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지난 14일 일요일) 서울나들이를 하는 것은 완채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야. 그러니까 너희들이 오늘 서울나들이를 함께 가는 것은 덤이야. 그러니까 완채에게 고맙다고 해야 되는 겨."

 

 

63빌딩 지하주차장에 들어선 ‘더아모 15인승’ 차 안에선 아이들을 향한 나의 연설이 한바탕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벼르고 벼르던 서울나들이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게다. 짧은 연설에 ‘더아모의집’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우리가 덤이래. 히히히히”라며 수근 거린다.

 

우리 ‘더아모의집’이 섬겨온 지 6년 정도 된 완채(18·‘근육병’이라는 불치의 병을 가진 장애 청소년)가 집에만 있는 것을 갑갑해 하는 걸 아는 내가 몇 달 전부터 서울 나들이를 약속한 것이다.

 

완채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 청소년이다. 그나마 올해 초까지만 해도 전동휠체어를 타고 집 근처는 나가긴 했지만, 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이젠 전동휠체어를 탈 기력조차 없어져 집에만 하루 종일 드러누워 있다. 그러니 완채를 돌보는 그의 어머니나 완채가 스스로 나들이를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게다.

 

"엄마, 나도 가고 싶긴 하지만 나까지 가면 목사님에게 너무 폐를 끼칠 것 같아서 난 가지 않을래요. 동생만 갔다 오라고 그러세요."

 

완채와 똑같은 병을 앓고 있는 완채의 형 윤채(20·근육병)의 말이다. 서울나들이를 가면서 차 안에서 윤채엄마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코끝이 찡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동생보다도 더 속이 깊다는 윤채의 양보심이 왠지 대견해보이기 보다는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63빌딩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벌어진 ‘더불어 살기’
 

 

처음 도착한 아이맥스 영화관에서부터 우리의 ‘더불어 살기’가 빛을 발했다. 지하주차장에서 극장까지 휠체어를 밀고 가는 것은 아이들이 번갈아가며 맡았다. 완채를 극장의 맨 위에 마련된 공간에 올리는 것은 여러 명의 합심이 필요했다.

 

화면이 너무 커서  앞에서 보면 눈이 아프고 어지러울 것 같다는 판단 때문이었던 것. 내가 완채를 직접 들고 위로 옮겼고, 휠체어는 소년 둘이 들고 날랐다. 휠체어가 자리를 잡자 동행한 아줌마들이 서로 완채의 자리를 봐주며 챙겼다. 그렇게 완채가 한 번 움직이는 데도 6명이 힘을 써주고 배려해야 겨우 움직일 수 있었던 것.

 

이렇게 자리를 잡고 보는 아이맥스 영화 ‘자이언캐년’을 보는 아이들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같이 갔던 꼬맹이들조차도 대형 화면에 압도되어 눈을 떼지 않을 지경. 사실 아이들보다도 더 푹 빠진 것은 시골아줌마 두 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윤채 엄마와 문명주 아줌마(60)도 처음 보는 것이었기 때문.

 

한강공원 잔디밭 식사를 보던 시민들 "브라보!" 연발

 

 

영화를 보고 우리가 찾아간 곳은 63빌딩 앞 한강공원 잔디밭이다. 야외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서다. 겨우 자리 잡은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완채를 누인 후 점심을 차렸다. 카레 밥이다. 많은 식구들이 한꺼번에 먹기엔 카레 밥이 손쉽다. 나의 아내도 이제 이런 일이 일상화 되어 나름의 노하우가 생긴 것이다.

 

“와우 브라보! 오마이 갓! 원더풀!”

 

요즘 흔치 않은 광경이라 그런지 지나가던 서울시민 몇 사람이 잔디밭에 자리 잡아 먹고 있는 우리를 보면서 부러운 듯 박수를 치며 환호를 보내왔다. 아이들은 살짝 쪽팔리는 듯했지만, 아줌마들이야 당당했다. 그렇게 우리는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안고 신나는 점심 식사를 했던 것. 
 
한강공원 잔디밭으로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식사 후 나누는 우리의 대화를 한결 낭만적으로 흘러가게 했다. 오래만에 느껴보는 여유로움에 얼굴이 활짝 편 것은 윤채 엄마였다. 아픈 사람도 아픈 사람이지만, 매일 두 장애 형제의 수족이 되어 간호하던 윤채엄마의 노고와 애씀이 고단했을 것이다. 환우를 위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를 돌보는 사람을 위로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오늘 윤채엄마의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며 더욱 실감했다.

 

생전 처음 본 연극 때문에 그저 신기한 윤채엄마

 


그렇게 점심과 식후 수다를  뒤로하고 도착한 곳이 대학로 단막극장이다. 시골아이들이라도 영화를 보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소극장에서 연극을 보기란 결코 쉽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안성 촌놈들이 출세한 것이다. 지난 번 내가 써 준 <오마이뉴스> 기사 "전주·안성 만나 서울서 일 내부렀네"로 인연이 되어 초대받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일이 없었으면 우리가 한국연극의 중심거리인 대학로 거리와 소극장의 연극을 볼 수나 있었을까.

 

휠체어를 앞세우고 대학로 거리를 거닐고 있으니 마치 우리들은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안내자의 인도를 받아 도착한 마로니에 공원에서 따스한 오후를 보낸 것은 또 어떻고. 마로니에 공원에서 사 먹었던 솜사탕에 우리는 한동안 행복했다. 주위에 날아드는 비둘기와 촌에서는 보기 힘든,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인파는 우리의 눈을 매우 즐겁게 했다.

 

시간이 되어 본 연극 ‘화, 그것은 火 또는 花’는 참으로 신기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소극장)에서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를 본 적이 우리들에겐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겐 다소 어려운 내용일 수도 있는 역사 연극이었는데도 두어 시간 동안 아이들의 시선이 떨어지지 않은 것을 보면 보는 것 자체가 얼마나 신선한 일이었음을 증명해준다 하겠다. 내용은 둘째 치고 배우들의 열정적인 연기에 반해버린 우리들은 연극이 끝났을 때 아낌없는 박수로 표시했다.

 

“전엔 몰랐는데 연극을 저렇게 하는 구나. 햐 참 신기하다.”

 

이렇게 감탄을 연발한 것은 다름 아닌 윤채 엄마.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연극을 처음 보는 윤채 엄마는 그저 신기해했다. 일요일인 오늘, 이렇게 우리는 알토란같은 ‘더불어 살기체험’과 ‘살아있는 예배’를 하며 하루를 영원으로 보내었다.

 


  

덧붙이는 글 | *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은 경기 안성 금광면 장죽리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있으며 본 기자는 이곳의 목사이다. 홈페이지는http://cafe.daum.net/duamo 이다. 


태그:#더아모의집, #송상호목사, #송상호, #서울나들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