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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금과 정관계 로비 의혹 등으로 얼룩진 '삼성게이트'의 윤곽이 더욱 명확해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김용철 전 삼성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 법무팀장의 양심 고백이후 한달여 만이다.

 

특히 삼성게이트의 핵심인 비자금의 실체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삼성 계열사를 통한 비자금 조성 과정과 운용방식·사용처 등에 대한 증거자료와 내용들이 속속 공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26일까지 모두 4번에 걸친 기자회견, 김 변호사와의 인터뷰 등을 통해 삼성 비자금의 실체를 접근해 본다.

 

김용철 "더이상 재벌이 사회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

 

그동안 김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쪽에선 이번 사건의 본질을 국가와 사회전반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삼성의 불법행위를 바로잡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지난 5일 2차 기자회견장에 나온 김 변호사는 "재벌이 사법체계를, 국가기관을, 우리 사회를 더 이상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물론 자신이 지은 죄도 달게 받겠다고도 했다.

 

여기에서 재벌은 물론 '삼성'을 뜻한다. 사법부에선 판·검사가, 국가기관에는 청와대를 비롯해 재정경제부, 국세청 등 힘있는 부처가 망라돼 있다. 또 학계와 언론계, 시민사회단체까지 삼성의 불법 로비대상에 포함돼 있었다.

 

이어 임채진 현 검찰총장을 비롯한 전현직 검찰수뇌부 3명이 삼성으로부터 불법 뇌물을 받았다는 사제단의 폭로가 이어졌다. 물론 당사자들은 부인했다. 이용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재직시절에 삼성으로부터 현금다발을 받은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이들 돈의 출처는 각 사에서 조성한 비자금"이라고 설명했다.

 

[조성] 삼성물산과 계열사간 이면거래 통한 비자금 만들기

 

그렇다면 삼성 계열사들은 어떻게 비자금을 만들었을까. 26일 김 변호사는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를 내놨다.

 

비자금 조성의 핵심 계열사로 삼성물산이 거론됐다. 삼성 계열사의 해외 구매의 대행과 그룹내 모든 공사를 맡아서 하기 때문에 비자금 조성이 다른 곳보다 쉽다는 것이 김변호사의 설명이다.

 

이어 지난 94년 삼성물산과 삼성전관(현 SDI)의 런던과 뉴욕·타이베이 지사장 등의 서명이 담긴 문건 3장을 공개했다. '메모랜덤(일종의 합의서)'이라는 영문 제목의 문서는 이들 계열사간 설비구매 계약을 담고 있다.

 

내용은 이들 계열사끼리 장비를 사고 파는 과정에서 일정 금액 이상을 비자금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삼성물산이 100원에 사온 물건을 삼성전관에 120원에 판다는 계약을 체결한다. 이어 1원은 물산의 대행수수료 수입으로 잡고, 나머지 19원은 비자금으로 조성한다는 것이다.

 

물론 문건에는 이같은 이같은 차액(19원)에 대해 "사후관리는 상호협의·처리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이같은 기본 계약을 통해 2000억원대의 비자금이 조성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구조본(현 전략기획실)이 비자금 조성 지시를 하면, 계열사들은 그에 따라 비자금을 갹출했다"고 말했다. 삼성물산은 비자금 조성의 한 사례일 뿐이라는 것이다.

 

[규모와 운용] 삼성 사장단을 비롯해 임직원 명의 차명계좌

 

이같이 만들어진 비자금은 삼성그룹 사장단을 비롯한 임직원 등을 통해 운용된다. 대부분 차명 예금·주식 등의 형태다. 일부는 부동산을 가지고 있기도 한다. 물론 이 역시 자신의 이름만 빌려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김 변호사는 지난달 29일 자신 이름의 은행 및 증권계좌 4개를 공개했다. 이 과정에서 김 변호사 자신도 접근할 수 없는 이른바 '보안계좌'가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다. 이들 계좌에서 삼성전자 주식 등을 포함해 50억원에 달하는 현금과 주식 등의 거래가 있었다고 밝혔다.

 

지난 5일 2차 기자회견 때 김 변호사는 "삼성 사장단·고위임원·구조본 임원, 재무와 인사 등 핵심보직 임원 등 일부가 차명계좌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명단을 가지고 있다고도 했다.

 

이어 26일 회견에선 이건희 회장 일가 자산 상당부분이 타인 명의로 관리되고 있다고 밝혔다.

 

차명 예금과 주식, 부동산에 대해서는 이학수 부회장을 비롯해 김인주 사장, 최광해 전 재무팀장, 최주현·장충기·이순동·이우희·노인식 등의 실명을 공개했다. 이어 삼성계열사 사장단 대부분도 포함돼 있으며, 현명관 전 비서실장을 비롯해 이수빈·이필곤 전 회장단과 황영기 전 삼성증권 사장 명의로도 운용됐다고 김 변호사는 말했다.

