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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그 이름만 들어도 '1980년대'를 살아온 사람으로 가슴이 뭉클해진다.

<노동의 새벽>은 노동자가 사람임을 선언했다. 시는 순수문학에만 머물러야 한다는 것을 통열히 비판하면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내지 못한 시는 죽은 것임을 <노동의 새벽>은 말했다. 투쟁과 사상이 오롯이 얼굴 없는 시인으로 각인 시켰던 그를 다시 만났다. <사람만이 희망>으로.

<사람만이 희망이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 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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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사노맹' 사건으로 7년째 수감 중이었던 1997년에 나온 <사람만이 희망>은 외부의 적이었던 군부독재, 자본가를 향한 격한 투쟁을 넘어 자기 자신을 향한 치열한 투쟁을 담고 있다. 이 변화를 어떤 이는 변절이라 비판할 수 있지만 사람은 외부의 적만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죄와 적을 넘지 못한다면 외부의 적을 향한 투쟁에서 승리하지 못한다. 수많은 이들이 패배하는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자기 자신임을 역사는 증명하기 때문이다.

외부의 적을 무너뜨려야 존재가 아니라 극복하고 이겨야 함을 말한다. 아직 그 길이 멀다하지만 이미 희망이 있음을 알고 그 아직을 이루기 위하여 가야 한다 말한다.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자기가 살아가는 이유이다. 아직 이루어지 않는 그것을 붙들기 위하여 갈 때 주위에는 많은 동무들이 있음을 그는 말한다.

"그래도 내 인생을 나는 참 사랑해요 너무너무 행복하고 감사해요
좋은 세상을 바라면 좋은 일 하자고 애쓰다 보니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지금도 만나고 있고 앞으로도 만날 거구요
그 힘든 세월 동안 난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운동 그만둬비릴까,
잠시 뒤로 빠졌다 할까, 나 좀 챙기고 할까, 곁눈질해본 적이 없었어요."(29쪽'키 큰 나무숲을 지나니 내 키가 커졌다')

좋은 동무들이 함께 가는 '아직' 저 멀리 있는 세상을 꿈꾸며 현실이 아파도 간다는 것은 희망이다. 그 희망은 외부의 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아직' 그 때 되면 함께 하는 동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소망마저 느끼게 한다. 그 '아직'을 잡기 위해서 현실은 아프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가장 무서운 적은 군부독재와 자본가가 아니라 희망, 소망을 자신 안에 간직하지 못한 것이다. 외부의 적은 권력과 자본으로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소망을 빼앗아 감으로써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을 원천적으로 포기하게 한다.

우리 사회는 자본, 곧 돈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 돈이 주인이다. 사람에게 소망을 빼앗았다. 부자와 빈자가 차이가 없다. 부자는 돈이 많아 돈의 노예가 되어버렸고, 빈자는 돈에 목말라 노예가 되었다. 희망이 사라져 버린 우리 사회를 박노해는 몸으로 깨닫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희망을 부르짖고, 찾고 있다.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34쪽 '다시')

그렇다. 돈과 권력과 명예와 학벌이 희망이 아니다. 그 자신이다. 자신이 없는 자는 희망이 없다. 그가 아무리 가진 것이 있더라도 희망이 없다. 사람이 주인되는 세상이 희망이다. 사람이 아니라 자본과 권력과 학력이 주인되는 세상은 희망이 없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다. 사람이 아니라 다른 것에서 희망을 찾는다.

거짓 희망에 매몰된 사회가 죽은 사회임을 박노해는 말하고 있다. 온갖 거짓된 희망만을 가지고 있으면서 살아 있는 존재라, 희망있는 존재라 외치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얼마나 허망한 꿈을 안고 살아가는지 통열히 경고하고 있다. 자기 안에 발견된, 간직한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자만이 희망이다. 사람이 희망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서 하나 더 생각할 것은 사람만이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준비 없는 희망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준비 없는 희망이 있습니다
처절한 정진으로 자기를 갈고 닦아
저 거대한 세력을 기어코 뛰어넘을
진정한 자기 실력을 준비하지 않는 자에게
미래가 없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희망 없는 준비가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해가는데
세상과 자기를 머릿속에 고정시켜
현실 없는 준비에만 몰두하는 자에게
미래가 없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87쪽 '준비 없는 희망')

고함만 있고, 외침만 있는, 거대한 외부 세력을 향한 증오만 있는 자는 희망이 없다. 준비 없어 소리만 있을 때 거대한 세력은 온갖 수단 방법을 다하여 우리가 가진 희망마져도 거짓으로 만든다. 가짜라 왜곡하여 소망을 빼앗는다. 외부의 거대한 세력이 가하는 왜곡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내가 힘을 기르지 못하고, 준비하지 못한 것을 새겨야 한다.

즉, 네탓보다 내탓이 중요하다. 처절한 자기 정진이 사람에게 필요하다. 거대한 세력의 왜곡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그들은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것을 왜곡시키는 것에 모든 것을 다 바친다. 외부의 적, 거대한 세력은 가혹하다. 사람에게 희망을 빼앗는 일에 가혹하다. 가혹함을 이기고 희망을 잡는 일에는 희망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그들에게 '왜곡'하지 말라고 외쳐도 그들은 왜곡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해야 한다.

준비와 준비, 실력과 실력, 희망과 희망을 안고 살아야 한다. 뚜벅뚜벅 가야 한다. 현실을 직시하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며, 준비와 실력으로 가야 한다. 그렇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그리고 치열한 정진과 진정한 실력을 갖춘 사람만이 희망이다.

덧붙이는 글 | <사람만이 희망이다> 박노해 지음 ㅣ 해냄 ㅣ7,000원



사람만이 희망이다 - 박노해 옥중 사색, 개정판

박노해 지음, 느린걸음(2015)


태그:#박노해, #사람이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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