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스트래칭 중인 Fernan
 스트래칭 중인 Fernan
ⓒ 박정규

관련사진보기



9시에 일어나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Fernan은 스트래칭 마니아였다.

베네수엘라의 최고봉인 볼리바르 산을(5020m) 배경으로 한 Fernan의 스트래칭은 스포츠 잡지의 표지 사진 같은 느낌을 준다. 가벼운 몸풀기로 시작해서 머리의 중심을 모으면서 양팔로 부드럽게 감싼 후 아주 천천히 하늘과 일직선이 되도록 들어올리는 물구나무서기를 할 때는 할 말을 잃었다.

며칠 동안 따라 해봤는데 몸이 굳어서 잘 되지 않아서 조금 슬픈 표정을 지었더니, 자기는 7년 동안 해왔고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노라고……. 나도 꾸준히 하면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준다. 

찍힐 줄 아는 Fernan
 찍힐 줄 아는 Fernan
ⓒ 박정규

관련사진보기



오후에는 Apolo란 친구가 왔다. 두 눈이 크고 자연적인 파마머리를 한 유머감각이 풍부한 친구였다. 이 친구는 계속 장난으로 나에게 “치노~(China)” 라고 부르며 놀렸다.

나중에 희망질문을 할 때 설명을 해주면서 너는 국적을 “치노~(China)”라고 적으면 된다고 자연스럽게 말했더니 진짜 그렇게 적으려다가 크게 웃으면서 “하이파이브(스포츠 등에서 승리의 몸짓으로 두 사람이 들어올린 손바닥을 마주치는 짓)”을 요청했다.

Fernan에게 자전거 그림을 하나 그려 달랬더니 얼굴 부분이 영 이상하다. 그래서 Apolo라고 적어 달랬더니 모두 큰소리를 내며 웃는다.

Fernan이 희망노트에 그려준 그림
 Fernan이 희망노트에 그려준 그림
ⓒ 박정규

관련사진보기



장난기 가득한 Apolo
 장난기 가득한 Apolo
ⓒ 박정규

관련사진보기



Fernan의 부모님은 미술가 협회에 소속 되어있고 아버지는 Caracas에서, 어머니는 Cuba Habana에서 일을 하고 계신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인해서일까?

Fernan은 Cartoon(시사 풍자만화)을 공부하고 있고 그의 형 Esteban은 애니메이션 제작 툴인 플래시를 공부하고 있었다.

Fernan은 고등학교 졸업 후에 런던의 삼촌 집에서 지내며 영어와 Cartoon, 조형물 제작 공부를 3년 동안 하면서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유럽 대부분의 나라를 여행했다. 그래서 낯선 나라를 여행하고 있던 자신과 나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고 날 초대한 거란다.

3일 동안 거의 채식을 했다.
 3일 동안 거의 채식을 했다.
ⓒ 박정규

관련사진보기



ⓒ 박정규

관련사진보기



 
음악에 관심이 많은 Esteban이 한국의 전통 음악을 듣고 싶다고 했다.

다행히 최근에 “아리랑”을 받아 둔 게 있어서 그걸 들려 주었는데 아주 좋아한다. 그리고 대금을 보여주자 아주 예쁘고 소리가 좋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소리 내는데 힘들어 했다.

잠시 후 Fernan이 바주카포를 연상케 하는 호주의 Northern territory주 지역의 원주민이 사용하는 “디저리두(Didgeridoo)”란 통나무로 만든 피리와 나팔의 중간인 파이프 형태의 악기를 가져왔다.

길이는 1m20cm 족히 될 것 같고 아주 낮고 중후한 소리가 났다. 잠시 후 엉성한 연주회를 가지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디저리두를 연주중인 Fernan
 디저리두를 연주중인 Fernan
ⓒ 박정규

관련사진보기



대금을 연주중인 Fernan
 대금을 연주중인 Fernan
ⓒ 박정규

관련사진보기



 
며칠 동안 많은 친구들이 Fernand의 집에 다녀갔다. 알고 보니 Fernan, Esteban과 다른 두 친구들이 함께 현재 방송국에 판매할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베네수엘라는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미국에서 수입해서 방송하고 있고 메인 뉴스만 자체 제작되고 있고 애니메이션 수준은 아주 낮은 편이라고, 자신들이 그 빈틈을 채워보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는 당찬 청년들이다.

왼쪽부터 필자, Apolo, Fernan, Esteban
 왼쪽부터 필자, Apolo, Fernan, Esteban
ⓒ 박정규

관련사진보기



Fernan은 유럽의 사회 시스템을 좋아했고 차베스의 정책의 일부는 가슴을 뜨겁게 하지만 미래에 많은 부분이 문제가 될 거라고 했다. 총으로 다스리는 리더십은 좋지 않다고…….

