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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크게 세 가지 문제를 3부로 나누어 다루고자 한다. 10월초 평양에서 열린 노무현-김정일 제2차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필자 나름대로의 평가와 전망, 한미 동맹의 현주소와 앞으로 전개될 이정표(road map), 그리고 지난 2·13 베이징 합의 이후의 6자 회담 진전 상황의 점검, 특히 5개 실무 협의기구의 하나인 동북아 평화 기구의 진로가 그것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이제 2개월 남짓 남아 있고, 미국도 벌써부터 2008년 대통령 선거 열기가 뜨거운 상황에서 우리 외교의 새로운 좌표와 청사진을 짚어보는 것은 한미 정권 말기에 흔히 반복되는 전략 부재나 혼미, 정책 혼선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필자가 최근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 방미 기간 중의 활동을 현장에서 실제로 목격한 것을 내 나름대로 한번 정리해 보고자 한다. 바로 한국외교의 새 좌표와 지평을 열고 넓히는데 좋은 길잡이가 된다고 필자는 믿기 때문에 <오마이뉴스>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다.

따라서 1, 2, 3부를 각각 시간·변화, 공간·통합, 사람·비전이라는 순서로 남북관계, 한미동맹, 그리고 동북아 평화 공동체 구상을 엮어 보고자 한다. <필자 주>

고 정주영(鄭周永) 명예회장과 정몽헌(鄭夢憲) 회장이 북한 김정일 당총비서와 함께 98년 10월 30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 정주영(鄭周永) 명예회장과 정몽헌(鄭夢憲) 회장이 북한 김정일 당총비서와 함께 98년 10월 30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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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평화상 수상자요, 전 체코 대통령 발클라브 하벨은 최근 <뉴욕타임즈> 기고문(9월 28일)에서 지금 인류가 겪고 있는 환경 재앙을 막지 못하면 인류가 지구에서 멸망하고, 지구라는 위성은 어떤 형태로든 남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똑같은 논리로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우리 스스로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한다고 해도 한반도라는 그 공간자체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는 않는다.

지난 5월 주꾸미를 낚던 한 어민의 신고로 발견된 12세기 고려 때 탐진(전남 강진)과 개경(개성)을 오가다 침몰한 '태안선'에서 이제까지 1만9000여 점의 고려청자가 나왔다는 기쁜 소식이다.

12세기에도 성행했던 우리의 뱃길이 다시 열릴 것 같은 좋은 조짐이다. 

21세기 '개성 상인'의 기적
- 대륙에서 해양으로

개성공단은 바로 통일로 가는 남북간 새로운 정치 협력, 경제 실험의 산 체험공간이다. 옛 '개성상인'이 유럽의 '베니스 상인'이나 '화란 상인' 못지 않는 상업과 상술의 모델이라면, 우리의 서해안 시대가 서서히 열리는 그 전주곡이다. 바다 밑 흙 속에 묻혀있던 우리 역사가 21세기 '개성 상인의 기적'의 탄생을 우리에게 다시 일깨워 주는 서곡이다.

사람도 세상도 끊임없이 변한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머뭇거리면 사람도 세상도 끝내는 뒤쳐진다. 사람은 삶의 터(공간)에서 사람이 만든 틀(제도)에 맞춰 삶을 꾸려간다. 한반도는 우리 삶의 터다. 분단으로 우리 삶의 터에 두 개의 틀이 생긴 지 내년이면 벌써 60년이다.  

1998년 6월 16일. 날짐승, 철새, 첩자, 공작원, 무장공비들만 휴전선 철조망을 뚫고, 방어벽을 넘나드는 반세기를 마감하고, 고(故) 정주영 현대건설 창업자가 하루 아침에 꽉 막힌 북녘 땅을 집짐승 소떼를 몰고 찻길로 트럭을 몰고 남에서 북으로 휴전선을 넘는다.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극적인 순간이었다. 그리고 2년 뒤 역사적인 김대중-김정일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 

날짐승, 집짐승, 사람의 왕래라는 변화 배경에는 1998년 2월 25일 제15대 김대중 대통령 취임사에서 밝힌 3원칙—북의 무력도발 불용, 흡수통일 불원, 가능한 분야부터 남북간 화해협력의 적극 추진—이 남북관계 새 바람, 새 물결의 큰 틀을 바꾸는 직접적 계기로 작용했다.

남북이 하나가 되는 길을 '편협한 민족주의', '좌파적 발상', '퍼주기' 잣대로 치부하는 것은 극히 근시안적이고 시대착오적 쇄국주의적 발상이다. 동서독이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몇 십, 몇 백 배 통일비용을 통일 전에 감당했고, 통일 후에도 감내하고 있다. 

