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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 진찰받는 데 19차례나 수속을 밟아야 하나? 병원에서 진료받기 어려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신화통신>

지난달 8일 푸젠성 푸저우시 제4병원. 가족과 함께 정신분열증 진찰을 받으러 온 우씨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한 유명한 정신과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처방전과 약을 타기 위해 무려 19차례나 수속을 밟아야만 했던 것.

명의를 찾아 정신분열증을 치료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고 달려왔던 우씨 가족. 그들은 병원의 복잡한 진찰 및 수속과정 때문에 종일 19장의 수속서류와 처방전을 들고 기진맥진해야 했다.

간신히 모든 진찰 과정을 다 마치고 4종의 약을 받은 우씨가 내야 했던 진료비와 약값은 1000여위안(한화 약 12만원). 하루 동안 '명의'에게 진료 받고 치료제 네 봉투를 받은 대가다.

병원에서 진료받기 어렵고 진료비와 약값이 엄청나게 비싼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이 사건은 지난 12일 관영 <신화통신>에 보도돼 중국 사회를 들끓게 만들었다.

"진료비·약값 비싸서 죽을병 아니면 병원 안 간다"

▲ 작년 12월 중국사회과학원이 발표한 '2007년 중국사회 형세 분석과 예측' 조사에서 의료 문제는 중국인들이 가장 심각하게 여기는 사회 문제로 손꼽혔다.
ⓒ <신화통신>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병원은 중국인들에게 무서운 존재다. 이유는 간단하다. 병이 나면 편안히 병원에 가서 진료 받기도 힘들거니와, 복잡한 진찰과정과 상상을 초월하는 약값이 중국인들을 공포에 몰아넣기 때문이다.

왕양(53·여)씨는 "개혁개방정책 이전에는 직장 단웨이 내에 병원이 있어 손쉽게 진찰을 받고 공비(公費) 의료를 통해 무료나 다름없는 진료비를 냈다"면서 "지금은 병원 진료비와 약값이 너무 비싸 죽을병이 아니면 병원에 가기 겁난다"고 말했다.

중국은 1988년부터 도시와 현 소재지 일부 노동자를 대상으로 서구식 의료보험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9억명에 달하는 농촌인구의 79.1%와 도시인구 4억명의 44.8%는 어떠한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평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회주의'의 구호가 무색한 상황이다.

지난달 후난성과 광둥성에서는 5살의 어린이가 병원들에서 수술을 거부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에이즈에 걸린 모친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에이즈 환자가 된 치치(가명)는 식도폐쇄증으로 급하게 수술을 받아야 했지만 고향인 후난성의 모든 병원에서 수술을 거부당했다.

마카오의 한 자선단체에 의해 광둥성 광저우로 급히 옮겨졌지만, 본래 수술을 하기로 한 광저우아동병원도 '환자를 치료할 만한 장비가 없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수술을 미뤘다.

유력일간지 <남방도시보>가 치치의 사연을 보도하자, 병원은 그때서야 치치의 수술을 시술했다. <남방도시보>는 "에이즈 환자의 경우 진료도 어렵지만 수술은 더욱 어렵다"면서 "의사들이 에이즈 환자를 차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한 병원 진찰실에서 의사가 환자를 검진하고 있다. 중국에서 의사는 관광가이드, 교사, 장의사와 더불어 부수입으로 폭리를 챙기는 4대 직업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 모종혁
10가지 죄악에 걸린 의료계, 극에 달한 환자 불신

중국의 모든 의사들은 다른 나라에서처럼 치열한 입시를 거쳐 대학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뒤 병원에서 일한다. 그러나 그들이 일하는 중국 병원의 상황은 히포크라테스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 3월 1일 중국소비자협회가 발표한 중국 병원의 실상은 충격적이다. 2006년 9월부터 11월까지 전국 11성시 178개 병원과 761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현장 조사한 보고서는 "중국 의료서비스 업계가 10가지 죄악에 걸려 있다"고 폭로했다.

조사 병원들의 감기 치료비를 비교한 결과, 최저 2위안(약 240원)에서 최고 672위안(약 8만원)까지 무려 300배나 차이 났다. 병원에서 판매하는 약은 동일한 제품인데도 약국보다 3.5배나 비싸기도 했다.

보고서는 "일부 의사들은 기본적인 체약측정이나 검진을 하지 않은 채 확진하거나 무조건 약을 처방한다"면서 ▲불투명한 진찰 안내와 ▲도를 넘는 과잉치료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진찰 과정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중국 환자들이 병원과 의사에게 느끼는 극에 달한 불신은 심각한 수준이다. 5월 28일 <중국청년보>가 환자 2496명을 대상으로 의사에 대한 신뢰 여부를 묻는 조사에서 53.8%가 '반신반의한다'고 답했고, 20%는 '신뢰하지 않으나 진찰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답변했다. 응답자의 70% 이상이 의사를 불신하고 있는 것이다.

의사 2848명을 설문조사했을 때도 응답자의 3.8%만이 '완전히 신뢰받고 있다'고 답했고 49.5%는 '(환자가) 의사를 불신하나 표현은 않고 있다', 46.6%는 '불신하며 표현도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의사들 스스로 환자의 불신을 체감하고 있다는 말이다.