생명을 죽이는 걸 싫어해서 채식을 하고, 삶의 초점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23살의 아름다운 청년 Fernan과 그의 친구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냥 기분이 좋아졌고, 베네수엘라의 미래 또한 밝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Fernan의 냉장고
 Fernan의 냉장고
ⓒ 박정규

관련사진보기



이번에는 제대로 흔적을 남겼다.
 이번에는 제대로 흔적을 남겼다.
ⓒ 박정규

관련사진보기



또 두 갈래 길이 나왔다. 산 쪽으로 가는 길은 60-70km를 돌아가야 한다. 조금 피곤해서 나도 모르게 빠른 길로 접어 들었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핸들을 돌렸다.

반가운 표지판
 반가운 표지판
ⓒ 박정규

관련사진보기


조나단의 눈빛이 밝게 빛나는 어둠이 찾아왔다. 여전히 오르막이고 갈 곳을 찾지 못했는데 앞에 트럭 한대가 서있다. 짧은 대화 후 트럭 뒤에 조나단을 실으란다. 중학생 아들의 도움으로 조나단을 싣고 오르막을 4km 가량 올라갔다.

너무 쉽게 올라가서 마음이 아팠는데 걱정도 잠시였다. 핸들을 돌리더니 다시 내려가기 시작해서 만났던 곳보다 500m 가량 더 내려가서 한 공사중인 단층 건물 앞에 멈췄다.

트럭에 조나단을
 트럭에 조나단을
ⓒ 박정규

관련사진보기


불빛 하나 없는 공사장 안의 빈방들을 보여주면서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르란다. 밖은 춥지만 안은 괜찮을 거라면서…….

일단 트럭기사의 집에 가서 따뜻한 저녁을 먹은 후에 주인 아주머니가 양초, 화장지, 간식을 챙겨주었다.

다시 건물로 돌아와서 아저씨 내외분이 한 쪽에 촛불로 불을 밝히고 합판과 비닐을 주워와서 잠잘 곳을 마련해 주고 갔다. 촛불위로 날아 다니는 수많은 먼지들을 바라보며 잠이 들었다.

아름다운 산을 몇 개 넘어서 산 아래 마을로 접어 들었다. 9톤 트럭이 주차되어 있는 집의 문을 두드렸다.

인상이 조금 강한 남자와 젊은 아주머니가 나왔다. 사정을 이야기 하자 잘 곳이 없다고 했다. 아무 곳이나 괜찮다고 하자 아저씨가 트럭 짐칸을 가리킨다.

웃으며 거기도 괜찮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오늘은 어디서 잘 건지 물어본다. 하하- 여기요! 아주 재미있는 친구라며 다들 웃는다.

아름다운 산 길이 너무 좋았다
 아름다운 산 길이 너무 좋았다
ⓒ 박정규

관련사진보기



ⓒ 박정규

관련사진보기


농담은 현실로 되었다…….

저녁을 먹은 후에 아저씨가 챙겨준 두꺼운 이불을 들고 트럭 짐칸위로 올라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날은 가족들이 모두 이웃 도시 클럽에 놀러 가는 날이었다. 혼자서 트럭 짐칸 위에 누워서 잠이 들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지붕이 잘 되어 있어서 빗소리를 들으며 잘 수 있었다. 가족들은 새벽 무렵에야 돌아왔다…….

클럽에 가기 위해 이쁘게 준비한 친구들
 클럽에 가기 위해 이쁘게 준비한 친구들
ⓒ 박정규

관련사진보기



트럭 짐칸도 나쁘지 않았다.
 트럭 짐칸도 나쁘지 않았다.
ⓒ 박정규

관련사진보기


똑- 똑- 문이 열린다…….

낯선 나그네에게 무더운 여름날의 시원한 소나기를 보여주는 사람도 있고,

손이 저릴 것 같은 추운 겨울날의 가슴을 에는 듯한 소나기를 보여주는 사람도 있다…….

- 그냥 가끔 비가 오는 날에는 / 박정규

아랍에미레이트는 연중 비 오는 날이 거의 없고,
영국은 비가 오지 않는 날이 거의 없다.
감사하게도 대한민국은 비를 그리워하지 않을 만큼 비가 온다.  

하지만 너무 많은 비는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모두 덮어버리기도 하고

너무 적은 비는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모두 말라버리게 하기도 한다.

그냥 가끔 비가 오는 날에는
너무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말자.

그냥 가끔 비가 오는 날에는
흐르는 빗물에 작은 미소를 띄워 보내자.

[여행수첩]

1. 이동경로
Merida, Merida(8.5-8.7 체류) -> Merida, STA. CRUZ DE MORA(8.8)
Merida, BAILADORES(8.9) -> TACHIRA, LA GRITA(8.10)

2. 주행기록
주행거리: 171.24km & 주행시간: 14시간49분 & 평균속력: 11.40km/h


3. 사용경비: 52850 볼리바르 (공식환율 U$1.00 = 2,150BS)

2007년 8월10일 베네수엘라 TACHIRA, LA GRITA에서.
꿈을 위해 달리는 청년 박정규 올림.

덧붙이는 글 | 공식 홈페이지 www.kyulang.net



태그:#희망, #절망, #세계일주, #자전거여행, #도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