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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의 후보단일화 추진에 파열음이 들리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 합당-후보단일화 선언을 했지만, 내부로부터 강력한 제동이 걸렸다.

 

대통합민주신당 내부에서 "당을 민주당 박상천 대표에게 그냥 넘겨버린 것"이라며 들고 일어난 것이다. "당내 의견을 수렴하지 못한 밀실결정"이라는 비판도 따랐다.

 

결국 신당 지도부는 민주당과 재협상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은 "재협상은 없다, 합의가 파기되면 각자 선거를 치르게 된다"고 잘라 말했다. 합의선언이 파기될 수도 있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

 

'진정성' 사라지고 '사심' 가득 찬 합의

 

그렇게 되면 정동영-이인제 후보단일화는 물 건너가게 된다. 범여권세력은 이번 대선에서 후보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채 예정된 패배의 길을 가야할 지 모른다.

 

물론 후보단일화가 이렇게 결렬되면 두 당 모두 대책이 없다. 공멸의 위기를 맞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재협상의 여지는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어떻게든 정동영-이인제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그러나 상처를 많이 입게 되었다. 잘못된 합의 때문에 후보단일화의 효과를 스스로 갉아먹는 자해행위를 하게 된 셈이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일까. 후보단일화의 진정성보다는 '사심'이 과도하게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대선을 앞두고 이루어지는 후보단일화는 정치적 흥정과 대가가 오가는 게임이다. 그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는 상식의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140대 8의 의석비율을 가진 정당이 1대 1의 지분으로 합당한다거나, 내년 6월에 가서야 전당대회를 개최한다는 내용은 해괴하기만 하다. 현재 당권을 가진 사람들의 기득권을 보장해주는 밀실 합의라는 비판이 나오게 되어 있다.

 

왜 지금 이 마당에 '지분' 얘기가 쟁점이 되어야 하는가. 지분의 적정선을 따지기 이전에 그런 문제를 관심거리로 만든 것 자체가 문제이다. 대선 이후로 미루어도 되는 문제 아닌가.

 

그리고 대선이 끝나고 나면 곧바로 그 결과를 평가하고 앞으로의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 정당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범여권은 내부에서 대선결과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한 상태이다.

 

그렇다면 대선 이후 전당대회가 갖는 의미는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총선을 그냥 치르고 6월에 가서야 전당대회를 갖는다? 당연히 누구를 위한 합의인가를 묻게 되어있다.

 

신당-민주당의 후보단일화 합의가 이런 식으로 되어버린 것은, 후보단일화의 진정성은 사라지고 정치적 흥정만이 남은 내용이 되어버렸기 떄문이다.

 

이제라도 두 당은 재협상을 통해 정치적 상식에서 어긋난 합의내용을 바로잡아 후보단일화 자체가 무산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후보단일화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내용들은 재검토하는 것이 옳다.

 

정동영-문국현, 가치연정 단일화 이루어야

 

그리고 정동영-이인제 후보단일화의 추이와는 별개로 정동영-문국현 후보단일화 논의도 본격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범여권의 후보단일화는 정동영-이인제-문국현 3자의 단일화가 성사되었을 때 비로소 제대로 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정동영-이인제 단일화는 '호남표' 결집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수도권·30~40대·개혁성향 층의 결집을 이끌어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동영-문국현 단일화는 범여권의 전통적 지지층 복원이 보다 완성된 형태로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양측의 소극적인 자세로 인해 논의는 전혀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국현 후보는 대통합민주신당과의 후보단일화 자체에 대해 거부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정동영 후보측에서도 논의 진전을 위한 공론화를 미루고 있는 모습이다.

 

정동영-문국현 후보간의 단일화는 원칙면에서는 어려워 보이지만, 오히려 정동영-이인제 단일화보다 훨씬 쉬울 수도 있다. 합당이 아니라 '가치를 중심으로 한 연정'의 방식을 택한다면 후보단일화 논의가 진척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정동영 후보와 문국현 후보 사이에 커다란 가치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되기도 하지만, 막상 이번 선거과정에서 나온 공약들을 비교해보면 상당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특히 대선공약에서 핵심적인 분야인 성장·비정규직·교육·주거·남북관계 등에 있어서 정책기조나 정책공약의 합의가 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집중적인 논의를 통해 가치와 정책에 있어서의 연대를 이루고, '연정을 목표로 한 단일화'를 이룰 수 있는 일이다. 가치와 정책을 통한 단일화라는 점에서 명분적으로도 떳떳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문국현 후보는 오늘(14일)도 "희망없는 과거회귀 정치세력과의 정치공학적 단일화는 없다"며 범여권 후보단일화를 거부했다. 그 대신 "문국현은 대문을 활짝 열어놓았다"며 자신을 중심으로 한 대통합을 말했다.

 

그러나 더 이상 ‘호언장담’으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국면이 아니다. 정동영이든, 이인제든, 문국현이든, 자신을 중심으로만 상황을 볼 때가 아니다. 우리 정당정치의 앞날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보수양당 체제가 올 수도 있다

 

범여권의 후보단일화가 결국 무산될 경우,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이번 대선에서는 보수진영의 이명박·이회창 두 후보가 1·2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이회창 후보는 대선에서의 선전을 발판으로 '이회창 보수신당'을 만들 것이고, 결국 우리 정당정치는 내년 총선을 거치며 보수양당체제로의 재편이 이루어질 것이 예상된다.

 

진보개혁 정치세력의 분열은 17대 대선을 그런 의미에서의 '정초선거(founding election)'로 만들어주는 선물을 보수 정치세력에게 안겨주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87년 체제' 이래로 우리 정당정치에서 유지되어온 보수와 진보개혁 사이의 균형은 무너지고 보수독식의 정당정치가 전개된다. 우리 정당정치의 급격한 퇴행시대를 맞게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치의 차이'만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보수 양당 이외의 세력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군소세력으로 전락해버리는 상황이 될 경우, 아무리 지고지선의 가치를 내건들 내년 총선에서라도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자신을 버리고 우리 정당정치의 퇴행을 막겠다는 대의와 진정성. 범여권의 각 당과 후보들은 이것을 갖고 후보단일화에 적극 임해야 한다. 벼랑 끝에 서있는 범여권 후보단일화 논의에 주문하고 싶은 말이다.


태그:#후보단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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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 수술 이후 방송은 은퇴하고 글쓰고 동네 걷기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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