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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중국 베이징에서 개막되는 6자회담 본회의를 앞두고 남북한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핵 프로그램 목록 신고' 방법을 놓고 양측이 간접적으로 날선 공방을 주고받은 것. 이 문제는 '북한 핵시설 불능화'와 함께 이번 회담의 양대 의제다. 

 

북한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25일 베이징 공항에 도착,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목록 신고' 논의를 피하는 듯한 자세를 보인 것이 갈등의 발단이었다.

 

당시 김 부상은 "우라늄 농축에 대해서 어떤 방법으로 신고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건 그 단계에 가서 할 이야기지, 지금 조급하게 할 얘기가 아니다"고 답했다. 이번 회담에서는 '신고'에 대한 논의가 필요 없다는 뜻으로도 들릴 수 있는 발언이다.

 

이에 대해 26일 오후 베이징에 도착한 한국대표단의 한 당국자는 "김 부상이 언론에 대고 얘기한 것을 가지고 이번 회의의 논의 결과를 예단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불능화보다 오히려 '신고'가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신고할 내용이 궁금해서라기보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얼마나 진지하고 진실된 것이냐를 가늠할 수 있는 최초의 시험대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즉 '불능화'가 북한이 더 이상 플루토늄을 만들 수 없도록 핵시설 재가동을 막는 장치라면, '목록 신고'는 핵 폐기를 위한 준비단계이기 때문에 '신고'가 더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이 당국자는 "언론에 대고 하는 얘기가 있고, 회담에 와서 할 수 있는 얘기가 따로 있을 것"이라고 말해 북한측이 실제 회담에서는 다른 자세를 보일 것이란 기대감을 표시했다.

 

"신고 말할 단계 아니다" vs "신고가 더 중요하다"

 

남북한 대표단은 이렇게 '장외 공방'만 벌이면서 27일 오전까지도 만나지 않고 있다. 6자회담에서는 본회의 개막 전 입장차이를 좁히기 위해 가능한 모든 참가국들과 양자협의를 갖는 것이 관례이나, 이번엔 모두 북한과 미국간 협의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양자협의를 미루고 있는 양상이다.

 

한국대표단은 이날 오후 4시로 예정된 개막식 전에 회담장인 댜오위타이에서 미국·북한과 각각 양자협의를 추진하고 있다.

 

북한과 미국은 26일 수석대표간 만찬회동에 이어 27일 오전 다시 주중 미국대사관에서 양자협의를 열어 불능화 방법론과 핵프로그램 목록신고 방법, 그리고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는 문제 등 쟁점들을 놓고 절충을 벌였다.

 

김계관 부상은 26일 저녁 베이징 시내 주중 북한대사관 근처의 한 식당에서 가진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와의 만찬회동에 끝난 뒤 "이번 6자회담에서 결과를 만들어서 여러분들을 낙심시키지 말도록 하자는데 힐 차관보와 의견일치를 봤다"고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힐 차관보도 "이번 회담을 성공시키기 위해 해야 할 많은 점에 대해 좋은 대화를 가졌다"면서 "연내에 핵시설 불능화와 핵프로그램 목록 신고를 완수하는 것은 대단히 야심적인 계획이지만 실행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낙관적 견해를 밝혔다.

 

"우린 더 하고 싶고 북한은 덜 하고 싶고... 큰 차이는 아니다"

 

'불능화'와 관련해서는 북-미간 그 동안의 협의를 통해 대체적으로 기술적 방법론에 일치를 봤다는 관측이 우세하나, 실제 조문화 작업에 들어가면 예기치 못한 문제가 돌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힐 차관보는 27일 오전 숙소인 세인트 레지스 호텔을 출발하기 앞서 "불능화 방안과 관련 우리는 더 하고 싶고 북한은 덜 하고 싶은 차이는 있지만, 큰 차이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한국과 미국 대표단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불능화 방법론은 '완벽성'보다는 '신속성' 쪽으로 방향을 잡은 인상이다.

 

힐 차관보는 26일 도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불능화는 북한이 플루토늄 생산을 다시 시작하려고 해도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며 "그 어렵다는 것을 1년 정도의 기간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그 기간에 완전한 비핵화, 즉 '해체' 과정으로 들어가야 한다”면서 “이렇게 다음 단계로 이어진다면 불능화 기간이 10개월이든, 12개월이든, 14개월이든 관계없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즉 어차피 핵시설 해체로 가는 과정이라면 불능화의 '수준'에 구애될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한국대표단의 한 당국자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했다. 그는 "불능화의 기술적 방법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핵시설을 재가동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의지"라며 "정치적 의지만 있으면 폐쇄(shut down)만 계속하고 있어도 플루토늄의 추가 생산이 불가능해진다"고 말해 굳이 '높은 수준'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시사했다.


태그:#6자회담, #남북정상회담, #불능화 , #김계관, #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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