우리 통일의 길은 더 험난하다.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남북한 주민의 가치기준, 사고방식, 행동양식은 차치하고라도, 동서독 통일 당시 소득격차는 1/3~1/4 수준이었지만, 남북의 현 소득 격차는 1/20이 넘는 엄연한 현실을 감안하면, 독일식 통일이 남북통일 대안이 아님을 쉽게 터득할 수 있다. 따라서 예상 밖의 돌발, 우발상황은 항상 경계와 대비, 대처의 대상이지만, 책임 있는 정부의 대북정책은 차분하게 그러나 끈기를 가지고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독일 통일이 유럽연합의 통합과정과 맞물려 실현되었듯이, 우리의 통일의 길도 압록강 두만강에서 끝나지 않는다. 시베리아로, 우랄산맥을 넘어 유럽으로, 다시 대서양을 거쳐 태평양으로, 우리의 삶의 터를 열고 넓히는 또 하나의 긴 여정이요 도전이다. 두 동강이 난 한반도의 그 어려움 속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은 남쪽에서 태평양을 바라보며 뱃길로, 하늘 길로 "대양에서 대륙으로" 우리 삶의 터전을 열고 넓혀 왔었다.

이젠 남에서 북을 거쳐 "대륙에서 대양으로" 우리 삶의 터를 열고 넓히는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맞고 있다. 여기엔 편협한 민족주의도, 시대퇴영적 좌우파 설전도 한갓 입씨름, 말장난이다. 유능, 무능 정권, 비전을 가진, 비전이 없는 정치 지도자는 있어도, 좌파-우파 정권 운운은 빈 소리, 헛소리다.

동북아 평화기구의 태동... 유럽안보협력기구 모델 배워야

21세기를 맞아 우리는 지금 크게 안팎에서 불어 닥치는 두 개의 큰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다. 하나는 북한 핵 등 대량살상무기의 불능화 내지는 제거라는 구체적인 현안과 보다 근본적으로는 급부상하는 중국, 다시 활기를 찾은 러시아와 미국, 일본 그리고 남북한 등 동북아에 21세기에 걸맞은 평화안보기구를 제도화하는 과제다. 이 문제는 많은 산고 끝에 지난 베이징 2·13 합의로 6자회담 틀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6자 회담의 성공 또는 궁극 목표는 북한 핵 불능화를 포함, 한반도 비핵화 실현,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 그리고 이들 회담 당사국을 주축으로 한 동북아 평화안보 기구의 창설이다. 새 동북아 평화안보기구는 1973년 미국, 캐나다를 포함, 당시 자유진영 국가들과 소련, 동구권 등 공산권국가들 35개국으로 출범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1995년 1월 1일 자로 보다 제도화되고 회원국도 56개국으로 늘어난 현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좋은 참고 모델이다. 일본 등과 함께 한국도 1994년 OSCE 파트너 국가로 참여하고 있다.

북한 핵의 완전 폐기나 불능화가 이 다자기구 태동의 최소한의 전제 조건이다. 2006년 10월 9일 북한 지하 핵실험으로 유엔 안보리 경제제제 결의안(UNSCR, 1718호)이 아직 유효하다는 것도 2·13 합의 추진과정과 동북아 평화안보기구 태동 논의 과정에서 유념할 대목이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이 새 동북아 평화안보기구 탄생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조건은 이 기구가 우리의 평화적이고 점진적인 자유, 민주통일의 길에 버팀목이 되는 것이지 결코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7일부터 베이징에서 열리는 북핵 6자회담에 참석하기위해 김계관 외무성부상을 단장으로 하는 북측대표단이 25일 평양을 출발하고 있다.
 27일부터 베이징에서 열리는 북핵 6자회담에 참석하기위해 김계관 외무성부상을 단장으로 하는 북측대표단이 25일 평양을 출발하고 있다.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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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관계 재편, 재조정과 세 개의 신화(神話)

또 하나는 우리의 유일 동맹국인 미국과의 관계 재편, 재조정이다. 한미관계는 구체적으로 지난 6월 서명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현재 진행중인 주한 미군 감축 및 재배치, 용산기지 이전 등 기존 미군기지 폐쇄, 축소 및 반환과 평택 미군기지 확장, 2012년 미 전시작전권의 한국군에의 이양 등으로 요약된다. 

