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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재앙계획(Great Planning Disasters)>이라는 유명한 책이 있다.(우리나라에서는 '도시계획 대성공 대실패'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지만, 정확한 제목은 아니다.) 국토계획, 지역계획, 도시계획 등 계획학 분야에서 영국의 작위까지 받은 피터 홀이라는 계획가가 쓴 책이다. 샌프란시스코의 광역교통체계인 바트 시스템,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런던의 제3공항 사업 등 대재앙 계획 사례를 분석하면서 어떻게 대재앙 계획을 막을 수 있는가를 제안한 책이다.

이 책이 대재앙계획의 요인으로 지적한 두 가지는 간명하다. '수요의 과대평가와 비용의 과소평가.' 사재가 아니라 공공재에 대한 기준이다. 사재라면 천문학적 비용이 들든 그 효과가 미미하든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 아니지만 공공재에 대한 계획은 국민세금이 쓰일 뿐 아니라 한번 시작하면 돌이키기 어려운 '비가역성'이 있고, 규모가 큰 만큼 국민생활, 경제, 환경, 사회 통합 등 각 부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렇게 전문가들도 많고 전문 지식과 기술 판단력과 예측 역량도 늘었는데 왜 대재앙계획은 태어나고 또 굴러가게 되는 것일까? 참 이상하지 않은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인간이 어리석은 걸까, 사회가 어리석은 걸까?

'한반도 대운하'라는 대재앙 잉태 공약

2007년 대선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대표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보면 이런 의문이 생기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대운하를 비판하는 시민단체들은 '0점도 아까운 공약'이라고 하더라마는, 이런 사업은 '대재앙 위험도'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에 잉태되어서도 안 되는 사업이며, 더구나 '정책이 아니라 사업'이기 때문에 대선 공약으로서는 적절치 않다. 공약이 실천을 전제하는 것이라면 '대재앙 위험도가 높은 사업'을 공약으로 건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지난 6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한반도대운하 설명회'에서 대운하 사업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 6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한반도대운하 설명회'에서 대운하 사업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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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서 한반도 대운하의 대재앙 위험을 다시 거론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수많은 국내외 전문가들과 수많은 정치인들(다른 정당들뿐 아니라 같은 당내 인사들 역시)이 대운하의 대재앙 위험성을 이미 조목조목 지적해놓았다. 공감대 조성을 위해서 '환경 대재앙, 경제 대재앙'으로 다음과 같이 간추려본다.
 
환경 대재앙 위험

∙ 먹는 물을 위협한다 : 취수원과 운항로를 어떻게 같이 쓰나? 가둬놓는 물은 썩는다. 물 오염은 엄청난 국가위기가 된다.

∙ 생태를 위협한다 : 배가 다니려면 깊이 6∼9m, 폭 100m가 필요한데 강바닥을 긁어내고 하안의 콘크리트 제방을 쌓음으로 생태계를 파괴한다.

∙ 우리나라 지형지세, 기후조건에 맞지 않다 : 하상계수가 높고 지형지세가 센 우리나라에 인공수로, 인공터널, 인공 도크를 설치하는 것이 위험하다.     

∙ 한번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는 자연파괴다 : 530km의 물길을 인공화한 후 관리 뒷감당을 어떻게 할 건가. 건설비보다 관리비가 더 들 위험이 있으며 파괴된 자연은 되돌릴 길 없다.   

경제 대재앙 위험

∙ 메가톤 급의 리스크 사업이다 : 최소 16조(제안 주장)가 아니라 30-40조(반대 주장) 이상 들 수 있다. 이런 리스크를 안고도 효과가 있는 공공사업인가? 한번 시작하면 새만금처럼 물려버릴 위험이 크다.

∙ 물류 효과가 의문이다 : 최장 3~4일, 최소로 잡아도 30시간이 걸리는 운하 물류에 실을 화물 소요가 있나? 원자재 화물이라면 강원권이 주요 수요지이고, 부산-인천 컨테이너 수송이라면 다른 물류대안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 삼면이 바다인데 웬 운하냐? : 물길은 이미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데, 필요하다면 연안 수송이 더 빠르고 효과적이다.   

