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승봉도 선착장
 승봉도 선착장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승봉도는 생각보다 멀었다. 대부도 방아다리 선착장에서 1시간 20분이나 걸려 도착한 돌무더기 섬이었다. 역시나 갈매기가 기를 쓰고 따라온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초등학교 저학년 슬기로운 생활(예전의 자연 과목) 시험을 본다.

어린 남매가 새우깡을 들고 갈매기를 부르고 있다.
▲ 갈매기와 새우깡 어린 남매가 새우깡을 들고 갈매기를 부르고 있다.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문제는 갈매기는 무엇을 먹고사나요?'
아이들은 모두 '새우깡'이라고 답을 적는다.
어린 남매가 새우깡을 들고 뱃전에 앉아 갈매기를 부른다. 당연히 갈매기는 새우깡을 먹고산다. 답을 바꿔야 할까? 아니면 갈매기의 생태를 바꿔야 할까? 사람들은 새우깡으로 갈매기를 길들였다. 새우깡을 따라 날아오르는 그 신기한 묘기에 반해서.

서해의 섬에는 유난히 돌이 많다. 승봉도도 예외는 아니다. 외연도에서도 바위를 넘고 넘어 전진하려다 너무 힘들어 그냥 돌아왔는데 승봉도도 그에 못지않다. 가을 바람에 갈대가 너울거리고 손바닥만한 들녘에는 벼가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데 바다는 그냥 거기에서 해안 가득한 돌들을 애무하며 넘실거리고 있었다.

서해안 같지 않은 백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고 수심이 낮은 게 특징.
▲ 이일레 해수욕장 서해안 같지 않은 백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고 수심이 낮은 게 특징.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제일 먼저 눈길을 붙잡은 것은 이일레 해수욕장. 여느 해변 못지않게 쫙 펼쳐진 모래사장이 서해안 같지 않은 느낌을 주었다. 서해안 하면 갯벌인데 여기서는 갯벌은 눈 씻고 찾아 볼래도 없었다. 백사장의 수심이 낮으니 아이들과 함께 찾아도 안전사고 걱정 없이 마음 놓고 물놀이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해수욕장 앞으로 길이 연결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곳은 막힌 길. 다시 돌아와 촛대바위라고 쓴 이정표를 따라간다. 동네에서 볼 때는 가파르고 좁아 보였는데 막상 따라가 보니 길이 잘 닦여 있다. 길은 산을 가르고 나 있다. 소나무는 가을에 더 푸르른 것인지 진한 녹색으로 주위를 환기시킨다. 산을 가르고 내려가자 목섬과 촛대바위로 갈라지는 두 갈래 길이다.

돌투성이 해안과 낚싯배
▲ 목섬 돌투성이 해안과 낚싯배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목섬 가는 길은 돌과 모래사장이 반반씩 나누어져 있다. 그러나 해안을 따라 돌아가 보니 거긴 완전히 돌이다. 몽돌도 있고, 자갈돌도 있고. 물이 들어와 목섬은 저만치에 떠 있고 바로 앞바다에는 커다란 낚싯배가 유유히 떠 있다.

점심을 먹으면서 들어보니 요즘은 고기가 많아 아무 데서나 낚싯대를 드리워도 고기가 잡힌단다. 낚시를 좋아하면 배를 타고 유람하듯이 고기를 낚는 재미도 꽤 쏠쏠할 것 같다. 바다에 떠 있는 기분도 만끽하고 즉석에서 회를 떠먹는 분위기도 즐기면서.

촛대바위 가는 길로 들어섰다. 여기도 들판이 있다. 황금 물결이 일렁이는 가을 들판이다. 섬에서 느끼는 가을은 특별했다. 온통 무채색뿐인 섬에 황금 물결을 추가하니 섬이 총천연색으로 살아난다.

조개를 채취하는 섬 아주머니. 돌 때문에 조개를 채취하는 일도 힘이 배나 든다.
▲ 조개잡이 조개를 채취하는 섬 아주머니. 돌 때문에 조개를 채취하는 일도 힘이 배나 든다.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해변에는 체험을 나온 가족 팀과 조개를 캐는 섬 주민들이 있었다. 촛대바위 해변은 온통 돌투성이다. 호미로 무른 땅, 갯벌을 파내 조개를 채취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도구는 같은 호미지만 호미로 돌을 들어내고 또 들어내야 조개가 나온다. 갯벌보다 몇 배는 힘들어 보인다. 바다라고 다 같은 바다는 아닌 것이다.

조개 채취하는 것을 구경하다 촛대바위 찾기에 나섰다. 조개를 채취하던 아주머니가 허리를 펴며 손짓으로 가르쳐 주던 곳. 한참을 가야 한다고 겁을 주었는데, 돌 길을 걸어 나와 모퉁이를 도니 뾰족한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촛대바위! 이름을 그렇게 붙였으니 그럴 거라 여길 뿐이지 꼭 촛대 같지는 않다.

촛대처럼 보이나요?
▲ 촛대바위 촛대처럼 보이나요?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우리나라 해변에는 촛대바위가 무수히 많다. 동해안에도 있고 서해안에도 있고. 촛대 바위뿐 아니라 조금 형상이 묘하다고 여겨지는 바위에는 모조리 비슷한 이름을 갖다 붙였다. 여기도 예외는 아니어서 촛대 바위 가기 전의 바위 무더기가 더 신기했다.

