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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기는 가슴 안고 사라졌던 이 땅의 피울음 있다
부둥킨 두 팔에 솟아나는 하얀 옷의 핏줄기 있다
해 뜨는 동해에서 해 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 벌판
우리 어찌 가난하리오! 우리 어찌 주저하리오!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


'광야에서' 노래를 부를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동해에서 서해까지 남도에서 만주 벌판까지 찢기는 가슴 안고 피울음 울컥울컥 토해내며 살아왔던 고난의 역사를 담은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 역사의 현장, 만주를 찾게 되었다. YMCA에서 운영하는 '광개토대왕을 찾아서'란 청소년 프로그램에 참가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교실을 떠나 역사의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답사를 할 수 있다는 건 역사 교사로서 느낄 수 있는 큰 행복이다. 수능 시험 준비만이 최선인 양 살아야 하는 고등학교 교사에게는 더욱 그렇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아이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아이들
ⓒ 이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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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17시간 연착...지쳐버린 아이들

아침 일찍 짐을 챙겨 집결지로 갔다. 벌써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아이들을 배웅하기 위해 오신 부모님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청소년 수련관에 들어가 비행기 탑승용 서류를 작성하고 인천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떠나는 아이들은 밝고 들뜬 표정이지만, 보내는 엄마나 아빠들은 걱정스런 표정이었다. 버스 타는 아이들 향해 손 흔들면서 "밥 잘 먹어라",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중국에서 아무데나 함부로 다니면 안 된다" 연신 당부를 했다. 엄마 아빠의 마음을 알기나 하는지 아이들은 환하게 인사를 했다.

"잘 갔다 올게."
"다녀오겠습니다."

인천공항까지는 순조롭게 도착을 했지만 그 뒤 일정이 예정대로 되지 못했다. 심양으로 가는 비행기가 연착을 했다. 한두 시간 연착이 아니라 열일곱 시간 연착이었다. 몇 시간 뒤면 탈 수 있다는 말을 믿고 기다린 것이 공항에서 아예 밤을 지새우는 꼴이 되었다.

중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아이들은 기다림에 지쳐버렸다. 끼리끼리 모여앉아 놀이도 하고 웃고 떠들며 지루함을 달래도 보고, 긴 소파에 누워 잠을 청해도 보고, 언제 떠날 수 있나 탑승구 주변을 서성거려보기도 했지만 시간은 계속 흘러 자정 훌쩍 넘겨버렸다.

우리를 태우고 갈 비행기는 다음날 새벽 두 시 넘어서 도착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비행기를 타고 온 승객들이 비행기 안에서 내리지 않고 시위를 한다고 했다. 그쪽 승객들 역시 무지막지한 연착으로 지쳐 있었고 그 시간에 공항을 나서면 숙소를 잡기도 힘들고 교통편도 마땅치 않으니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줄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선생님, 우리 언제 비행기 타요?"
"비행기 왔는데 왜 안 타요?"

기다림에 지친 아이들이 인솔 교사들 주변을 서성대며 연신 물어보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똑 부러지게 대답을 해줄 형편이 못되었다. 힘들지만 조금만 더 참아보자고 다독이는 거 말고는 달리 방법도 없었다.

그 긴 기다림이 끝난 건 세 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지친 표정으로 비행기에 탔다. 좌석에 앉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아이들은 하나 둘 잠에 떨어졌다. 잠에 떨어진 승객들을 실은 비행기는 어둠을 헤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소현세자 머물던 심양에서 잠을 청하다

비행기가 도착할 무렵 심양은 새벽이었다. 공항에 착륙할 무렵 창 밖으로는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공항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해서 방을 배정해 주었다. 열한 시까지 눈 좀 붙이고 답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둘씩 짝을 지어 방으로 들어간 뒤 인솔교사들도 방을 잡았다. 간단히 씻고 침대에 누웠다. 숙소 밖에서는 쉴 새 없이 자동차 경적 소리가 들렸다. 심양은 이미 출근 시간이 된 것이다. 자동차 소음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억지로라도 잠을 청해보았지만 의식은 점점 또렷해지기만 했다.

물에 잠긴 심양 시내
▲ 심양 물에 잠긴 심양 시내
ⓒ 이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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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도 자지 못한 채 이리저리 뒤척이는데 이번엔 어디선가 포성이 들렸다. 난데없는 포성에 불길한 생각마저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았다.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렸는지 시내가 온통 물바다였다. 그 위로 자동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포성은 계속 울리고 있었다.

"잠이 안 오지요?"

같은 방을 쓰는 원주 YMCA 사무총장님이 침대에서 일어나 물었다.

"소음이 심하군요. 군부대가 가까운 곳에 있는지 포 쏘는 소리도 들리네요."
"잠자기는 틀린 거 같아요."

비에 젖고 물에 잠기긴 했지만 아침 심양 거리에는 활기가 있었다. 도심 한복판에서도 아무 거리낌 없이 경적을 울려대는 차들이 물살을 가르며 달려가고 있었고, 자전거를 탄 사람들과 우산을 쓴 사람들도 부지런히 이동하고 있었다. 포성도 꽤나 오래 지속되었다.

"심양이 꽤 큰 도시지요?"
"중국 5대 도시 중의 하나랍니다. 청나라 수도가 되면서부터 성장한 도시지요."

심양은 청나라의 첫 번째 수도였다. 병자호란으로 조선이 청에 항복한 뒤 소현세자를 비롯한 조선 사람들이 인질이 되어 끌려와 생활하던 곳이 심양이다. 활기찬 심양 거리를 내다보며 소현세자를 떠올려 보았다. 인질처럼 잡혀온 곳이지만 소현세자는 청의 문물과 서양 문물을 배우려 애썼다. 그러나 소현세자는 귀국 후 왕이 되지 못한 채 죽었다. 청에 무릎을 꿇었던 인조가 청의 문물을 배우고 익혀 돌아온 소현세자를 용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억지로라도 눈 좀 붙이세요."
"그래야죠."

사무총장님의 권유로 다시 침대에 누웠다.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멀고도 험했던 심양 오는 과정이 슬라이드 쇼가 되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7월 31일부터 8월 4일까지 다녀온 만주 고구려 유적 답사입니다. 다음에는 고구려 첫 도읍지 환인(졸본)의 오녀산성 답사기를 올립니다.



태그:#만주, #심양, #중국, #고구려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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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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