∙ 토목사업 투자가 이 시대에 필요한가? : 막대한 국가재정 투자라면 더욱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하지 않는가. 효과가 뚜렷하지 않은 토목 사업보다는 소프트 산업과 첨단 산업 투자 활성화에 써야 하지 않은가? 

∙ 내륙 산업 촉진이나 내륙 관광 효과가 있는가? : 운하 보자고 모여드는 관광이 얼마나 될 것이며, 운하 물류 보고 유치할 수 있는 내륙 산업이 가능한가? 공연히 땅값만 올려놓는 것 아닌가?  

한반도 대운하 대선 공약은 외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외국인들은 '한반도 대운하'라는 아이디어 자체에 한 번 황당해하고 그것이 대선 공약이라는 것에 또 한 번 황당해한다. "150년 늦은 아이디어!" "19세기적 발상!" "삼 면이 바다인 한국을 반도가 아니라 아예 섬으로 쪼개자는 건가?" "그런 토목 사업을 대선 공약으로 내는 게 이상한 일이다" 등. 

말할 것도 없이 운하사업으로 한 건 만들려는 외국 전문가들은 또 다른 기술적 판단을 제공한다. 이른바 '갑'측에 고용된 그들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를 외친다. 물론이다. 이 세상에 기술적으로 가능치 않은 게 어디 있는가. 다만 비용과 효과가 문제일 뿐이다. 고용된 외국 전문가들에게 결국 '환경 대재앙, 경제 대재앙은 너희 나라가 책임져야 할 일 아니냐!'일 것이다.

대재앙 계획의 주역 : 정치인, 정치 용역화 전문가, 정치 도구화 언론 

문제는 이런 대재앙 위험도 높은 사업이 '대선 공약'으로 제시되었다는 것이다. 아주 난감한 상황이다. 지켜야 할 공약(公約)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버려도 될 공약(空約)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국민들 처지를 난감하게 만드는 공약이 아닐 수 없다.  

이 한반도 대운하라는 '대재앙 잉태 사업'이 앞으로 어떻게 굴러갈까? 도대체 국민들은 어떤 선택을 하여야 하는가?

'한반도대운하 설명회'가 6월 17일 오전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프라자에서 한나라당 대선예비후보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자문교수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한반도대운하 설명회'가 6월 17일 오전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프라자에서 한나라당 대선예비후보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자문교수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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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재앙계획>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대재앙계획이 태어나고 굴러가는 과정에 작동하는 세 주역으로서 '정치인, 관료집단, 지역사회'를 꼽는다. 뭔가 한 건 만들려는 정치인, 뭔가 새로운 사업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려는 관료집단, 그리고 이익집단화한 지역사회의 역학 구도가 대재앙계획을 태어나게 만들고 또 굴러가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대재앙계획의 탄생에 두 주역을 추가해야 할 것이다. '정치 도구화한 일부 언론'과 '정치 용역화한 일부 전문가들'. 대운하라는 사업 자체가 잉태된 배경에는 이 두 주역이 절대적인 역할을 해왔다. '선거 공약'으로 등장한 마당에 관료 집단은 공식적으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고, 지역사회는 긴가민가 태도를 유보할 수밖에 없다. 만약 대재앙 사업이 진짜로 굴러간다면 정치 바람을 탈 수밖에 없을 관료 집단과 지역사회도 그 역학에 끼게 될 것은 물론이다. 다만 잉태 과정에는 정치 용역 전문가와 정치 도구 언론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비극이자 코미디다. 선출되고 싶은 정치인이야 대중의 관심을 휘어잡을 목적으로 위험도 높은 공약을 제시하는 것을 설령 이해한다 치더라도, 그 옆에 서있는 전문가와 언론이라! 유력 대선주자가 '4만 불 시대를 열 사업'이라고 청사진을 띄우고, 전문가들이 마치 다 된 사업처럼 청사진을 찬사 논리로 치장하기 바쁘고, 언론은 그 내용을 사실처럼 보도함으로써 이미지를 띄우는 모습이 얼마나 비극이자 코미디인가? 유력 대선주자가 아니었더라면 과연 그 전문가들, 그 언론들은 어떤 포지션을 택했을까?