한미 FTA는 대한민국 국회와 미 의회 비준절차를 남겨 놓고 있고, 미군 감축, 재배치, 기지 반환, 전작권 이양 등은 양국 정부의 정권교체, 6자 회담 진척, 남북한 및 동북아 안보정세 등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안보와 경제. 통상 협력의 보다 성숙한 파트너로 21세기 한미관계가 성장 발전하기 위해선 적어도 우리부터 다음 세 가지 신화는 불식시켜야 한다고 본다.

첫째로, 우리는 소극근성(小國根性)이나 약소국 피해의식(small power complex)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반대로 미국에 대한 부질없는 과잉 기대나 뿌리 깊은 모화(慕華) 사상에 버금가는 우리의 지나친 모미(慕美)사상(big power syndrome)도 금물이다.

이는 우리의 능력과 힘은 상대적으로 약하고, 미국의 국력과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더 크고 강하다고 느끼는 심성이다. 이러한 심성은 무엇이든 우리나라 일이 잘 돼가면, 미국 덕분에, 반대로 잘못돼 가면, 모두다 미국 탓으로 돌리는 단순 사고로 요약된다. 정책의 잘잘못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비판적으로 미국의 정책을 마치 우리의 입장이나 정책인 양 무조건 답습하려는 것도, 반대로 미국의 모든 정책을 혐오의 눈으로 맹목적으로 비판, 반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우리의 유일 군사동맹국이다. 우리의 오랜 경제 협력, 통상 제1, 제2의 파트너다.  우리는 미국이 한국전쟁과 전후 복구 과정 그리고 지난 반세기에 걸친 경제, 통상, 과학, 교육, 기술 지원과 협력 등에서 보여준 주도적이고 결정적 도움을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에 우리도 미국도 크게 변했다. 대한민국 출범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였다. 60년 전 우리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40불 정도일 때, 미국은 그 40배가 넘는 1600불 선이었다. 지금은 그 격차가 우리는 2만불, 미국은 4만불 선으로 2배 정도로 엄청나게 줄었다.

경제를 포함, 모든 면에서 이제 우리는 세계 230여 나라들 가운데 10위권에 드는 선진국 문턱에 와 있다. 북한은 바로 아프리카 등 가난한 나라들과 함께 그 바닥권에 쳐져 있다. 따라서 위의 '소국근성'이나 '모미사상'은 정상적이고 건전한 앞으로의 한미관계 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둘째로 남북관계 개선이 한미 동맹관계를 마치 훼손하는 것으로 오인하는 것도 금물이다.  남북관계 개선은 한미동맹을 초석으로 군사적 억제전략(deterrence)의 기초 위에서 진행된다. 2000년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에서 밝혀진 것처럼 주한미군의 기능과 역할은 한반도의 평화 통일뿐만 아니라 통일 후 동북아 안정에도 기여하기 때문이다. 이는 또 동북아 국가뿐만 아니라 미국의 국익에도 합치한다.

셋째로 지난 반세기 동안 함께 닦고 가꾼 한미동맹이 단단하고 튼튼하다는 사실과 한미 특정 정부간에 일시적으로 흔히 일어나는 정책이나 전략 접근상 차이나 이견은 구별되어야 한다.

양성철 전 주미대사
 양성철 전 주미대사
구체적으로, 부시 1기 외교안보팀이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양자간 대화와 협상을 거부하고, 일방적으로 북한 핵의 "완전하고, 검증이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해체"(CVID) 주장만을 되풀이하며 시간을 허송하고 있을 때, 당시 김대중 정부가 북미 양자대화를 부시 정부에게 촉구한 것처럼 포괄적이고, 단계적인 주고 받기 협상과 협력의 틀을 만들어 상호 불신을 해소하고, 북한 핵 포기, 파기를 유도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설득하는 것이 마치 한미간 관계 악화인 것처럼 매도한 것은 오류다. '반(反)부시 대북정책'을 '반미'나 '반미감정'으로 침소봉대하거나 몰아붙이는 것은 잘못이다.

초대 이승만 정부와 미 아이젠하워 정부간 정전협정 협상 당시 반공포로 석방을 둘러 싼 대북 정책, 전략 충돌을 효시로, 그 동안 한미 양국 정부는 서로 크고 작은 마찰을 수 없이 많이 겪었고, 또 그 과정을 슬기롭게 헤쳐왔다. 다행히 부시 2기 현 외교안보팀이 1기 대북정책의 실패와 시행착오를 딛고, 6자 회담의 틀 속에서 북핵 불능화를 포함,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한 다각적 실무협의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잘 됐고 옳다.

덧붙이는 글 | 양성철 기자는 전 주미 한국대사를 지냈습니다.



태그:#한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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