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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 AP=연합뉴스

블레어가 총리에서 물러난 지 며칠이 지났지만, 3일 채널4에서 방영된 '특별한' 다큐멘터리 <토니 블레어의 마지막 날들(The Last Days of Tony Blair)>은 블레어에 대한 기억을 다시금 생생하게 불러들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The State We're in)>이라는 책을 써서 이해당사자주의(stakeholderism)를 주창해 초기 신노동당(New Labour)과 블레어의 정치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되는 윌 휴턴(Will Hutton) 전 <가디언> 편집장이 블레어 전 총리와 집권 마지막 100일을 동행하면서 '블레어 10년'을 짚어본 다큐멘터리였다.

총리의 정치사상에 영향을 끼친 언론인과 총리의 허심탄회한 만남이란 것 자체가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또한 그 만남의 성격에 맞게 보건, 교육, 외교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블레어 10년' 집권 후 정치사상에 대해 비교적 솔직한 대화가 오간 것도 다른 다큐멘터리나 뉴스에서 볼 수 없었던 특별함이었다. 윌 휴턴도 세간의 비판을 바탕으로 가감 없이 질문했고 블레어도 그 비판에 대해 공격적인 반론을 펼쳤다.

블레어의 영국에서 보낸 4년

2003년 내가 처음 영국에 왔을 때도 블레어가 총리였으니, 난 블레어 집권 후반기의 대부분을 영국에서 보낸 셈이다.

한국에는 '블레어'하면 무슨 노동당의 배신자쯤으로 가볍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오기 전까진 어설프게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직접 블레어의 영국에서 몇 년을 보낸 후, 지금 난 블레어가 정치에 대한 내 사고 자체를 뒤집어놓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블레어의 정치적 방향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말이다.

단연코 말하건대 새로운 사회적 과제들에 맞서기 위한 의제를 정치사상을 바탕으로 설정하고 그것을 정책으로 만들어, 전체 정부가 체계적 전략에 따라 각 부분마다 일관성 있는 정책적 실행을 통해 제시된 목표를 달성해가는 이들의 정치력은 예전에 한국에서는 전혀 목격할 수 없었던 새로운 수준의 것이었다.

특히 블레어의 신노동당 정부는 대처 때 구렁텅이에 빠져 있던 국가무상의료서비스(NHS)와 관련, 유럽 평균 이하였던 보건 예산을 유럽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려 현재 모든 지역 의원(GP)에서 이틀 안에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등 NHS 최대 문제로 꼽히던 대기 시간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한 가지 덧붙이면, 한국에서는 NHS가 '아파서 죽어가는데도 수술 받으려면 몇 개월 기다려야 하는 체계'로 잘못 알려져 있으나, 이는 생명에 지장이 없고 기간이 지나도 의료적으로 악화되지 않는 경우에 한정된 이야기다.

생명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상황이나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할 경우 언제나 우선적으로 즉각적인 조치가 이뤄진다. 필요에 따라 우선순위가 결정되는 NHS 같은 시스템과 돈에 따라 우선순위가 달라지는 시스템을 비교하려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또한 '우리 세대에서 아동 빈곤을 없애버리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설정한 블레어 정부는, 아직 그 목표에는 못 미쳤지만 그 전략에 따라 여러 해 동안 정책적으로 노력한 결과 60만명의 아동을 빈곤에서 탈출시켰다.

고질적이던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잡센터플러스'라는 고용 전략의 핵심 기관을 지역마다 배치하고 신고용협약(New Deal)이라는, 장기적이고 규모가 큰 대상집단별 고용 프로젝트를 통해 실업률을 떨어뜨리고 그 후에도 낮게 유지했다.

이러한 강력한 노동시장정책에 바탕을 두고 처음으로 전 성인고용자를 대상으로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노동당 정부는 현재 시간당 최저임금을 1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으로 유지하면서도 실업률을 높이지 않았다.

▲ 지난달 10일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6월 27일 총리직을 사임하겠다는 발표를 한 후 세지필드 선거구의 트림든 노동당 클럽을 떠나면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EPA·연합뉴스
정치에 대한 사고 자체를 변화시킨 블레어의 정치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도 영국 내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였던 심장질환에 의한 사망률을 신노동당 집권 기간 동안 3분의 1 정도(35%) 낮춘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는 심장질환 관련 지출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기반시설과 서비스 확대를 비롯해 직접적으로 사망률을 떨어뜨릴 수 있는 다양한 보건의료 정책을 꾸준히 편 결과로, 노동당 정부가 이전 정부에서는 죽을 수 있었던 수많은 사람을 살린 셈이다.

이 모든 주요 전략과 정책을 블레어를 필두로 한 신노동당 세력이 주도했음은 물론이다. 경제성장과 사회정의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고자 한 이들은 국민을 복지 급여에 의존하게 하기보다는 고용을 보장하고 최저임금제를 통해 노동급여를 보장하는 노동연계 복지 전략을 채택했다. 아울러 결과적 평등보다는 모든 이를 위한 기회(opportunity for all)를 주창하면서 교육정책에 최우선권을 부여했다.

이러한 이들의 핵심 전략은 정책으로 실행됐고 더 나은 의료, 더 나은 고용, 더 나은 교육 등으로 국민의 일상을 변화시켰다.

결국 영국은 블레어의 10년을 거치며 더 나은 곳이 됐다. 블레어를 끊임없이 비판했던 <옵저버>(<가디언> 일요판)지도 전면 사설을 통해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가라면 서러운 신노동당 비판자였던 <가디언> 칼럼니스트 폴리 토인비(Polly Toynbee)도 블레어를 다룬 특별판 칼럼에서 같은 말을 남겼다.

