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 산동성 스케치
 
산동반도는 지리 시험문제의 답 정도로 내 관념속에 자리잡고 있던 단어였다. 그 단어가 이제 관념이 아닌 몸으로 다가오고 있다. 북경에서부터 달려온 기차는 이제 산동성의 수도인 제남에 곧 도착하였다.
 
산동성은 그 옛날 패권을 다투던 역사를 살아낸 사람들이 서로 선점하려고 한 곳이다. 이 곳을 차지하는 것은 화북과 화남을 정복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통 성의 첫글자를 차량번호판의 ‘성(省)표식’으로 삼는 반면에 산동성은 ‘山’으로 표시하지 않고 ‘魯’라고 표시한다. 아득한 ‘노나라’에 대한 이들의 깊은 자존이 느껴졌다. 강태공, 제갈량, 제자백가(공자, 노자, 묵자 등), 항우, 손무, 손빈, 왕희지 등 중국 역사에서 빈번하게 나오는 이름들의 출생지가 바로 이 곳 산동성이다. 산동성 사람들의 역사에 대한 자존이 대단할 만도 하겠다.
 
이 곳은 기후와 물이 좋아 산물이 풍부하여, 사람들이 크고, 산물도 아주 크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이 곳에서 중국의 살육과 고난의 질곡을 평화로 바꾸려했었던 사람인 공자와 묵자를 중심으로 평화의 발자취를 밟아가려고 한다.
 
2. 묵자 - 공존과 상생의 21세기 동아시아의 깊은 울림
 

우리는 아침 일찍 묵자 기념관이 있는 ‘조장’이라는 시골 마을로 들어갔다. 인류최초의 반전평화사상가로 평가되고 있는 묵자에 대한 외경심을 가지고서…. 그리고 최근 한국에서 묵가의 반전평화사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영화 <묵공(墨公)>을 통해서 각인된 그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말이다.

 
묵자가 태어나고 살았던 지역을 최근에야 비로소 묵자 기념관으로 조성하였다. 우리를 안내한 현지 가이드도 이곳은 처음 가본다고 한다. 중국인들도 잘 모르고 국내외의 관광객들은 하나같이 공자와 태산만 찾는데 묵자기념관을 간다니 생소하다고 한다.
 
마을로 들어서자 갑자기 나타난 우뚝 솟은 시커먼 탑(용천탑)이 보인다. 탑이 검기에 묵자를 상징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청나라 때 이 지역을 표시한 탑이라고 한다. 표식을 위한 탑이라고 하기에는 엄청난 탑이었다. 
 
이 탑 옆으로 묵자 기념관이 있었다. 아직은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어 한가한 이 곳에 느닷없이 10여명의 평화대장정 일행들이 찾아오니 기념관의 안내원은 무척이나 신이 난 듯 했다. 쑨원, 마오쩌둥, 장쩌민, 후진타오의 묵자에 대한 평이 입구에 적혀 있었다. 한 때 묵가는 유가와 쌍벽을 이루었던 집단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묵가는 유가와의 주류담론 경쟁에서 패배한 후 급격히 소멸하여 무려 2천년이나 역사의 어둠에 파묻히게 된다. 이러한 묵가는 청나라 말기와 공산당에 의해서 재조명 되다가 마르크시즘에 모순되는 측면(하늘사상과 비폭력 사상)으로 다시 비판받으며 현재에 이른다.
 
묵자의 대표적 사상은 겸애(兼愛), 비공(非攻), 상현(尙賢), 상동(尙同) 등이다. 하지만 중국은 묵자에 대한 연구가 이제 시작 단계이다. 오히려 묵자에 대한 연구는 한국에서 더욱 발달하여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기념관 안내원은 겸손을 표하였다.
 
중국의 일반 지식인들도 묵자가 평화사상가이자 실천가라고 하면 너무나 생소하게 여긴다고 한다. 이들은 묵자를 혹 알고 있다고 해도 이를 논리학자, 수학자, 과학자로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묵자가 평화사상가, 실천가, 수학자, 논리학자, 과학자였음을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은 기념관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당시 전국시대 초기 수많은 전쟁속에서의 살육과 파괴를 체험하고 느끼며, 전쟁 자체는 어떤 명분도 합리화 할 수 없다는 사상을 가지고 그의 정교한 논리를 피력한다. 그는 여기에서만 그치지 않고 그의 사상, 인격, 삶(개인과 공동체의 일상과 실천)을 일체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그는 공격 전쟁을 멈추기 위해 공격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방어기술을 개발하기까지 이르게 되고, 이를 위해, 과학과 수학 그리고 공학 연구에 몰두했던 것이다.
 
