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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젊은이에게 일자리를 만드는 것을 최우선 정책으로 쓰고 있다. 더 도전적인 일자리를 찾아서 갈 필요가 있지, 공무원이 되겠다는 소극적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실,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의 발언에 동의했던 적이 있습니다. 바로 저 위의 발언이죠.

 

물론,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젊은 응시자들을 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젊은이들이 공무원을 선호하는 이유는 '안정성' 때문일 것입니다. 비정규직이 판치는 현실, 기업에 입사해도 언제 구조조정의 희생자가 될지 모르는 현실 속에서 '안정성'을 선택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관료제의 '안정성'에 기대는 것은, 국가나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발전'을 보장할 수 없는 현실을 유발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발전'은 이명박 후보의 말대로 '도전'에서 비롯되며, '모험'에서 비롯되기도 합니다.

 

코미디언 취급당하는 경우가 빈번하지만, '대선 단골출마자' 허경영씨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세금을 제대로 걷고 예산을 남겨 우리 젊은이들을 돈으로 충동질하고 싶다. 국가의 투자금을 활용하라는 뜻이다. 개발하다 안되면 다 날려도 좋다. 그중에서 가능성을 보이는 젊은이들에게는 국가가 100억씩 팍팍 안겨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의 이미지가 탓에, 그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부정적으로 들리는 이면도 있지만, 이런 발언으로 봤을 때는 그가 말만이라도 시원해 보인다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사극의 공통키워드 '젊은이의 좌절'

 

<왕과 나>, <이산>, <태왕사신기>. 요즘 유행하는 사극들입니다. 최근에는 '내시 김처선'과 '정조', 그리고 '광개토대왕'의 젊은 시절을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왕과 나>가 특히 그러듯이 '픽션'이 가미된 사극들도 많이 보입니다. 하지만 '픽션' 자체를 탓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상상'은 창작의 고유한 자유 중 일부분입니다.

 

여기에 대고 '역사 왜곡'을 운운한다는 분들은, '광개토대왕 비문 사건'과 같이 진정한 역사왜곡 논란이 뭔지 잘 모르는 분들이 많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영화에서도 이런 픽션은 자주 보입니다.

 

밀로스 포먼 감독의 <아마데우스>, 아직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모차르트 암살설'을 소재로 "살리에르가 죽였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느냐"는 역시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바탕으로 '픽션'에 가깝게 제작된 영화입니다. 그리고 그 말 많고 탈 많았던 <다빈치 코드>도 분명히 '픽션'을 소설과 영화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이런 사극을 보면서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해봐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물론 흥미를 돋우면서 시청률을 올리려는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드라마의 각본가나 연출가도 의도하지 않았을 것들, 그리고 '열풍' 속에서 엿보이는 숨겨진 키워드들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앞서 이야기한 3개의 사극, 잘 보시길 바랍니다. 공통점이 보입니다. 예, '젊은 시절'입니다. 그리고 또 뭔가 보이지 않습니까? 바로 '젊은이의 고난과 좌절'입니다.

 

<왕과 나>는 실제인물 김처선의 연령을 30년 이상 낮춰 '픽션'을 성사시켰습니다. 성종·폐비 윤씨(소화) 등과 같은 나이로 설정하면서 '삼각 관계'를 일궈나갑니다.

 

여기서 그려지는 김처선은, 소화와 애틋한 정을 나눴음에도 역사와 정치가 정한, 본인이 의도치 않았던 '신분상의 문제'로 그 정을 잊어야 하는 입장이 됩니다. 그리고 왕조국가의 절대적 상징인 '왕'에 의해 여인을 빼앗겨야 하는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지난 9일에 방영된 <왕과 나> 14회분에서 참 가슴저린 장면이 나왔습니다. 후궁으로서 왕과 첫날밤을 보내야 하는 소화를, 소화를 위해 목숨을 걸고 거세한 김처선이 업고 왕의 처소로 모셔야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왕과 나>가 설정한 '픽션'의 묘미가 절정에 달했던 장면이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사랑하는 여인이었음에도 '천한 신분'이라는 이유로 포기해야 했고, 그 여인을 위해 목숨을 걸고 거세를 했으며, 그 여인의 첫날밤을 위해 다른 남자의 처소로 업고 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처절한 슬픔이 아니었을까요? 

 

이런게 바로 시대와 정치에 의한 '젊은이의 좌절'입니다. 굴레에 의해 자신의 능력을 발휘도 못했으며, 그 흔한 "사랑한다"는 말도 못합니다. 젊은이의 일생에 걸쳐 과연 이런 좌절이 있을 수 있을런지요.

 

<이산> <태왕사신기>, 구체제와의 싸움에 돌입한 '젊은이'의 위험

 

 

개인적으로, 어린 시절부터 역사를 공부하면서 광개토대왕이 39세의 나이에 단명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다가왔습니다. 정복군주였습니다. 12세의 나이에 호랑이를 화살로 잡았다는 기록이 있을만큼, 강건한 인물이었죠. 그런 그가 39세의 나이로 단명했음에도, 죽은 이유조차도 명확하게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정립의 대하소설 <광개토대제>에서는 담덕(광개토대왕)의 큰아버지 소수림왕이 처가에 휘둘리는 무력한 임금으로, 자신의 무력한 처지에 눈물을 흘리는 임금으로 등장합니다. <태왕사신기>에서는 담덕의 아버지 고국양왕을 이런 인물로 묘사하죠.

 

그래서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유약한 인물로 '위장'해야만 했으며,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치게 됩니다. 왕권마저 위협하는 귀족세력으로부터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었던거죠.

