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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 목적이 석유에 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를 공개적으로 말한 적이 없다. 본심이 거기에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순간, 이라크 침공이 '더러운 전쟁(dirty war)'라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한 때 30여개국에 달했던 이라크 파병 국가들 정부 역시 석유 때문에 파병했다는 말을 하진 않았다.

 

그런데 미국의 이라크 정책을 지지하고 파병 연장을 지지하는 목적이 '석유'에 있다고 용감하게(?) 말하는 정치지도자가 있다. 바로 한나라당의 이명박 대통령 후보이다. 이 후보가 24일 의원총회에서 파병 연장 이유를 밝힌 대목은 아래와 같다.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전문을 인용한다.

 

"한미관계도 물론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앞으로 미래에 다가올 자원전쟁에 있어서 우리가 이라크라는 나라를 가까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라크는 지상에서의 석유 매장량은 사우디아라비아보다도 훨씬 크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매장량은 걸프만에서의 바다의 매장량을 합쳐서 큰 것이지 지상의 매장량은 사우디아라비아보다 이라크가 더 크다. 또 자이툰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그곳이 기름밭 위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나면 세계가 자원 확보를 위해서 경쟁하고 있을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남아있는 자이툰 부대가 인원을 줄여서라도 600여명 정도 주둔할 것이라고 정부가 발표했는데, 그 정도의 인원을 유지하면서 우리가 중동 전체국가에 관심 갖는 국가로서 남아있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봤다. 그래서 한미관계, 미래 자원외교, 경제외교, 복구사업에 참여할 한국기업들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생각해서 자이툰 부대가 인원을 줄여서 1년 연장하는 것이 좋겠다고 어제 아침에 합의해서 의견을 발표했다."

 

한마디로 이라크의 석유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파병 연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피와 눈물로 얼룩진 땅을 '기름밭'에 비유하면서 드러낸 탐욕이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어떻게 비춰질 지에 대한 최소한의 고려조차도 이 후보의 마음 속에 설자리를 없게 만든 것이다.

 

이라크 석유 이권 차지하기 위해 파병 연장 필요하다?

 

일부에서는 말한다. 명분보다는 국익이 중요하다고. 그러나 명분은 국익과 대립되는 개념도, 양자택일해야 할 대상도 아니다. 오히려 세계화 시대에 '명분 없는 국익 추구'는 부메랑이 되어 그 나라의 국익마저도 침해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유무형의 자원을 쏟아 부어 국제사회에서 도덕성과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팍스 아메리카의 종언'까지 거론될 정도로 미국이 쇠퇴하고 있는 이유는 군사력이 약해서도 경제력이 약해서도 아니다. 명분 없는 전쟁과 일방주의를 추구하면서 국제사회의 인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를 뒤늦게 깨달은 부시 행정부는 돌아선 국제사회의 인심을 돌리기 위해 '공공외교'에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한번 돌아선 마음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 법. 부시의 공공외교는 국제사회의 냉소 속에 이렇다할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는 부메랑이 되어 '부시 때문에 창피하다'는 미국인들의 불만을 가져와, 부시를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인기없는 대통령으로 만들고 있다.

 

이 후보의 파병 연장론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별개로 하더라도, '석유 확보'라는 희망사항의 실현가능성도 극히 회의적이다. 우선 지난 2월 이라크 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석유법'은 미국과 영국의 석유회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만들어졌다며, 수니파와 쿠르드족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해 있다. 이 법의 통과 전망도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통과되더라도 미국과 영국의 석유회사를 틈을 헤집고 한국 회사가 지분을 확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설사 약간의 지분을 얻더라도 이라크 저항세력의 공격 표적이 될 것이라는 엄청난 위험이 뒤따른다.

 

일부에서는 자이툰부대 주둔을 환영해온 이라크 북부 쿠르드 지방정부와 한국과의 우호관계가 석유 이권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역시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최근 쿠르드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승인없이 4곳의 외국 석유회사와 수출계약을 맺은 바 있다. 이에 대해 중앙정부는 이러한 계약은 모두 불법이기 때문에 수출을 허용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의회에 계류 중인 '석유법'에서는 바그다드에 있는 국가석유시장기구(State Oil Marketing Organisation)에 석유 수출에 대한 독점권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석유 이용의 자율권을 확보하려는 쿠르드 지방정부와 시아파가 장악한 중앙정부의 갈등은 커지고 있다. 석유 이권 배분에서 고립될 위기에 처한 수니파의 불만 역시 극에 달하고 있다.

 

'이명박 때문에 창피하다'는 말 듣지 않으려면

 

이명박 후보는 "전쟁이 끝나고 나면 세계가 자원 확보를 위해서 경쟁"하게 될 것에 대비해 자이툰부대의 주둔을 1년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세계 어느 나라도 내년에 이라크 전쟁이 끝날 것으로 예상하는 나라는 없다. 오히려 쿠르드의 독립 움직임과 이에 대한 터키의 무력응징론이 맞물리면서 확전의 위험성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주지하다시피 확전의 위험이 커지고 있는 이라크 북부에는 자이툰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이 후보의 '석유 확보론'에 따르면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한국군은 "기름밭 위에"에 있어야 한다. 내년까지 전쟁이 끝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면, 자이툰부대는 1년이 아니라 몇 년은 더 "기름밭 위에" 머물러야 한다. 그 "기름밭"이 언제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터로 변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이명박 후보는 자문해야 할 것이다. '기름'에 눈이 멀어 정치지도자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분별력(prudence)이나 국제정세 인식이 부족한 것이 아닌지 말이다. 

 

또 한가지. 많은 미국인들은 '부시 때문에 창피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닌다. 그런데 부시도 입에 올리지 않은 '석유'를 이명박 후보는 파병 연장 지지의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 국민들로부터 '이명박 때문에 창피하다'는 말을 듣진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태그:#파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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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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