에 물건을 떠안겨 물류창고에 쌓아놓은 뒤 '수출'로 회계장부에 기록한 것입니다. '밀어내기 수법'이라고 하죠.

 

반면에, SK그룹은 '부당 주식교환'과 '이면계약'이라는 수단을 활용했습니다. SK증권은 JP모건(2000년에 체이스 맨허튼과 JP모건이 합병해 JP모건체이스가 됨)과 유상증자계약을 맺어 대외신뢰도를 회복하면서 퇴출 위기에서 구제됩니다.

 

문제는, 이 유상증자계약 과정에는 이자금까지 포함해 SK그룹이 재매수(JP모건은 주당 4290원에 SK증권 주식을 사, 주당 1535원에 SK계열사에 되팔았다)하겠다는 이면계약이 체결됐다는 것, 그리고 이 돈(1078억원)은 SK글로벌의 해외법인들이 지급했다는 것입니다.

 

가공의 매출채권을 계상하면서 그 매출액을 과대계상(계열사 간의 거래를 부풀렸다는 뜻), 결국 이익까지 과대계상된 거죠. 자회사들의 순자산을 부풀려서 실제 발생한 손실을 누락해버린 것입니다. 해외매출에 대한 기한부어음을 위조해 부채에서 누락하면서 분식회계가 발생한 것입니다.

 

당시, SK의 분식회계는 미국에서 떠들썩했던 엔론의 분식회계와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엔론은 '파트너십'이라는 '특정 프로젝트 수행을 위한 투자자금을 목적으로 설립된 비공개 비상장 합자회사'를 이용했습니다. '파트너십'이 자산만으로 부채를 갚지 못할 경우에 '엔론'이 전액을 책임지는 형태로 구성됐습니다.

 

엔론은 외부지분이 3% 이상이면 자회사로 간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미국회계준칙상의 허점을 이용해 파트너십을 별도법인으로 간주하면서, 파트너십으로 하여금 자금을 차입시켜 엔론의 자산을 매입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익이 발생하면 투자자들에게 다시 나눠주는 방식인데, 파트너십의 외부지분이라는 '3%'는 순환출자 등의 과정을 거친 사실상 엔론의 내부자금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실질적인 내부거래를 이용해 자산의 매각 가격을 올려 이익을 늘리고, 파트너십에서 발생한 손실이 엔론 자체의 손실로 잡히지 않음으로써, 회계상의 이익이 조작된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대우는 23조원의 과징금 처분이 내려졌으며, SK에서는 최태원 회장 구속 후 소버린이 ㈜SK의 주식을 사들이면서 경영권을 노리는 일이 생겨났습니다. 엔론에서는 부회장의 자살과 파산 등의 단계를 거칩니다. '분식회계'란 함부로 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삼성 특검 파장'을 분석한 흥미로운 <조선일보> 기사

 

<조선일보> 26일자 기사 '[심층 분석] 떠는 삼성그룹 · 뜨는 삼성주가'는,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의혹 폭로'와 '노무현 대통령의 특검법 수용' 등의 이슈 속에서, 그 이후의 삼성의 행로에 대한 애널리스트들의 반응을 이야기합니다.

 

...비자금 폭로 사건 발생 이후 국내 증권사의 삼성전자 리포트에는 비자금을 언급한 것이 단 한 개도 없다. 증시에서 정치적인 이슈는 정말로 사라진 것일까?


그러나 '익명 인용'을 약속하면 "민감한 삼성그룹 비자금 문제를 공개 언급할 수 있는 애널리스트는 한 명도 없다"는 푸념 끝에 약간씩 견해가 나온다.


"영향이 있습니다. 삼성전자만 보면 안 돼요. 삼성물산을 보세요. 이용철 전 비서관에게 전달된 비자금이 삼성물산에서 나온 것 같다는 연루설이 나온 후 일주일 만에 17%가 빠졌어요."(A증권사 애널리스트 출신 지점장)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하는데 특검 수사가 뇌관을 터뜨리기야 하겠는가?"(B증권사 투자전략팀장)


"그동안 삼성전자 주가가 많이 빠진 만큼 반등할 때가 됐기 때문이다."(C증권사 삼성전자 담당 애널리스트)


"설사 비자금이 있다 해도,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 자체를 흔들 만한 사건은 아니다."(D증권사 리서치센터 담당 상무)...