 

만일, 이렇듯 '고구려 왕'의 무력함이 사실이라면, 광개토대왕으로서는 귀족세력과의 일대혈전을 벌여 승리한 덕분에 '정복'에 임할 수 있었다는 가정도 가능합니다. 이 가정대로라면 광개토대왕은 위험을 극복하고 '도전'에 성공한 젊은이라 할만 하죠.

 

반면, <이산>의 주인공 '정조'는 평생에 걸쳐 구체제와 싸웠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를 꼬드겨 아버지를 죽인 노론 벽파와 재위기간 내내 싸워야 했으며, 그럼으로써 '독살 의혹'까지 남습니다. 세손을 죽이기 위해 자객이 궁궐을 넘었고, '아버지'에 대한 정조차도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정조는 그래서 즉위하자마자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말로써 정체성을 명확히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죽인 데 적극적이었던 외가부터 칼을 들이댄 것이겠죠. 부패한 구체제와 그들의 권력욕에서 '젊은이'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젊은이의 좌절', 그 진수를 보여준 <한성별곡-정>

 

 

그런 면에서 볼때, <한성별곡-정>(이하 <한성별곡>)은 똑같이 젊은 시절에 좌절을 당해 경장(개혁)에 몰두하는 정조의 치하에서,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구체제의 임금 살해 음모 여파 속에서 또다시 좌절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그려나갑니다.

 

운명의 장난, 정치의 탐욕 속에서 세 남녀는 엇갈려도 너무나도 엇갈리게 됩니다. 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려 관기로 전락했다가 우연히 '살인기술'을 배우고 정체불명의 암살집단에 가담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임금의 목숨을 위협했던 '이나영'.

 

얼자의 신분으로 태어나 학식과 포부를 드러내지 못해 좌절해야 했으며 임금을 구한 공로로 살인사건 수사를 맡았다가 임금 암살 음모의 진상에 접근해 양심과 권력의 압력 사이에서 고뇌하는 '박상규',  노비의 신분으로 태어나 선각자 양반의 도움으로 학식을 깨우쳐 세상을 바꿀 뜻을 품었으며, 그 뜻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결심을 바탕으로 '시전 총행수'라는 재벌 1인자의 자리에 올라 정치권과의 결탁마저 감수하는 '양만오'.

 

세 남녀의 삼각관계는 이렇듯 정치적 상황과 세상의 부정부패와 연계돼 늘상 엇갈리며 좌절하고 맙니다. 마지막 장면, 조선을 떠나 새로운 땅을 찾아나서던 '이나영'과 '박상규'는 결국 목숨마저 잃게 됩니다. 권력이 젊은이의 꿈과 양심을 어떻게 짓이기는지 제대로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한성별곡>에서 한가지 의미심장했던 것은, '박상규'의 아버지 '박인빈 대감'이 아들에게 남긴 한 마디였습니다.

 

"과시에 급제하여 처음으로 입궐하던 때가 떠오르는구나. 나 역시 백성을 위하여 마음으로 정치하리라 수없이 다짐했었다.

 

허나 백성들은 고사하고 나 하나 건사하기에도 벅찬 현실…. 내가 권력만을 좇는다 경멸하였더냐? 나 역시 내 아버지에게 그리 말했었다. 허나 식솔을 거느린 가장이 된 후에 어느새 나도 내 아버지처럼 됐다. 자식 한 번 낳아보거라, 너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건 세상이 아무리 뒤집히고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드라마의 줄거리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한 마디입니다. '초심'은 현실에 의해 잊혀지며, '가장'으로서 책임져야 할 '목구멍'과 '욕심'에 의해 잊혀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젊은이의 도전과 초심, 그렇듯 현실과 욕심에 의해 잊혀지며, 권력이라는 비정한 욕심의 결정체에 의해 짓밟히는 것입니다. <한성별곡>, 그 이야기를 수려한 영상과 가득찬 줄거리로 보여줬던 작품이었습니다.

 

'젊은이의 도전'을 지켜주는 진정한 힘 '부패 척결'

 

위의 사극에서 다루는 '젊은이의 좌절'은 모두 인간을 돌아보지 않는 절대권력, 그리고 그 절대권력에서 파생된 욕심과 부패에서 비롯되는 일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젊은이는 '살아남기 위해' 도전에 대해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 일이 빈번합니다.

 

정조는 허망하게 사망했으며, <한성별곡>의 두 남녀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처선, <왕과 나>의 상황은 '픽션'이지만 그가 폭군에게 바른말을 하다 죽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도전'과 '바른말'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드러내는 역사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두달여 뒤에 선출될 대통령은 무엇보다 '젊은이의 꿈과 도전'을 지켜내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를 위해 대통령의 힘으로써 '방패막이'를 자처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투표하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일 듯합니다.


그 뜻을 위해, 그리고 젊은이들의 숱한 좌절을 안타까움을 이야기하며, <한성별곡>의 주제곡 <평행선>의 클라이맥스 부분, 천천히 음미해보고 싶어집니다.

 

"세상이 돌고 또 돌아도, 소용돌이 치고 또 쳐도, 하늘과 땅이 뒤집히고, 그 안의 모든게 바뀌어도, 왜 우린 계속 어긋나서, 건너편에 서 있는지, 하늘은 왜 우릴 허락하질 않는 건지.

 

바라볼 수 밖에 없고, 손은 내밀 수가 없어. 그리움에 사무쳐도, 그 이름 부를 수 없어. 모든 게 바뀌어도, 우리 사랑만은 계속 만날 수가 없어."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왕과나, #사극, #이산, #태왕사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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