▲ 환자의 1.6%는 의사-환자 관계가 '아주 원만하다', 16.9%는 '비교적 원만하다'고 답했고 51.2%는 '어느 정도 긴장돼 있다', 30.3%는 '아주 긴장된 관계'라고 답했다. 의사는 아무도 환자와 맺고 있는 관계가 '아주 원만하다'고 답하지 않았고 '비교적 원만'은 2.9%, '어느 정도 긴장’은 40.1%, '아주 긴장'은 무려 57%에 달했다.
ⓒ <중국청년보>
끊임없이 터지는 의료계 부패와 모럴 해저드

중국인들이 병원과 의사를 불신하는 것은 끊임없이 터지는 의료계의 부패와 모럴 해저드 때문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 병원들은 지방정부에서 지원하는 보조금으로 운영됐다. 의사들은 월급이 많지는 않았지만 안정된 직장과 높은 복리수준을 보장받았다. 1990년대부터 불어 닥친 병원의 기업화 바람은 상황을 돌변하게 만들었다.

중국 정부는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립병원에 운영 자립도를 높일 것을 요구했고, 병원들도 돈을 벌고자 의사들에게 실적 향상을 채찍질했다. 이제 중국 병원과 의사에게 환자는 치료해야 하는 병자가 아니라 돈을 뽑아내는 수익창출원(Cash Cow)일 뿐이다.

지금 중국에서 병원이 제약회사들로부터 사례비를 받거나 의사들이 환자에게 돈 봉투를 받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다. 병원은 환자가 돈이 있어 보일 경우 고액의 진료비를 청구하거나 비싼 약을 처방하고 다시 제약회사들로부터 정기적으로 수수료를 챙긴다. 의사들이 진료와 수술을 미끼로 돈 봉투를 은연중 요구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지난 8일 <베이징천바오>가 보도한 베이징시 10개 병원 간부들의 수뢰 혐의는 이를 잘 보여준다. 수뢰 혐의자들은 한 의료제품회사에서 호흡기, 마취기, 수술용 침대 등을 납품받는 대가로 150만위안(약 1억8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았다. 이들 가운데는 병원 관계자뿐 아니라 병원 비리를 감독할 베이징시 다싱구 위생국 부국장도 포함돼 있다.

지난달에는 지린성 18개 대형병원들이 가짜 혈액을 사용하다 적발됐다. 3월부터 집중단속을 벌인 지린성 식품약품감독관리국은 해당 병원들이 인체 알부민의 단백질 농도가 0%인 가짜 혈액 2042병을 발견했다.

혈청을 모방한 용해제를 섞은 가짜 혈액의 일부는 이미 응급 환자를 대상으로 사용됐다. 이번에 적발된 병원들은 비교적 규모가 크고 환자들에게 신뢰받던 곳들이어서 그 충격이 더욱 컸다.

▲ 제약회사와 병원, 의사의 부패사슬을 비판한 풍자만화. 의료계의 부패와 모럴 해저드에 피해를 보는 것은 오직 환자다.
ⓒ <신화통신>
경제발전에도 의료혜택 못 누리는 중국 인민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부동산값·교육비와 더불어 비싼 의료비에 대한 중국인들의 불만이 팽배하자 중국 정부도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지난 3월 가오창 중국 위생부 부장은 '위생사업발전 11·5 규획강요'를 통과시키면서 "낙후한 의료분야 개선을 위해 대외개방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지난달부터 이달 초까지 '도시와 진 주민의 기본의료보험' 시범 실시 여부와 대상 지역에 대한 공청회를 실시하기도 했다. 외국자본의 진출을 통해 의료서비스 개선과 의료 인력의 자질향상을 꾀하고, 도농 구분 없는 전면적인 의료보험체제 구축에 나선 것.

그러나 갈수록 커지는 소득불균형과 중국 정부의 적은 의료예산 지출은 문제 해결을 요원케 하고 있다.

위생부 부부장을 역임한 인다쿠이 중국의사협회 회장은 "1998년 전국 의료서비스 조사 결과 농민의 87.4%가 의료비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고 치료받아야 할 환자의 37%는 치료받지 못했으며 입원해야 하는 환자의 65%는 입원하지 못했다"면서 "소득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이 의료서비스의 불공평마저 낳고 있다"고 비판했다.

작년 9월 <중국청년보>는 "2005년 정부가 투입한 의료비 중 80%가 850만 당정 간부를 위해 사용됐다"며 "전국 당정기관 200만명의 각급 간부가 장기 병가를 사용하면서 500억위안(약 6조200억원)의 국고가 지출됐다"고 보도했다.

<중국청년보>는 "2000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조사한 의료예산 조달 및 분배 형평성에서 191개 회원국 가운데 중국은 188위였다"면서 "중국은 세계인구의 22%를 차지하지만 의료예산 점유율은 2%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경제 발전 속에서도 의료혜택을 못 누리는 절대 다수의 인민에게 관심을 기울일 것을 촉구했다.

▲ 처방전을 들고 약을 타기 위해 늘어선 환자들. 진료비나 약값이 엄청나게 비싼 현실 때문에 중국인들은 병원에 가는 것을 겁낸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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