전국시대가 진나라와 한나라로 정리되자 한나라의 주류사상으로 유교가 채택되었다. 역사가 그렇듯이 이단은 철저히 거세 된다. 이단으로 몰린 묵가는 역사의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묵자의 사상과 삶은 예수의 사상과 삶과 흡사한 점이 많다. 그래서 신영복의 <강의>에서 묵가가 중국에서 사라진 것이 기원전 100년경이기 때문에 혹시 동방박사들이 이들이 아닐까라는 주장이 나온다고 한다.
 
오늘 우리는 이념의 시대를 넘어 공존과 상생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2천년간 기억에서 멀어진 묵자는 동북아인적 정체성을 가지기 시작한 우리시대에 와서야 부활하려는 것이 아닐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3. 공자 - 춘추전국시대 그 혼란의 모순을 ‘예’로 넘어서려 하다
 
공자가 태어난 고장 곡부(曲阜)에 왔다. 공자는 그 출생이 뚜렷이 전해온다. 무녀라고 알려진 어머니가 야합(野合)하여 태어난 그의 일가가 묻혀있으며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집과 사당으로 우리는 들어갔다.
 
묵자가 2천년간 역사의 어둠속에 묻혀있었다면 공자는 제국의 시작인 진시황의 ‘분서갱유’와 현대에 와서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으로 철퇴를 맞았지만 최초의 대제국 한나라의 정치적 근간이 된 후 2천년간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사상적 근간이 되게 된다.
 
 
동아시아인들의 핏줄속에 녹아들어간 공자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우리는 곡부에 있다. 하지만 지금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 공자는 하나의 상품이 되어가고 있었다. ‘공자쇼’가 야외무대에서 열리는데 그 ‘쇼’는 ‘중화’의 패권적 기운을 찬양하는 퍼포먼스로 재미보다는 씁쓸함을 가져다주었다. 곡부는 옛 고을의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서 공자의 사당 높이 이상으로 건물을 짓지 않았으며, 곡부는 내성과 외성으로 구분되어 내성안 마을은 마치 영화의 세트장 같은 느낌이었다.
 
 
예악(禮樂)에 나타난 귀족중심의 통치질서를 자기 수양과 덕치를 통해 회복하려고 한 공자는 공존과 상생의 21세기에도 여전히 의미있는 지도자의 본질적 덕목을 울리고 있다. 우리는 이념의 공자가 아닌 그렇다고 상품의 공자가 아닌 2천년전의 ‘인간 공자’로 돌아가야 할 과제가 우리 앞에 남겨져 있을 것이다.
 
4. 태산, 그 위용 뒤의 슬픈 아우성
 
묵자와 공자를 뒤로 하고 중국 한족에게 한민족의 성산인 백두산과 같은 존재인 태산을 올라갔다. 그 유명한 시구인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의 그 태산이다. 하지만 태산은 실제로 그렇게 높지 않았다. 하지만 태산은 광활한 평지인 중원의 땅 산동성에 유난히 우뚝 솟아 있다. 
 
우리는 태산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케이블카에 내려서 그 정상까지는 계단을 타고 오르게 되어있다. 올라가는 태산은 마치 천상으로 오르는 느낌을 갖게 한다. 오늘날도 그러할진대 그 옛날은 어떠했겠는가? 태산은 도교적인 사찰로 가득하였다. 신선이 있는 사찰마다 피어나는 향은 사회주의국가 중국인들의 모습과 교묘한 아이러니를 피워내는듯 했다.
 
역대의 많은 황제들이 여기에 오르며 제의를 가졌다고 한다. 넓은 평야를 바라보며 통치에 대한 포부를 다졌을 것이다. 그 포부를 다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아우성을 밟았을 것인가? 계단을 오르는 내내 수많은 사람들의 아우성을 밟는 듯하였다.
 
 
5. 황하, 희로애락의 역사가 오늘도 흐르다
 
마지막 일정은 잔뜩 흐린 날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황하에 다가갔다. 흐린 날의 황하는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황하의 하류지역은 개발이 한창이었다. 개발 중인 황하는 우리나라에서 큰 홍수 후에 한강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인류 4대 문명의 발상지라는 황하는 인류의 최초의 문명 때부터 우리가 서 있는 지금까지 변함없이 흐르고 있었다. 황하가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많은 진실을 들을 수 있을까?

오랜 여행으로 지친 우리는 잠시 황하를 바라보았다. 황하는 역사의 진실을 간직하고 변함없이 흐르고 있었다. 황하는 말을 하지 않고 있지만 혹시 침묵으로 그 말을 대신하고 있지는 않을까? 침묵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얼빈부터 시작된 우리들의 평화대장정은 이 강을 끝으로 다음을 기약하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난 8월 21일부터 9월 1일까지 생명평화재단이 주최하고, 청년평화센터 푸름에서 주관한 <2007 동아시아 평화대장정>의 답사기입니다. 푸름 홈페이지(http://www.pureum.org)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태그:#평화, #중국, #동아시아, #묵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