 

전체적인 비자금 규모는 약간씩 엇갈린다. 삼성 전현직 임원급이 2000명 정도에, 평균 50억원의 예금 또는 주식거래를 가정했을 때 10조원 규모라는 사제단 쪽 의견이 있다.

 

[보관] 삼성 본관 27층에 마련된 비밀공간

 

이처럼 운용돼 온 비자금과 함께 수시로 필요한 자금에 대해선 별도의 공간에 보관돼 왔다는 것이 김 변호사의 주장이다. 그는 삼성그룹 본관 27층 김인주 사장의 사무실 앞 접견실에 비밀공간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접견실 옆에 재무팀 관재파트 임원 사무실 내부에 벽으로 감춰진 비밀 공간이 있으며, 이곳에는 현금 뭉치를 비롯해 각종 상품권이 쌓여있다는 것이다. 물론 삼성 쪽에선 그런 공간은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그는 검찰 고발장에서 "재무팀 관재파트 직원들이 수시로 대형 가방에 든 현금들을 지하 주차장에서 비밀 금고로 옮기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삼성에서의 차명계좌의 존재가 승진의 징표이자 조직이 자신을 믿는 일종의 훈장이었다"면서 "비자금 계좌가 만들어지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일부 간부들은 차명 재산을 자신 가족에게 빼돌리거나, 퇴임 때 자신 명의의 예금 주식 반환을 거부하면서 애를 먹기도 했다는 경험을 말하기도 했다.

 

[사용처] 정관계를 상대로 한 뇌물로비 등

 

불법 비자금 사용처를 둘러싼 논란도 거셌다. 정치권을 비롯해 법원과 검찰·재정경제부·국세청·청와대에 이르기까지 가히 국가권력의 핵심 조직들이 망라됐기 때문이다.

 

전달 방법은 현금이나 상품권 등 현물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주로 설과 추석·여름 휴가 등 1년에 세 번 정도 정기적으로 뇌물을 이들 기관 인사들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재무팀에서 비자금을 조성·운용했다면 기획팀에서 이들 돈 전달을 맡았다.

 

검찰간부 쪽은 김 변호사 스스로 해당 인사들을 직접 체크했으며, 일부에게는 직접 뇌물을 건네기도 했다. 금액은 1인당 적게는 500만원에서 2000만원까지 제공했으며, 국세청의 경우엔 '0'이 하나 더 붙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김 변호사는 지난 5일 "현직에 있는 최고위급 검사 가운데 삼성의 불법뇌물을 정기적으로 받은 사람이 있다"고 말했고, 임채진 현 검찰총장 등 3명의 검찰 고위인사 실명이 공개됐다. 물론 이들은 삼성과의 연관설을 부인했다.

 

또 이 과정에서 이용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도 삼성 쪽에서 500만원의 현금다발을 보내온 사실을 뒤늦게 공개했다. 이건희 삼성회장은 현금 제공이 어려울 경우 와인 등 현물을 제공해보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이밖에 비자금 일부가 이건희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씨의 고가 미술품 구입에 사용됐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지난 2002년과 2003년 2년동안 미술품 구입 대금으로 해외에 600억원대의 돈이 나갔다고 주장했다.

 

물론 삼성쪽은 정관계 불법로비나 명단의 존재 자체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또 홍씨의 미술품 구입에 대해서도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수사는] 사장단 금융계좌 전수조사하면...

 

이제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그동안 김 변호사의 각종 진술과 자료를 보면 비자금 조성부터 운영과정·사용처 등 사실상 '삼성비자금 도표'를 검찰에 그려준 것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비자금을 만든 회사와 조성방식과 비율 등이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나왔고, 삼성 사장단 등 차명계좌를 통한 비자금 관리와 운용실태도 거론됐다. 물론 해당 회사와 인물에 대한 실명이 공개됐다. 이어 누가, 언제, 어떻게, 어떤 뇌물을 가지고 전달했는지의 과정도 나왔다.

 

예를 들어 당장 삼성본관 27층에 대한 압수수색부터 해보면, 비밀금고의 존재여부는 금방 드러난다. 또 삼성 사장단의 금융계좌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해당 임원들을 상대로 자금 출처를 캐묻는다면 누구의 돈인지 알수 있다.

 

또 홍라희씨의 미술품 구입대금의 출처를 조사하거나, 삼성물산과 거래회사 사이의 회계장부를 분석하면 비자금 조성 여부를 밝힐 수 있다.

 

물론 검찰이 이같은 내용들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문제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26일 검찰 쪽에선 이건희 회장을 비롯해 이학수 부회장, 김인주 사장 등 삼성 핵심인사들에 대해 전격적으로 출국금지 조치를 취했다.

 

검찰 자신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이번만은 강도높은 수사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하지만 이미 삼성 일부 계열사를 중심으로 자료를 파기하고 있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비자금을 둘러싼 '삼성게이트'는 이미 국내만의 일이 아니다. 전 세계 많은 언론과 투자자들도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동안 철저히 부인으로 일관해 온 삼성이나, 검찰 모두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태그:#삼성비자금, #김용철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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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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