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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외수씨가 조기 영어 교육을 강조하는 한 대선 후보에게 ‘우리말부터 제대로 하라’며 쓴 소리를 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이외수 씨 말고도 많은 분들이 이런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모국어 교육부터 확실히 해야 한다."

 

중국에 사시거나 중국으로 아이를 조기 유학 보낼 생각을 하시는 학부모들도 이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경험상 중국에서 아이를 기르시거나 조기 유학을 보내신 분들이 자신의 아이들이 '우리말을 잘 한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분명 중국에서 자라거나 조기 유학 온 아이들은 제가 볼 때는 영어권 국가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확실히 우리나라 말을 잘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 그렇지만 정말 속까지 그럴까요?

 

백지장을 왜 맞들어요?

 

지난 1년간 중국의 한 보습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학생이 이렇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백지장을 왜 맞들어요?"
"어? 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속담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백지장을 왜 맞드냐?'고 물어본 것입니다. 이 학생을 오래 가르쳤던 영어 선생은 이 아이가 종종 엉뚱한 질문을 하거나 쉬운 말인데 이해를 못 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습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이 학생은 공부도 잘 하고, 중국어도 중국인 친구들과 아주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만큼 잘할 뿐만 아니라, 겉으로 보기에 우리나라 말도 자연스럽게 잘한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봐서는 모든 것이 완벽한 아이가 틀림없는데 학원 선생들이 느끼기에는 너무도 어이없는 질문으로 황당하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학생은 어려서부터 중국 학교를 다녔습니다. 집에서 부모들이 한글 교육을 시키기는 했지만 그보다 더 높은 수준까지는 교육이 못 미쳤던 모양입니다.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말을 참 잘 하는 것 같은데도 깊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해짐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이 학생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번은 영어 선생이 강의를 하다가 '영감을 받다'라는 예문을 설명 중인데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더랍니다. 그리고 당당히 이렇게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영감이 뭐예요?"

 

원래 장난기가 많았던 영어 선생은 농담으로 이렇게 대답해주었습니다.

 

"그게 할머니들이 가끔 '영감' 하는 거 들어봤지? 영감을 받는다는 것은 할머니들이 바로 그 할아버지들을 받는다는 뜻이야."

 

더 놀라웠던 것은 아이들 반응이 '에이 거짓말'이 아니라 '아~' 이랬다는 것입니다. 믿어지십니까? 저는 믿을 수 있었습니다. 중국 학교를 다니는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면서 수없이 많은 고민을 해보았기 때문입니다.

 

중국어는 띄어쓰기 없는데요?

 

그 중에서도 가장 고민이었던 것이 바로 '띄어쓰기'였습니다. 중국 학교를 다닌 아이들이 가장 많이 혼란스러워 하는 것이 '띄어쓰기'였기 때문입니다. 중국어는 띄어쓰기가 없기 때문에 '받아쓰기'를 시켜도 띄어쓰기를 안 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중학생에게 작문 숙제를 내주어도 '띄어쓰기'가 전혀 안 된 경우가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중국어로 된 교과서에 익숙해서인지 띄어쓰기를 하는 것을 많이 어색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말은 띄어쓰기에 따라 얼마든지 뜻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띄어쓰기는 반드시 익히게 해야 했습니다. 이런 저런 예를 들어주면서 띄어쓰기에 대해 설명을 해주어도 '귀찮다'거나 '중국어는 띄어쓰기 안 해도 말 되는데' 이런 식의 반응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띄어쓰기만 엉망인 경우는 그래도 좀 낫습니다. 더 큰 문제는 철자부터 완전히 엉망인 경우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2학년은 그렇다 해도 3학년이 되어서까지도 철자를 엉망으로 쓰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초등학교 졸업이 그리 멀지 않은 5학년 중에도 이런 아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그야말로 기초부터 다시 가르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저를 슬프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나라 철자도 잘 모르고, 우리나라 초등학교 국어 문제집을 풀 때면 "무슨 말인지 도대체 모르겠어요!"를 앵무새처럼 말하던 아이가 유창하게 중국어로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눌 때입니다. 심지어 질문도 중국어로 할 때가 있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제게 중국어로 말을 걸기도 합니다.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5학년이 되어서도 비교적 쉬운 단어를 제게 물어보는 아이가 정작 중국 신문에서 본 사건 사고를 이야기 할 때는 그야말로 가슴이 찢어집니다. 우리나라 말도 어려서부터 조금만 더 친근하게 가까이 했다면 초등학교 5학년이라면 당연히 알 만한 낱말들을 알고도 남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중국어는 아주 잘 하는데, 우리나라 말은?

 

물론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의 언어를 잘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나라 언어는 능수능란하게 하면서 도리어 자기 나라 언어는 잘 이해하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서 중국에 사시는 학부모들이나 조기 유학을 생각하시는 학부모들에게 꼭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아이가 겉으로 보기에 우리나라 말을 잘한다고 해서 그냥 두시지 마시고 한글로 된 책도 많이 볼 수 있게 도와주시고, 독후감이나 일기도 종종 쓸 수 있게 도와주시기를 말입니다.

 

제가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들에게 자주 듣던 이 말을 들으시다면 분명 다시 한 번 우리 말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보시게 될 것입니다. 이 아이들 중에는 한국 대학교가 아닌 중국 대학교가 목표인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굳이 우리나라 국어를 들을 필요가 없는 아이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 국어 선생님. 저 아무래도 국어부터 들어야겠어요. 이거 영어가 문제가 아니라 제 국어 실력에 문제가 있어서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것 같아요. 저 국어 좀 들으면 안 되나요?"

 

자, 어떠십니까? 지역에 따라 한글로 된 책을 구입하시기 어려울 수 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오늘이라도 아이에게 한글로 된 책 한 권쯤은 구입해주시는 것은 어떨까요?


태그:#중국, #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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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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