대운하 공약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정치인, 전문가와 시민단체와 언론들의 처지도 비극이자 코미디인 것은 마찬가지다. '이 무슨 에너지 낭비냐?' 한탄하면서도, 진짜 추진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진지하게 분석하고 대응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한심하지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더 잘 할 수 있었던 사업' 청계천과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업' 대운하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이 '대운하는 이명박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사업'이라는 말을 했는데, 얼마나 위험한 말인가. 이명박 후보는 '청계천도 반대가 많았지만 잘해냈다'고 주장하지만 청계천 사업은 적어도 '대재앙 위험도가 높은 사업'은 아니었다. 다만 청계천은 '훨씬 더 잘 할 수 있었던 사업'이었을 뿐이다. 기술적인 위험도 크지 않고, '환경 복원'이라는 기대 속에서 찬성이 70% 이상이 나왔던 사업이 청계천이다. 하기는, 청계천 복원을 제대로 복원하고 목표에 합당하게 훨씬 더 잘하려 했다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임기 내에 끝내진 못했을 것이고, 그랬었다면 대운하 사업 카드를 공약으로 꺼내지도 못했을지도 모른다.    

10월 1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토론에 앞서 이재오 의원이  직접 '한반도대운하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있다.
 10월 1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토론에 앞서 이재오 의원이 직접 '한반도대운하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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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론에서 대운하 사업 반대가 70%가 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국민들이 대재앙 위험을 상식적으로 감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식이 통하고 있는 것이다. 대선주자 이명박의 열혈 지지자들도 대운하 공약을 반대하고 철회하라고 할 정도다. '그 사람의 약속은 싫지만 그 사람은 뽑는다'는 비극이자 코미디 같은 상태다. 어쩌다 이런 진퇴양난에 빠져버렸을까?   

'설마 하겠어?'와 '한다면 할 걸!'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시나리오로 전개될까? '공약을 취소하라'는 한나라당내 반대 의견, 시민단체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공약을 취소할지 말지'는 모른다. 대운하 공약으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고, 후보로 선출되는 데 막강한 역할을 담당했고, 지역개발적 성격의 공약이기 때문에 여전히 표를 얻는 데 유효하다는 설도 있고, 워낙 '이명박 표 대표 공약'이기 때문에 도저히 취소할 수 없다는 설도 있다.  

공약으로 끝까지 밀고 가서 대통령이 된다면 또 어떻게 굴러갈까? '설마 하겠어?'와 '한다면 하지 않겠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70%가 반대하는데 설마 하겠어, 전문적인 판단을 잘 듣겠지!" "그럴까? 안하고 못 배길 걸. 그거 안하면 공약(空約)이라는 비판이 빗발 칠 텐 데? 저지르고 말 걸!"이라는 의견도 있다. 

여하튼 공약으로 채택되고 대통령이 된다면, 그 이후는 한바탕 우리 사회에 회오리가 몰아칠 것은 분명하다. 그때가 되면 대재앙 계획의 5대 주역들이 맹활약할 것이다. 우리 사회 특유의 정치인들의 사생결단 논박, 관료 집단의 뜨뜻미지근한 상황 대응, 지역사회의 분열된 대응, 정치 용역화한 전문가들과 반대 전문가들의 논리 이상의 가치 대결, 정치도구화한 언론의 휘황찬란한 전개와 반대 언론의 가치 대결 등, 생각만 해도 끔찍한 분열된 사회 상황을 만들 것이다. 재앙계획이 굴러가는 걸 지켜볼 수 없다는 측과 대재앙 계획이 절대로 아니라는 측과의 사생결단, 그 사회 상황 자체가 대재앙일 것이다. 

