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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가 19일 오후 서울 롯데호텔에서 개최한 ‘2007 남북정상회담 기념 국제학술회의’에서 국내 정치학자들끼리 서로 다른 시각에서 날 선 공방을 벌여 눈길을 끌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가 19일 오후 서울 롯데호텔에서 개최한 ‘2007 남북정상회담 기념 국제학술회의’에서 국내 정치학자들끼리 서로 다른 시각에서 날 선 공방을 벌여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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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두 정상이 손을 맞잡은 광경은 한국 근대사가 이제 한 역사의 장을 넘기고 새로운 장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김기정 연세대 교수)

“남북 정상의 합의사항에는 주변 강대국의 입장이 충분히 고려돼있지 않고, 남북관계가 더 진전되지 못하는 현실적 제약요소들이 담겨있지 않다.”(김영수 서강대 교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가 19일 오후 서울 롯데호텔에서 개최한 ‘2007 남북정상회담 기념 국제학술회의’에서 국내 정치학자들끼리 서로 다른 시각에서 날 선 공방을 벌여 눈길을 끌었다. 김기정 연세대 교수와 김영수 서강대 교수간에 벌어진 이날 논쟁은 한달 앞으로 다가온 대선 결과에 따라 남북정상회담의 성과가 다음 정권에 어떻게 수렴될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았다.

김영수 교수는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후보의 자문교수단에 이름이 올라있고, 김기정 교수는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의 대북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왔다.

김기정 교수는 제1세션 ‘2007 남북정상회담과 동북아 지역의 평화·협력’의 주제발표자로 나섰다. 그는 ‘2007 남북정상선언’을 조목조목 짚어가면서 “노무현 대통령 방북 이전 각계에서 전망했던 성과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는 특히 ‘서해평화협력지대’ 합의에 대해 “상존해왔던 군사충돌 위기를 안보의 관점에서만 접근하지 않고 경협과 광의의 신뢰구축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 점은 상당히 창의적 발상”이라고 했고, 평화체제 구축에 대해서도 “비극적 세계사의 한 단락을 마감한다는 의미를 가진다”며 적극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또 “한반도문제는 남북관계의 ‘민족축’과 와 동북아 지역질서라는 ‘국제축’, 2개의 축에 의해 정치적 좌표가 결정돼왔다”면서 “주로 국제축에 좌우돼왔지만, 민족축을 통해 냉전적 구조를 타파하고 긴장관계를 풀어내야 하는 것은 남북한 당사자에 주어진 몫”이라고 강조했다.

6가지 '착각'... "평화적으로 체제변화 이룬 예 없다"

김영수 서강대 교수
 김영수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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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발표에 이어 토론에 나선 김영수 교수는 남북정상회담이 여러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일단 평가한 뒤 “그러나 대선에서 지금의 대북정책을 받아들이지 않는 후보가 선출되면 실천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김기정 교수가 제시한 ‘낙관적 전망’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6가지의 ‘착각’ (misperception)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며 이를 차례로 열거해 나갔다.

1. 북한을 도와주면 북한체제가 회복해 나갈 것이라고 하지만 북한과 같은 체제가 평화적인 변화를 통해 체제변화를 이룩한 예는 아직 없다.

2. 북핵문제만 해결되면 국제 자본이 북한으로 많이 들어갈 것으로 예측하지만, 베트남 경우를 보면 무려 20년이 지나서야 국제 자본이 들어갈 수 있었다.

3. 미국의 행동은 항상 일관되리라는 생각을 많이 하지만, 얼마 전부터 미국의 대북정책은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고 있다. 미국이 다시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지 않고서는 지금의 낙관적 시나리오를 얘기하기 어렵다.

4. 흔히 북한의 생각을 보편주의에 입각해서 보는 습관이 있는데, 북한도 우리와 같이 상식에 근거해서 판단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5. 동북아에 다자간안보체제가 가능할 것이란 달콤한 얘기들을 하지만, 이미 불가능하다는 사실들, 반대론도 많다.

6.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협력으로 나가면 남북이 공존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북한 핵이 있는 한 우리는 생존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걸 망각하고 있다. 공존과 생존의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하는 것이다.

재반박 -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에 너무 압도당하는 경향 있다"

김기정 연세대 교수
 김기정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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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자들이 발언을 마친 뒤 다시 김기정 교수에게 마이크가 돌아왔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김영수 교수를 향한 재반론에 할애했다. ‘6가지 착각’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다시 반박했다.

1. 그럼 북한을 압박하고 고립시켰다면 체제변화가 가능했을까?

2. 북한은 베트남과는 지정학적 사정이 다르다. 주변국들의 지원이 있으면 국제 자본이 들어가는 속도는 얼마든지 빨라질 수 있다.

3. 미국의 행동이 일관된다고 아무도 보지 않는다. 봉쇄정책의 유산이 대북정책에 남아있으나, 결국은 변할 것이다. 통일된 한반도가 미국의 이익과 무엇이 합치되는지를 찾아야 한다.

4. 보편성의 문제. 그렇다면 북한은 전혀 예외적이라고 봐야 하나?

5. 다자간 안보체제가 가능하다는 오해? 2차대전 직후 유럽이 아무도 지금의 EU로 갈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없다. 왜 동북아는 그게 안 된다고 미리 단언하는가.

6. 공존과 생존의 문제. 그 갈림길에서 어떤 하나의 사건이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지난 60년간 누적된 인식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김기정 교수는 “현실을 생각해야 하지만,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에 너무 압도당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현실은 늘 변하는 것이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의도, 비전, 희망, 이런 것이 이 시대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사치품이 아니다”라고 말을 맺었다.

"비관적으로 들릴지 모르나 비관적 전망에 경도된 것은 아니다"

김영수 교수도 다시 정리발언을 할 기회를 얻었다. 그는 “내가 얘기한 것이 비관적으로 들렸을지 모르나 비관적 전망에 경도되는 것은 아니다”며 “국제정세나 국내정치의 변화 하나하나를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흔히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이 서로 정책을 수렴한다고 얘기해왔는데 대북정책만은 한 정권 내에서 이렇게 일관성 없이 변한 것이 매우 드문 경우”라며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했던 부시 정권이 지금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관계개선을 하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일관성 부재를 지적했던 것”이라고 거듭 ‘미국 변수’를 지적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임용순 전 성대교수가 마지막 정리발언을 하면서 두 사람의 논쟁에 대해 한마디를 보탰다.

“닉슨(전 미국대통령)은 중국을 ‘인류의 암’이라고 했었는데, 그의 손에서 중국과의 데탕트가 이뤄졌다. 닉슨 같이 호감 갖기 힘든 인물이 이뤄낸 데탕트가 인류의 가장 중요한 성과였다고 본다.”


태그:#남북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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