<조선일보>는 '특검이 삼성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도를 애초부터 깔고 애널리스트들에게 접근했습니다. 그래서 악영향이 올 것이라는 애널리스트들의 반응부터 전진배치하면서 시각을 자극합니다.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아주 고전적인 견해까지….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정말로 망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조선일보> 기사가 우려했듯이, 이 틈을 악용한 헤지펀드의 침투가 우려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SK든 엔론이든 뻔한 분식회계로 인한 후유증이 각각 경영권 분쟁과 파산의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분식회계의 위험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조선일보> 기사는 단순히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전제 아래 익명의 애널리스트들의 입을 빌어 특검을 견제하려 한 것입니다.

 

분식회계와 비자금의 촌극 '차명자산 보유 및 관리'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에 따르면, 분식회계 과정을 거쳐 생성된 비자금은 핵심 임원 및 간부들의 명의로 관리되고 운용됩니다. 이 과정에서 반환을 거절해 돈을 떼먹히는 사례가 있었다는 주장이 재미있습니다.

 

비자금 계좌를 맡긴다는 것은 그만큼 이건희 회장의 신임을 얻었다는 의미도 있다고 하는데, 일본의 막부시대로 비유하자면 쇼군이 신임하는 다이묘들에게 영지를 하사했다가 다이묘가 그 영지를 기반으로 반란을 일으킨 것과 다름없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특히 차명부동산을 맡긴 명의자가 사망해 상속인이 피상속인의 소유라고 주장해 빼앗겼다는 일화는 죽은 다이묘의 아들이 영지를 이용해 쇼군에게 반란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로도 들립니다.

 

비교하자면 그렇다는 뜻이죠. 우리나라의 조선시대 초기 방식으로 비교하자면, '직전법(職田法)'에 따라 현직 관리가 토지를 하사받았다가 반환을 거부하거나 자손이 상속을 주장했다는 의미로 봐도 되겠습니다. 직전법에 따른 토지는 상속이 불가능하거든요.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의 삼성그룹 내의 위치는 말 그대로 '황제'이거나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20세기 소년>에서 세계 지배자 '친구'와 다름없기에, '떼먹혔다'는 촌극과도 같은 주장을 전해듣고 생각할 수밖에 없던 일화였습니다. 돈 앞에서는 충성(?)과 의리(?)도 무너지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절대지배자도 피할 수 없는 일이죠.

 

분식회계, 그룹을 죽이는 그 이름

 

엔론이나 대우·SK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분식회계란 치명적인 결과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보수언론은 '삼성 비자금 특검'을 비판하려는 의도로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근거없는 낭설을 퍼뜨리지만, 알고 보면 기업의 투명성을 떨어뜨리고 부패구조를 고착화시키는 분식회계라는 악습 그 자체의 문제입니다.

 

재벌은 스스로 주체가 돼 전경련이나 자유기업원 등을 이용해 정부 통제에 대항하기 위해 주주 자본주의를 요체로 하는 신자유주의를 수입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막상 소유지분이 얼마 안되는 상황에서 그룹 전체를 지배하면서 불법까지 서슴없이 저지르는 모양 자체가 공격의 명분이 돼 장하준 교수의 지적대로 '자승자박'을 당한 것입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발행' 파문 역시 근본적으로는 자승자박입니다.

 

이런 '자승자박' 상황에서,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고 부패구조까지 고착화된다면 소버린과 같은 헤지펀드는 언제든 다시 나타나 재벌을 노릴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재벌의 존재는 인정하되 무거운 세금과 노동자의 경영 참여 보장(물론 삼성은 노조조차도 인정하지 않습니다만), 사회적 의무를 맡긴다는 '스웨덴식 대타협'에 길이 숨어있다고 판단하지만, 그에 앞서 재벌가문의 불법과 비리는 반드시 척결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날로 강화되는 외국계 투기자본의 침투 속에서 재벌이 국민적 신망을 얻으며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재벌 스스로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분식회계, 국민적 신망도 잃으면서 그 스스로의 명줄조차 끊을 수 있는 아주 무서운 유혹임을, 재벌들은 반드시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삼성 특검법, #이건희, #김용철, #분식회계,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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