혹자는 2002년 대선의 '행정수도' 공약과 비교한다. 지역개발 공약이었고, 실제 표를 얻는 데 성공했고, 대선 이후 논쟁적 상황을 만들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하지만 '대운하'는 '행정수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행정수도는 행정수도 그 자체 공약보다도 '국토균형발전이라는 정책목표'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았던 사안이었다. '대운하 같은 사업 공약'은 아니었으며 정책 공약이었고 그에 대한 사회 공감대가 높았기 때문에 여야로 나뉜 정치권에서도 '행정중심복합도시'라는 대안으로 낙착이 될 수 있었던 사안이다.

대운하 사업의 정책 목표는 과연 무엇인가? 과연 그 정책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다른 대안은 없는가? 차분하게 따져봐야 할 일이다.  

상식으로 판단하자  
 
다시 상식으로 돌아오자. 국민은 상식으로 판단한다. 사업 자체보다도 정책 목표로 생각해보자.   

만약 대운하 사업의 정책목표가 '물류 개선'이라면 운하보다는 철도가 있다. 환경친화적인 물류, 에너지 저감적인 물류라면 철도가 더욱 낫다. 지난 30여 년 동안 도로에 밀려서 제대로 투자되지 못한 철도는 이제 고유가시대와 대륙철도시대, 지속가능한 개발시대에 다시 각광을 받아야 할 대안이다.

이명박 후보 측에서 갑문 예정지로 지목한 바 있는 서울 잠실 수중보 북측 갑문에 10월 15일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온몸에 쇠사슬을 묶고 올라 "STOP 경부운하"를 외치고 있다.
 이명박 후보 측에서 갑문 예정지로 지목한 바 있는 서울 잠실 수중보 북측 갑문에 10월 15일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온몸에 쇠사슬을 묶고 올라 "STOP 경부운하"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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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 수송 물류'도 있다. 현재는 주로 대륙 간 대규모 무역물류로 대형 컨테이너 항 위주의 인천, 광양, 부산이 주목을 받고 있지만 이른바 피더(feeder) 연안 수송에 주목하면 삼면이 바다이면서도 저활용되고 있는 우리의 연안이 엄청난 가능성을 갖게 되며, 이에 따른 부품산업과 물류, 관광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마침 중국과의 환 황해, 러시아와의 환 동해 가능성도 높아지는 시대이니 안성맞춤이다.  

만약 대운하 사업목표가 '환경 개선'이라면 인공 운하보다는 수질 보전과 하안 생태 보전을 위한 더욱 체계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강바닥을 몇 미터 씩 긁어내고 하안을 콘크리트 제방으로 쌓아놓는다면 과연 그 후의 환경 개선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댐' 만드는 것도 고민하는 시대, '다리' 하나 놓는 것도 고민하는 시대, '터널' 하나 뚫는 시대 아닌가. 

만약 대운하 사업목표가 관광이라면 인공 운하보다는 내륙 곳곳의 특별한 관광 상품 개발이 옳다. 운하를 통한 관광 수요도 기대하기 어렵거니와, 운하를 만들면 강을 따라 무차별한 획일적 난개발이 일어날 것은 뻔하지 않은가. 독일이나 네덜란드 운하는 몇 백 년에 걸쳐 그 지형, 그 기후에 맞춰서 조성되었으며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무차별적 동시 개발로 오히려 공멸한다. 

만약 대운하 사업목표가 경기 부양과 일자리 창출이라면 이건 정말 위험한 생각이다. 이른바 토목사업으로 단기간 대량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그렇게 단기간 만들었더라도 이후의 경쟁력은 오히려 떨어진다. 인프라에 투자할 것이면 그야말로 성장동력 인프라가 될 수 있는 인프라에 투자해야 한다.  

'지름신'을 상식으로 경계하자  

요즘 젊은이들을 사로잡는다는 '지름신.' 아무리 그래도 쇼핑 정도이고 대재앙이 일어나도 개인의 파산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공공성이 높은 국책 사업에 지름신이 내렸다가는 국가의 재앙이다. 사회 대재앙, 환경 대재앙, 경제 대재앙, 상식으로 판단하자!


태그:#한반도 대운하, #이명박, #공약, #대재앙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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