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8월 7일. 평소보다 일찍 잠이 깼다.

아침 강가는 밤새도록 내려앉은 별들의 잔해로 잔잔히 반짝였다. 모처럼 여유로워진 일정을 즐기며 짐을 꾸렸다. 비록 하룻밤이지만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고요히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넌지시 물어 보았다. 어디서 흘러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기는 세월이나 강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부질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강가 모래밭에 ‘안녕’이라고 적었다.

오전 9시에 ‘싸이한 캠프’를 떠났다. 상당한 거리까지 길잡이를 해주며 캠프장 사람 둘이 배웅을 나왔다. 싸이한 오보 솜을 지나, 낮 12시 40분경에 이크덴달라이 솜에 도착했다. 원래는 다른 길로 돌아가려 했지만, 며칠 전에 내린 비로 길이 험해져서 왔던 길을 되짚어 가게 되었다.

반갑다, 이크덴달라이!

두 번째 보는 마을이지만, 눈에 익은 이크덴달라이 풍경이 반갑다. 때묻은 낙타 인형을 파는 아이들은 여전히 달려 나왔고, 뒤에서 등떠미는 언니도 따라 나왔다. 마을에는 작은 규모의 텃밭도 있었다. 주로 토마토나 채소를 기르는데, 양이나 가축이 뜯어먹을까봐 철망을 둘러친 점이 특이했다.

몽골의 어느 모녀
 몽골의 어느 모녀
ⓒ 이형덕

관련사진보기


주유소에서 오토바이에 기름을 넣는 몽골 가족을 만났다. 몽골 전통 옷을 입은 아기 엄마는 퍽이나 앳되어 보였다. 몽골은 지금도 조혼의 경향이 있다고 한다. 

뒷다리를 못 쓰는 개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일행 중 한 분이 불쌍하다고 먹을 것을 열심히 던져 주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 이 넓은 고비에서 재회하게 된 개와의 인연을 생각해 본다. 혹 내세가 있고, 윤회의 쳇바퀴가 여전히 돌고 있다면 다음 세상에서는 먹이를 던져주는 여행객이 되라고 개에게 빵 대신 기원을 던져 주었다.

식당에서 현지식을 하게 되었다. 흡사 우리의 옛날 시골 중화요리점 같은 식당은 아무런 장식도 없이 탁자와 작은 창문, 그리고 열차표 파는 창구 같은 주방문이 있을 뿐이었다.
고기를 다져 넣은 만두와 쇠고기 국물에 당면을 말아주는 밥이 식사로 나왔다. 모두 고추장을 비벼 먹느라 부산했다. 고추장과 한국인, 참 몰핀보다 지독한 중독의 관계다.

바빠서 그냥 지나쳤던 사원을 식사 후에 둘러 볼 수 있었다. 18세기 경에 다시 지었다는 사원은 달라이 라마가 방문했을 때 환영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사원 안에는 달라이 라마의 사진이 모셔져 있었다. 평소에는 닫혀 있다가 여행객들이 오면 어디선가 연락을 받고 관리인이 달려 온단다. 약간의 입장료가 있었다.

다시 길을 떠났다. 첫날밤을 보냈던 미들고비 캠프를 다시 지나게 되었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은 미지근하다. 얼마를 가자니, 독수리들이 보인다. 떼를 지어 모인 곳으로 차를 몰았다. 죽은 소의 시체를 둘러싼 독수리들은 좀체 비켜서지 않으려 한다. 소는 늑대에게 당한 모양이라고 했다. 주변에는 동물들의 뼈가 하얗게 쌓여 있었다. 늑대들의 식당이라도 되나.
 무너진 성채
 무너진 성채
ⓒ 이형덕

관련사진보기


날이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오후 5시경, 푸른 오아시스라는 뜻의 ‘흑보르뜨’ 호수에 도착했다. 예전에는 큰 호수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물이 말라 개울처럼 보였다. 물 가운데는 오래된 성이 무너진 채 서 있었다. 16세기 경에 창고로 쓰이던 성채로, 청조에 다시 손을 보아 사람이 살았으나 벼락을 자주 맞아 파손되는 일이 잦자 지금은 부서진 채로 내버려두었다고 한다. 이 성에 와서 주막이라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굳센 바위에서의 밤

작은 굳센바위
 작은 굳센바위
ⓒ 이형덕

관련사진보기


한 시간쯤 더 가서 이제 고비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낼 ‘박가즈링초도’에 도착했다. 사방이 거대한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였는데, 우리말로 하자면 ‘작은 굳센 바위’라고 한다. 오랜 세월 거센 모래 바람에 살을 잃고 뼈만 남은 채 서 있는 바위산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비장했다. 동행한 다이븐(울란바타르대 2학년)의 말로는 ‘큰 굳센바위’도 있단다. 더 큰 바위들을 만나고 싶다는 욕심이 금세 생겨났다.