승봉도의 바위입니다. 아주 기묘하지요. 제일 위는 한 가족 같구요. 왼쪽은 허리를 비틀며 하늘에 대고 아양 떠는 거 같죠. 오른쪽 바위는 고사목 같은 무거운 바위를 이고 있어 무척 힘들겠어요.
▲ 돌무더기 승봉도의 바위입니다. 아주 기묘하지요. 제일 위는 한 가족 같구요. 왼쪽은 허리를 비틀며 하늘에 대고 아양 떠는 거 같죠. 오른쪽 바위는 고사목 같은 무거운 바위를 이고 있어 무척 힘들겠어요.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나중에 찾아보니 그 바위는 삼형제바위라고 한다는데, 바위는 세 개가 아니라 다섯 개쯤 모여 있었다. 허리를 비틀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바위, 고사목 같은 바위를 자신의 몸에 척 걸쳐 놓고 힘겨워 하고 있는 모습. 정말 바위가 많았는데, 마치 거기서 한 가족을 이루어 살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해안가 논둑 밑은 갈대들의 차지다. 그들은 좁은 수로를 따라 길게 늘어서서 가을 바람과 속삭이고 있었다. '간지러워 죽겠어. 좀 가만가만 흔들어'라고 말하면서. 가을 바람은 건조해서 모든 수확물을 바삭하게 말리는데, 올가을은 줄창 비가 내렸다. 바람은 벼를 쓰러뜨리고 비는 벼에서 싹이 나게 했다. 농부들의 가슴만 쓰릴 일이다.

섬에도 가을이 왔습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풍성해집니다.
 섬에도 가을이 왔습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풍성해집니다.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그런데도 누렇게 익어가는 논을 바라보니 기분이 흐뭇해진다. 내가 가꾼 것도 내가 추수할 것도 아니지만 내 눈에 보이는 풍경만으로도 가을은 충분히 풍성하다. 우마차가 볏단을 잔뜩 싣고 딸랑거리며 산 밑을 지나가는 것 같고, 탈곡기 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남대문 바위는 그 이름을 능가하고도 남을 만큼 훌륭했다. 해변에 있는 남대문 바위라니? 더구나 이 섬은 남쪽이 아니고 서쪽인데. 아마도 이 바위에 이름을 붙여준 사람이 남대문이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여겨 이름을 그렇게 붙인 건 아닐까? 이 바위에는 전설도 있다. 서로 헤어지게 된 연인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함께 문을 넘어 사랑을 이루었다나. 그 후로는 연인이 함께 이 문을 넘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위에 이고 있는 소나무도 멋진데 연인이 함께 이곳을 통과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답니다.
▲ 남대문 바위 위에 이고 있는 소나무도 멋진데 연인이 함께 이곳을 통과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답니다.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아무리 찾아도 부채 바위가 없다. 포기하고 동양 콘도에나 가보자는데, 뭐 볼 게 없어서 콘도를 보러 가나. 그래도 운전기사의 말을 들어야 하니 꾸역꾸역 차를 탄다. 그런데 분명히 배를 타고 오면서 본 그 큰 현대식 건물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봐도 없다.

주민에게 물어보고 민박집 앞을 지나가야 하는 길을 겨우 찾아냈다. 내가 생각하던 콘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의 그 모습. 바다를 배경으로 모로 들어앉은 그 거대한 건물은 제법 근사했다. 자리를 깔고 앉아 쉬면서 망망대해를 바라보았다. 어김없이 시야는 흐려 있었지만 역시 바다는 바라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시원하다.

한참을 앉아 있었더니 저만치 여객선이 보인다. 혹시 우리가 탈 배가 아닌가 허둥지둥 선착장으로 갔다. 그러나 인천 연안부두로 갈 배란다. 우리가 탈 배는 아직 30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시간이 아깝다며 다시 동네가 잘 보이는 언덕에 올랐다가 바다로 나갔다.

부채와 비슷한가요? 이곳에서 지은 시가 장원이 되어 시험 칠 사람에게는 영험이 있다고 전해져 온답니다.
▲ 부채바위 부채와 비슷한가요? 이곳에서 지은 시가 장원이 되어 시험 칠 사람에게는 영험이 있다고 전해져 온답니다.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우리가 금방 다녀간 바다에 물이 들어와 있다. 그리고 그곳에 부채 바위가 기적처럼 앉아 있다. 지도(선착장 앞에 있는 바위를 카메라에 담아 놨던)에 있는 바위와 대조를 해 봐도 똑같다. 아니 갑자기 어디서 나온 거야. 그제야 아까는 물이 없어서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바위에는 전설이 있다. 옛날, 유배생활이 지루해 이곳에서 마음을 달래며 시를 쓰던 선조들이 유배가 풀린 후 시험장에서 다시 그 글을 쓰니 장원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그래서 이곳은 수험생이나 고시생한테 영험이 있다고 전해져 온단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도 부채 같지 않다는 것. 무슨 연유로 부채바위가 되었을까? 우리는 궁금해하며 서둘러 선착장으로 달렸다. 황금 들판과 갈대가 바람의 힘을 얻어 우리에게 힘차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승봉도는 지난 9월 30일 다녀왔습니다.

주소 : 인천광역시 옹진군 자월면 승봉리 / 배편 :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 - 아침 9시 30분 출발, 승봉도 - 오후 3시 50분 출발 / 요금 : 승용차 36000원(운전기사 포함), 어른 8000원 / 배편은 비수기와 성수기, 그리고 휴일에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태그:#승봉도, #바위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