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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고기와의 만남

 

“빨리 올라와 보이소. 늦게 오마, 궁물도 없심데이….”


동해안 대진에서 다이빙 숍을 하는 한 다이버의 전화를 받았다. 요상한 고기를 잡아 놓았으니 한 번 올라와 보라는 것이었다. 물론 잡았다고 하는 말은 보았다는 말이고 바다 속에 있다는 말이다. 물고기도 발이 있으니 언제 가버릴지 모른다는 말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짐을 꾸렸다.

 

다이빙을 다니다 보면 많은 다이빙 숍을 상대하게 된다. 처음에는 다이빙 숍들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생겨났다. 그들은 장비를 팔거나, 다이빙 교육을 하거나 아니면 투어를 안내했었다. 정보가 어둡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다이버들은 다이빙 숍 주인의 일방적 정보에 의존해야 했었다.

 

그러다 다이버들이 많이 늘어나고 다이빙 시장이 커지자 서서히 해안지역으로 자본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다이빙 숍들이 다이빙 외에 해양레포츠로도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숙박과 식사도 해결했다. 해양종합리조트로 발전해가는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가며 다이빙 전문지들도 생겨났다. 인터넷의 발달은 바다에도 많은 바람을 일으켰다.

 

자기가 안내하는 바다를 꾸미고 가꾸어서 고객인 다이버들이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는 것은 전적으로 해당 리조트의 노력에 달렸다. 주인의 철학에 따라 다이버를 안내하는 방식이 다르게 마련이다.

 

허겁지겁 올라간 동해 대진의 한 바닷가에서 나는 이 유령고기(Ghost pipe fish)를 만났다. 20001년 10월 21일이었다. 두 마리였다.  아래는 그때의 다이빙 일지다.


최고수심 19.4m
수온 섭씨 19.6도
시야는 5∼7m 정도
일요일이었으며 시간은 10시 44분이었다.

 

물론 고스트 파이프 피쉬와의 만남은 전적으로 대진에서 다이빙 숍을 하는 다이버의 덕이었다. 그는 자신이 가이드 줄을 내려놓은 곳에서 이 고기를 발견하고 알려왔던 것이다.

 

유령고기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적은 없었다. 그것도 동해안의 대진에서였다. 소가 뜯어 먹다가 만 누런 풀잎 같지만, 눈도 입도 다 달렸다. 몸길이는 12㎝ 정도였다. 동남아시아와 인도양에서 사는 고기다. 근데 그 머나먼 길을, 그 많은 포식자의 눈을 피해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을까? 지구 온난화에 따른 수온의 변화가 그 이유라면 서글픈 일이었다.

 

물고기 모이 주기(feeding)

 

귀퉁이 한쪽을 자른 주먹만한 비닐봉지에 식빵이나 과자 부스러기를 넣어서 물 속으로 가지고 들어가 손가락으로 비닐봉지 안의 내용물을 살살 비비기 시작하면 근처에 있던 물고기들이 모여든다. 이런 행위에 오래 길들여진 물고기들은 다이버가 나타나기만 해도 다이버의 손 주위에 모여든다.

 

해외의 유명 포인트로 가면 방문 다이버들을 위해 거의 모두 이러한 이벤트를 준비해 놓고 있다. 가이드 다이버가 빵 봉지를 문지르면 예외 없이 물고기들이 구름같이 모여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손만 치켜들어도 물고기들이 모여든다.

 

 

상어 피딩도 있다. 물고기를 박스에 넣어서 물 속으로 가지고 들어가서 입맛을 다시며 주위를 도는 상어들에게 한 마리씩 맛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 상어들은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여기서도 새치기꾼이 있다. 한 마리를 진즉에 먹고도 다시 새치기하는 것이다. 물론 노련한 다이버들은 이런 놈에게 꿀밤 한 대를 선물한다.

 

이들이 먹이를 주는 주위에서는 다이버들이 구경하며 비디오를 촬영하거나 사진을 찍는다. 야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동물원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이것을 별로 반기지 않았다.

 

먹이주기는 우리나라라고 해서 안 될 것은 없다. 그러나 어려운 것임에 틀림없다. 우선 시야가 그처럼 확보되지 않는다. 바다가 맑은 날의 일수도 열대보다는 적다. 그리고 그처럼 물고기가 모여 있는 곳을 찾기도 어렵다.

 

여러 가지 어려움을 무릅쓰고 대진에 있던 다이버는 혹돔을 구슬려 친구로 만들었고 어쩌다 만난 유령고기를 잠시나마 머물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남달리 생각하는 바가 있어 작살을 들고 설치는 다이버들을 말리며 자신의 앞바다를 지키는 데 힘을 다한 결과였다. 그래서 그의 바다에 가면 사람만한 혹돔이 그의 보호 아래 한가롭게 어슬렁거리며 다이버들에게 모습을 나타낸다. 혹돔의 마음을 얻는데 그는 많은 공을 들였을 것이다.

 

“저거(혹돔) 잡아 무걸라꼬, 작살꾼들이 양주로 2차 3차 목욕시키 줄라카는 것도 안 했심다. 택도 없는 소리지예.”

 

그가 헤쳐 온 유혹의 늪들이 만만치 않았다는 말이다.

 

제주도 서귀포의 문섬을 한 바퀴 도는 관광 잠수함이 있다. 이 잠수함에서 하는 이벤트로 잠수함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다이버들이 잠수함에 탄 손님들을 위해 손을 흔들고 물고기를 끌어 모으는 것이 있다.

 

야생 그대로의 바다에서 다이버들이 물고기와 노는 것을 아무런 장비 없이 실제로 구경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단순한 이벤트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잠수함 안에는 이제 막 자라나는 어린이들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유령고기를 만난 지 일주일 뒤, 다시 만반의 준비를 갖춰 대진을 찾았지만 이미 대진을 떠나고 없었다. 매 순간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세월도, 물고기도, 인생도,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우리 서로는 언제나 떠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손암 정약전의 <자산어보>는 물론이고 정문기박사의 <한국어도보> 그리고 그 외 우리나라 물고기에 관한 어떤 도감에는 '유령고기'에 관한 설명은 없다.


태그:#유령고기, #다이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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