옛 사원 터
 옛 사원 터
ⓒ 이형덕

관련사진보기


‘지지큰 겔’이라는 캠프장에는 벌써 많은 유럽 여행자들이 묵고 있었다. 여장을 풀기도 전에 주변의 사원터를 둘러 보러 나섰다. 바위산 틈새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사원은 무너진 터만 남아 있었다. 빈 사원터에는 바람에 날아든 은사시나무가 자라 있었고, 나무에는 하닥과 지폐들이 꽂혀 꽃처럼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주변에는 굴이 40여 개나 있다는데, 긴 굴은 12킬로미터나 되는 것도 있다 한다.

한때 수정을 캐던 광산으로 향했다. 말을 타고 걸어 들어갔다던 굴은 흙에 메워져 기다시피해서 간신히 들어가야 했다. 그나마 몸집이 큰 사람은 몇 걸음 가지 못하고 돌아서야 하는 비애를 맛보게 된다. 굴 안에는 수정을 캐고 버린 원석들이 널려 있는데, 폐광이 된 뒤로는 러시아나 중국인들이 많이 캐갔다고 한다. 한국인들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 안도했다.

날이 평일보다 빨리 어두워졌지만, 눈에 좋은 약수가 나온다는 눈의 약수터를 둘러보러 갔다. 바위에 주먹이 하나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패였는데, 지금은 물이 말랐다고 한다.

고비에서 자전거 타기
 고비에서 자전거 타기
ⓒ 이형덕

관련사진보기


캠프로 돌아가는 길을 걸었다. 걸으면서 보니 도처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타르박'이 드나드는 구멍이라고 한다. 바위산 움푹 들어간 곳에서 여행자들이 천막을 치고 야영을 하는 게 눈에 띄었다. 그 넓은 분지에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사람도 보였다. 참으로 한가로운 풍경이었다.

날이 저물면서 바람이 차가워졌다. 긴팔 방한복을 꺼내 입었다. 한국으로 치자면 늦가을 날씨였다. 여름 한철 이곳에 머물다 가면 더위를 모르고 지낼 만하다. 마음이 바쁜 한국인들은 왕년의 몽골 기마병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동하지만, 유럽 여행객들은 사나흘씩 이곳에 머무르며 한껏 여유로운 휴식을 맞이한단다. 쉬는 것도 서두르는 우리의 심성이 과연 유목민의 혈통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윽고 고비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 끝없이 펼쳐진 고비이건만 결코 겹치지 않는 황량함으로 채워나가는 묘미가 가슴에 남는다. 이 텅 빈 충만감을 무엇이라 할까. 막막한 황야 가운데서 별과 호젓이 독대하는 밤은 내가 선 이곳이 바로 세상의 중심이라는 충만감을 준다. 기기묘묘한 바위산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겔 밖에서 대상의 방울소리처럼 지나간다. 아쉬움에 늦게까지 한담을 나누며 모두 술에 취했다.

고비를 떠나며

8월 8일.  우유에 밥을 만 ‘수태 보따’라는 음식과 밀가루 전과 같은 것으로 아침 식사를 마쳤다. 캠프 뒤편의 암각화를 둘러보러 갔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고 희미해 기대에 못 미쳤다. 다만 이렇게 척박한 바위산에서 삶을 이어나간 오래 전 사람들이 대단하게 여겨졌다.

어느 어워(돌무더기) 앞에서
 어느 어워(돌무더기) 앞에서
ⓒ 이형덕

관련사진보기


암각화가 있는 바위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흉노족의 무덤을 둘러보았다. 이리저리 흩어지거나 쓰러진 돌무덤 속에서는 왕과 왕비로 추정되는 사람 뼈와 가축의 뼈가 나왔다고 한다. 함께 한 김진경 시인의 말에 의하자면, 경주 김씨의 원류가 흉노족이라는 설도 있다고 했다. 반도 끝의 고도 경주와 이 황량한 고비에 누워 있는 돌무덤을 잇기에는 내 상상력이 빈약했다. 고대의 사람들이 지금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활발히 먼 지역을 돌아다녔다는 생각이 든다.

헬흘호수
 헬흘호수
ⓒ 이형덕

관련사진보기


짐을 꾸려 이제 고비를 떠난다. 오전 8시 30분쯤 출발한 차는 둔트 고비의 아다쯔솜에 이른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새들이 나는 헬흥 호수에 도착한다. 유황 성분이 많은 호수 가장자리에는 허연 거품이 굳어 있었다. 말을 기르는 이들은 겨울이 되기 전에 한번씩 이곳에 데려와 이 유황 거품을 먹인다고 했다. 그러면 말들이 병에 걸리지 않는단다.
  
고비를 벗어나, 울란바타르로 다가갈수록 사람들의 입에서는 말이 줄어 들었다. 이제 다시 도시의 어지러운 일상 속으로 돌아갈 일이 여행자들의 입을 무겁게 하나 보다.