총리로서 임한 마지막 대정부 질문(Prime Minister Question Time, 매주 수요일 1시간 동안 총리와 국회위원들 간에 진행되는 문답 시간)이 끝나고 블레어가 퇴장할 때, 기립박수를 보낸 노동당 의원들을 따라 보수당 의원들도 모두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수백 년의 영국 의회 역사에서 전례가 없었던 이 장면은 '통 크게 일어나 함께 하자'고 손짓한 데이빗 캐머런 보수당수 덕분이었지만 2차대전 이후 가장 평온하고 안정적이고 발전적이었던 10년을 이끌었던 총리에 대한 의회의 경의 표시이기도 했다.

시장주의 맹신과 이라크 침공의 과오

물론 블레어 정부의 전략에는 비판할 거리가 많이 있다. 블레어는 공공정책과 서비스를 확대하는 길을 선택함으로써, 국가 축소에 열을 올렸던 대처와 분명한 선을 그었다. 하지만 시장의 원리를 공공 부문에 공격적으로 도입하고 공공영역의 시장화를 추구했다.

이것이 부분적으로 공공서비스의 효율화로 이어졌을지는 모르지만, 시장 원리에 대한 맹신은 공공서비스 예산의 전폭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비효율성과 낭비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는 대표적으로 영국의 자부심인 NHS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의료진을 대상으로 성과급제를 도입했지만, 최근 조사에 따르면 보수가 오른 데 비해 노동시간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민간자본계획(PFI)에 따라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병원을 사상 최대 규모로 증설했지만, 민간자본에 연 예산의 20~30%를 수십 년 동안 환급함으로써 결국 공공자본 비용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지출하게 만들었고 이 같은 예산 부담은 서비스 질 저하의 원인이 되고 있다.

▲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기자회견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는 부시 미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 총리.
ⓒ Whitehouse
뭐니뭐니 해도 블레어를 수렁에 빠뜨린 것은 이라크였다. 아무리 블레어가 빈곤률과 실업률을 떨어뜨려도, 나라를 잘못 이끈 지도자란 오명은 어딜 가나 끝까지 따라다녔다. 사회 자체가 붕괴 위기로 치닫고 있는 이라크인의 고통은 영국 내에서 블레어가 어떤 업적을 남겼든 간에 씻길 리 없다.

윌 휴턴이 이 대목을 묻자 블레어는 이렇게 말한다. 세계화된 지금 어떤 국가가 정당하지 못한 일을 벌일 때 다른 문명국가들은 이에 개입할 의무가 있다고. 후세인이 계속 남아있었으면 현재 더 나은 상황이었겠냐고 블레어는 반문한다.

'개입'에 대한 이 같은 블레어의 신념은 집권 초기 '윤리(ethical) 외교'를 주창할 때부터 드러났다. 또한 이전에 보스니아·코소보·동티모르·시에라리온 등에 개입한 것이 성공적이었다는 자평은 블레어 자신을 과도한 개입주의로 몰아갈 법도 했다. 특히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하는 무장단체를 몰아냈던 시에라리온에서 블레어는 아직도 영웅이다.

흔히 블레어를 '부시의 푸들'이라고들 하지만 블레어에겐 나름의 신념이 있었던 셈이다(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행정부 인사들은 블레어가 의회 연설 등을 통해 오히려 부시보다 더 이라크전의 필요성을 미국에서 설득력 있게 설파한 것에 고마워하는 경향도 있다).

물론 이같은 신념에는 영국의 제국주의적 시각이 깔려있다. 외국의 무력 개입이 긍정적 효과를 낳기보다는 뿌리깊은 또 다른 갈등과 혼란의 씨앗이 됐다는 것은 수많은 역사적 사례들이 입증하고 있다.

한 나라의 복잡한 상황을 외국에서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할 뿐더러, 기본적으로 사람을 죽이기 위해 훈련된 군대의 무력을 활용해 안정된 정치상황을 이끌 수 있다는 믿음 자체가 모순이다.

중동특사 블레어의 모순, 그러나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이유

블레어가 이제 중동특사로 활동한다고 한다. 최근 중동을 피로 물들게 한 장본인이 평화협상의 주체가 되는 것은 아이러니다.

또한 민주적으로 선출된 하마스를 서구 국가들이 배제하고, 그 때문에 생긴 수많은 갈등 끝에 이제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파타운동의 수반 아바스만을 상대로 이스라엘과 두 개의 국가를 성립시키기 위한 협상을 벌인다는 것도 상황을 매우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영국에서 아무리 블레어를 비판해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블레어의 업적과, 피로 얼룩진 북아일랜드의 역사를 딛고 신구교도 공동정부 구성과 평화 정착을 이뤄낸 블레어의 정치력은 블레어가 아예 쓸모없는 인물이라고 말하기 어렵게 만든다.

마지막 대정부 질문 시간에 북아일랜드 공동 정부의 첫 총리가 블레어의 중동사절 활동에 희망을 품는다고 직접 이야기한 장면도 그러했다. 그저 개인적으로 블레어가 너무나도 오랜 기간 동안 고통의 세월을 보내온 그곳에 평화의 물꼬를 틀 수 있기를, 그래서 이라크전의 과오를 어느 정도 씻을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덧붙이는 글 | 김보영 기자는 영국 요크대학 박사 과정생이며 사회정책과 실천에서 정치사상의 기능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태그:#블레어, #영국, #영국정치, #신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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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학교 지역및복지행정학과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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