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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잘 타는 당신, 낙엽의 마지막 반짝임을 보면서 괜스레 우울해 하는 당신. 이제 얼마 남지도 않은 올해의 가을을 그렇게 고독하게만 보내진 마셔요. 공연장에 나가보시는 건 어때요? 잠깐, 지금의 당신에게 무거운 정극을 권할 수는 없겠죠. 그렇다면 뮤지컬은 어떨까요? 그것도 아주 흥겨운 것으로.

 

이제 제가 기억하는 ‘신나는 뮤지컬’ 2편을 소개하려고 해요. 당신의 지갑 사정을 제가 모르기 때문에, 티켓 값이 비싼 대극장 공연 하나랑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극장 공연 하나를 각각 골랐어요.

 

두 공연 모두 작품성이 좋을 뿐 아니라, 당신의 기분을 띄워 주는 것들. 그러니 인생이 무료하다고 느끼는 당신, 그러지 마시고 공연장으로 가세요. 흥에 겨워 손으로 박자를 맞추다가 공연이 끝난 후 마음껏 환호한다면, 극장을 나서는 당신, 분명 살아가는 재미가 날 거라고요.

 

1. 지갑이 두둑하다면 : 락뮤지컬 <햄릿>
(~11일, 유니버설아트센터, 티켓 가격 4만원~10만원)

 

누구나 알고 있는 <햄릿>이, 누구도 예상치 못하게 돌아왔어요. 가죽 재킷을 휘날리며 내지르듯 노래하는 햄릿을 본 적이 있나요? 뮤지컬 <햄릿>은 지난 2000년 체코 프라하에서 ‘A Rock Opera Hamlet’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에요. 이번 공연은 아시아 최초의 라이선스 초연이라지요.

 

 

뮤지컬 <밑바닥에서>를 연출했던 왕용범 연출가는 이번 <햄릿>을 보다 대중적으로 각색했습니다. ‘고뇌하는 햄릿’을 ‘반항하는 햄릿’으로 바꿔놓았고, 오필리어와 햄릿의 사랑을 부각시키며 햄릿의 어머니 거투르드도 사랑을 찾아 헤매는 외로운 여인으로 만들었어요. ‘반항과 사랑’에 주안점을 둔 연출은 ‘락뮤지컬’이라는 형식과 잘 어울리는 선택입니다.

 

햄릿이 조금 ‘가벼워진다는’ 아쉬움이 노출됨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햄릿>은 관객들을 무대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어요. 거의 모든 뮤지컬 넘버들이 보는 이들의 몸을 움직이게 하는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고, 작품의 전개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락에 기조를 두고 있지만 서정적인 팝 멜로디도 종종 나와 관객들의 가슴을 울리기도 하지요.

 

볼거리는? 풍부합니다. 끊임없이 무대가 회전하며 다양한 장면을 연출하고, 마지막 결투장면에서는 스펙터클한 느낌까지 가져와요. 오필리어의 장례장면에서는 극장 통로를 가로지르는 등 객석도 신선하게 활용하고요.

 

그럼 연기는? 저는 김수용 캐스트로 관람했는데(햄릿 역은 김수용, 신성록, 성두섭이 각각 트리플캐스팅) 높은 음에서도 전혀 흔들림 없는 가창력과 더불어 몸을 던지는 열연이 인상에 남았습니다. 폴로니우스로 분한 김도향씨의 대사전달력이 약한 것을 제외하면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공들인 티가 많이 났어요.

 

커튼콜도 갈라 콘서트 형식이어서 마지막까지 즐거움을 안겨 준 뮤지컬 <햄릿>이 막을 내린 후, 극장을 나서는 제 귓가에는 “정말 잘 만들었고, 실험정신도 강하다”라는 관객들의 즐거운 수다가 들렸답니다.

 

2. ‘방방’ 뛸 수 있는 기회, 저렴하게 즐겨요 : 뮤지컬 <오디션>
(~12월 31일, 백암아트홀, 티켓가격 2만원~4만원)

 

올여름, 저는 초연된 뮤지컬 <오디션>을 세 번 관람했어요. 프리뷰 기간에 한 번, 정식 공연이 시작될 때 한 번, 그리고 막을 내리기 직전에 다시 한 번. 첫 관람 당시 (당연히) 비어 있었던 객석 중앙 통로는 세 번째 관람할 때 관객들로 가득 차 있었죠. 출연 배우들이 직접 악기를 연주하며 열정적인 가창력을 펼치는 이 소극장 뮤지컬에 관객들은 열광했어요.

 

그 뮤지컬 <오디션>이 백암아트홀에서 앵콜 공연을 하고 있어요. 이 라이브 뮤지컬에 나오는 6명의 출연진들은 무대에서 ‘먹고 살기 어려운’ 밴드 복스팝의 멤버가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새 보컬을 영입하고 거대 콘테스트의 오디션을 준비하는 그들, 갑자기 예기치 않은 변수가 터지며 혼란 속으로 빠져드네요.

 

 

이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관객을 모으는 데 성공한 이유는 ‘공감대 형성’으로 보입니다. <오디션>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젊은이들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그려내요. 가난하지만 음악을 할 때만은 행복한 그들이기에, 무대에는 이렇게 유쾌한 대사가 울릴 수 있는 것이죠. “오빠, 우리도 음악만 해서 먹고 살게 될까?” “…조금만 먹자.”

 

이런 경쾌한 대사들은 어색함이 없는 배우들의 연기를 만나 힘을 더하는데, 연기가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음악이라는 꿈을 가지고 험한 세상을 헤쳐나가려 애쓰는 무대 위 인물들과, 연극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있는 배우들은 서로 닮았으니. 실제 <오디션>에 출연하는 몇몇 배우들은 극 중 배역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네요.

 

무엇보다 <오디션>의 뮤지컬 넘버들이 극장에 울려 퍼질 때, 당신은 절대 시큰둥하지 않을 겁니다. ‘내일을 믿어요’, ‘내 꿈에 엔진이 꺼지기 전에’ 등 <오디션>에 쓰이는 노래들은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고, 귀에 감기는 매력적인 멜로디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리하여 무대 위에 펼쳐지는 꿈과 희망과, 방황과 좌절과, 사랑과 감동은, 결국 관객들에게 부드럽게 퍼집니다. 만약 당신이 앙코르곡을 같이 부르며 소리 지르고 싶다면, 방방 뛰고 싶다면, 이 공연을 놓치지 마셔요. 덧붙여 한 가지 팁. 11일까지의 프리뷰 공연은 전석이 2만원이고, 공연 홈페이지(club.cyworld.com/openrun)에 들어가시면 다양한 할인정보를 구할 수 있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햄릿, #오디션,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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