무난히 마무리가 되는 듯하던 여행길에 돌발 사고가 발생했다. 타고 가던 차가 펑크가 난 것이다. 예리한 돌에 찢긴 듯 타이어 바닥이 너덜너덜 갈라져 있다. 앞서 갈아 낀 예비 타이어도 못이 박혀 쓸 수가 없었다. 뒤따르던 랜드크루저가 앞차를 잡으러 달려갔다. 오래지 않아 예비 타이어를 가져왔는데, 어찌 된 일인지 바퀴를 끼우는 나사 구멍이 달랐다.

이 난감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나 지켜보자니, 예비 타이어에 나무판자를 대고 다른 차가 눌러서 휠을 벗겨낸다. 그러고는 가지고 다니던 여분의 튜브를 안에 넣고 바람을 넣었다. 자전거 바람 넣는 펌프로 돌아가며 바람을 넣었다. 저걸로 될까 걱정했는데, 차는 불룩해진 타이어를 갈아 신고 달릴 수 있었다. 유목민의 임기응변을 실감했다. 사막에서의 큰비만 아니면 이제 겪을 만한 일은 다 겪은 셈이었다.

어미말과 망아지
 어미말과 망아지
ⓒ 이형덕

관련사진보기


차는 어느 게르 앞에 멈추었다. 마유주를 마시기 위해서란다. 마당에는 어미말 곁에 망아지들이 줄지어 묶여 있었는데 이 어미말의 젖을 발효시켜 마유주를 만든단다. 아무 집이나 마유주가 있는 것이 아니고, 이런 모습으로 말들이 묶인 걸 보고 알게 된단다.

마당 한가운데는 가죽끈 같은 것에 큼직한 돌이 매달려 있었다. 자상한 아가씨가 주인 남자와 기다란 막대로 가죽끈을 훑어내리는 시범을 보여 주었다. 질긴 가죽을 길게 늘여 펴는 작업기구라 한다. 마당 한 곁에는 말똥을 말리고 있었다. 나무가 드문 초원에서는 말똥이 요긴한 땔감일 만했다.   

가죽 작업대
 가죽 작업대
ⓒ 이형덕

관련사진보기


고비를 벗어나는 차를 배웅하듯 새들이 낮게 날며 차를 따라온다. ‘호씅 좌러’라는 참새 비슷한 새였다. 뒤에 두고 떠나는 새 한 마리, 들꽃 한 송이가 심상치 않게 마음에 남는다.

자본 앞에 선 ‘붉은 영웅’

오후 4시경, 포장이 된 도로가 나타난다. 멀리 눈에 익은 울란바타르 시내의 풍경이 보인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서는 길 좌우에 높다랗게 선 외국 기업의 광고판들이 이제 막 치열한 자본주의의 대오에 합류한 몽골을 실감나게 한다. 

 울란바타르 근교
 울란바타르 근교
ⓒ 이형덕

관련사진보기


시내로 진입하는 고개에 빼곡히 자리 잡은 집들이 마치 예전의 우리네 판자촌을 연상시킨다. 땅값이 비싼 시내로 들어서지 못하고 변두리에 새로 조성된 마을이라고 한다.

한가로이 소가 가로지르는 도로를 지나 울란바타르 시내로 들어선다. ‘붉은 영웅’이라는 이름을 지닌 몽고의 수도. 십 년 이상된 중고차들이 내뿜는 매연으로 가득 찬 거리이건만, 석탄을 때서 난방을 하는 겨울철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 한다.

사막화되는 초원을 버리고 일거리를 찾아 울란바타르로 모여드는 젊은이들로 초원은 노인들만 남아 있다 한다. 여유 있는 이들은 시내에 집을 두고, 고비 쪽에 별장 삼아 겔을 마련하여 여름이면 초원으로 나간단다.

1990년대에 자본주의 체제를 받아들인 몽골은 빠른 속도로 도시화하고 있다. 동행한 돌마 교수는 시내 아이들이 몽골 전통 문화를 거의 잊어간다고 걱정했다. 심지어 말을 탈 때 반드시 왼편에서 타야 한다는 기본 상식조차 모른다 한다.

지난 날, 급속한 도시산업화의 과정을 거친 우리네이기에 그런 말들이 남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역사에는 우연이 없고, 생략이 없단다. 이제 몽골이 겪는 변화가 어디로 향할지 모르겠지만, 몽골 사람들이 그 무엇보다 자랑스럽게 여기며, 사랑한다는 고비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고비의 들꽃들은 시들고, 짧은 여름이 끝나갈 무렵일 것이다. 이제 나도 고비에게 안녕을 고한다. 바야르떼, 싸이한 고비.

가끔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혼자서 이 세상에 우두커니 서 있고 싶을 때 달려갈 곳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 - 이번 여행 일정을 주선하여 준 작가회의 김형수 님과 이영진 시인 그리고 바쁜 가운데서도 시간을 내어 자상한 안내를 맡아주신 돌마 교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이 기사는 '남양주뉴스'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몽골, #고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