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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는 일상이 되었다. 가곡과 클래식을 불리워지는 '고급'(?) 음악은 아직 일반 대중에게는 낯설다. 하루 종일 사람들을 가요를 듣는다. mp3가 등장하기 전부터 젊은이들이 '마이마이'에 정신을 내놓을 정도로 가요는 사람들을 사로 잡았다. 너무 익숙하면, 본질이 무엇인지 망각한다 했는가?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가요가 무엇인지 우리는 진지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 가요란 '광범위한 대중이 즐기는 음악'이라 정의할 수 있겠다.

 

가요는 '부르는' 것일까? '읽는' 것일까?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이런 뜬금없는 질문을 한 이가 있으니 박애경이다.

 

박애경은 <가요,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매우 당돌한 질문으로 책을 쓰고 있다. 어느 누가 노래를 부른다고 하지 읽는다 할 것인가? 또 '대중가요'라는 말을 시큰둥하게 생각하는 우리 자신들. 클래식보다는 못한 노래로 그저 생각하는 우리들을 향하여 이것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 잘 지적하고 있다. 나는 음악이란 사람과 호흡하고 정서에 맞는다면 그 음악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자신과 호흡하고 정서에 맞는 음악은 각자에 따라 달라진다. 가요는 이런 면에서 가장 사람과 호흡할 수 있는 음악 영역이다.

 

"하나의 가요가 우리 귀에 들리기까지는 여러 차례 테크놀로지 개입을 받지만 정작 우리에게 최종적으로 전해지는 것은 사운드 힘과 이를 가시적으로 드러낸 언어의 반복 뿐이다. '감정의 울림'이라는 대전제 아레 테크놀로지라는 것은 부차적인 영역으로 축소되고 만다. 실은 이것이 정서적 효과를 교묘하게 조작해낼지라도 그 전제는 변하지 않는다. 가장 손쉬운 '동조'를 이끌어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요는 지니고 있다. 가요의 힘은 가장 손쉽게 또는 의도에 상관없이 접근할 수 있으면서 정서적 파급력은 만만치 않다는 데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본문 14쪽)

 

어느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수백만원짜리 오디오에 만날 듣는 노래가 트로트였다. 그럼 사람들이 얼마나 손가락질 할 것인가. 그럼 어떤 노래를 들어야 하는가? 물론 고전음악이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박애경의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가요는 왜색이라는 개념이 자리잡고 있지만 이는 과거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말임을 박애경은 반박하고 있다. 대중 음악은 예술이다. 예술은 고급(?) 음악인 클래식과 가곡만이 점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시대의 노래꾼들이여. 대중가요, 대중음악, 고전음악의 구별하여 상위, 하위 음악이라 단정하지 말고. 스스로 자기 확신에 찬 노래꾼이 되어. 예술로 승화시키는 노래를 부르기를 원한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가수보다 뮤지션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경우를 종종본다. '가요'라는 단어가 풍기는 하위문화 개념이 녹아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왜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것일까? 가수와 뮤지션이라는 어감상 거리는 연예인과 아티스트 사이의 거리와 비슷한 것이다. 딴따라에서 아티스트로 격상하는 의미이다. 물론 이런 평가와 노력이 모두 그릇된 것은 아니다.  

 

"뮤지션이란 한 분야에서 탁월한 전문성을 발휘하는 자본주의적 대중예술인보다는 교양과 기량과 자의식을 두루 갖춘 보편적 예인상에 접근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뮤지션이란 말은 시대가 검증한 예인에게 붙여준 자랑스러운 칭호일 수도 있고 음악에 종사한 자들이 스스로 긴장을 유지하기 위한 자기 다짐과 자각의 또다른 표현일 수 있다."(본문 56쪽)

 

하지만 이런 말이 자본주의 시대 자본을 앞세우기보다는 교묘히 자본을 위한 전략일 수 있다. 딴따라로 불리우는 자들이 오히려 더 나은 예인일 수 있다. 뮤지션 이름으로 교양과 기량, 자의식을 강조하지만 실상은 자본에 더 접근하고 자본에 더 강한 애착을 지닌 무리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난 알아요'의 충격을 아는가? 사실 나는 그렇게 충격 받은 것도 아니다. 그럼 충격 받지 않았다고 그 노래가 별 볼 일 없는 노래인가? 아니다. 힙합, 록 다들 정신을 가지고 있다. 록은 저항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포크는 가슴을 아련하게 한다. 그렇게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지라도. 뽕짝은 가장 하위의 장르인가? 아니다. 클래식보다 더 인간 영혼을 뒤흔들 수 있다. 듣는 이에 따라. 그렇다. 가요은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다. 내가 말이다.

 

가요 앞에 놓인 '통속적인'이라는 말은 버스 안에서 마구 흔들는 뽕짝을 의미할 수 있다. 질적으로 조악한 음악이라는 느낌도 준다. 가요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의미가 이럴지라도 나는 뽕짝에서도 예술적 감흥을 경험하고, 록과 포크에서도 예술성을 경험한다. 물론 가곡과 클래식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이 평가하는 음악에 대한 질적 평가는 뽕짝이 가곡과 클래식보다 하위일 수 있다. 하지만 음악을 접하는 사람들이 어떤 장르이든지 그 장르에서 예술적 감흥을 얻고, 음악을 통하여 예술과 통한다면 장르는 문제될 것이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가요는 '저질과 하위'가 아니다.

덧붙이는 글 | <가요 어떻게 읽을 것인가> 박애경 지음 ㅣ 책세상


가요 어떻게 읽을 것인가

박애경 지음, 책세상(2000)


태그:#가요, #대중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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