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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왼쪽부터 소개 시켜드리지요. 뚜렷한 이목구비의 국제유기농센터장 우영균 교수. 그 옆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쓰신 분이 대학 생협 이사장이신 황도근 교수, 오른쪽은 유기농 센터 국장이신 최덕천 교수입니다."

<밥상 평화> 기획 취재를 위해 상지대를 방문했다가 우연치 않게 마련된 자리.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지만 사실 처음부터 '3자대담'을 생각한 건 아니었다. 유기농 김치 생산 공장, 생협 물류센터, 친환경 농가 그리고 김성훈 총장과의 대담까지 쉴 새 없이 이어졌지만, 반나절 쫓아다녔다고 유기농의 '유'자도 모르던 내가 '유기농 전문가'가 될 수는 없는 법.

그래도 '우문에 현답'이라 했던가. 취재하면서 들었던 생산자들의 고민을 전하고 유기농업에 대한 질문을 하자 교수님들은 쉽게 푼 언어로 차근차근 설명해 나갔다. 앞의 대답이 좀 어려웠다 싶으면 금세 부연설명이 이어졌다.

유기농 식단 운영부터 한국 유기농업의 미래까지, 쉴 새 없이 이어지던 그들의 열띤 대화 현장을 옮긴다.

"생협운동 태생지 원주, 상지대가 맥을 잇는다"

▲ 상지대 학생식당의 급식 모습.
ⓒ 함박은영
▲ 황도근 상지대생협 이사장.
ⓒ 오마이뉴스 김도균
- 상지대 식당을 운영하는 대학생협은 어떤 곳인가?
황도근 상지대생협 이사장(이하 황도근) "원주에는 생협이 많다. 최근엔 노인 생협도 생겼다. 그러다 보니 대학생협만 있으면 모양이 맞겠다 싶더라. 한국은 모든 게 서울 중심이지 않나? 자본도 서울로 가고, 사람도 쫓아가고. 원주에 사는 사람들이 자존심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지역 공동체'였다. 그러려면 다양한 생협이 있어야 한다. 특히 대학은 사람을 키워내는 곳이니까 인력을 기르는 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그래서 시작했다."

우영균 국제친환경 유기농센터장(이하 우영균) "생협은 협동조합의 하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른 점은 농협·수협·축협 등은 생산자 중심이고 생협은 소비자의 관점에서 자신의 생활과 관련된 것을 유통하는 목적에서 만들어졌다는 거다. 일반 기업은 고객을 이윤 추구 대상으로 보지만 협동조합은 이용할 사람들이 직접 자본금을 출자해서 기업체를 설립하고 스스로 이용하는 것이다. 이윤도 농협은 농민에게, 생협은 소비자에게 환원한다. 비영리 조직의 성격을 지닌 사업체라고 할 수 있다."

- 생협이 만들어진 지 2년 정도 됐다. 아직은 기반을 다지는 시기인데.
황도근 "전국에 대학생협이 한 20개쯤 된다. 최근에는 국립대에도 많이 생기고 있다. 상지대 생협은 2년 밖에 안 됐는데 학교 복지매장들은 거의 인수가 끝났다. 식당 운영도 어느 정도 틀이 잡혔고.

상지대는 주변의 생협 도움을 많이 받는다. 특히 원주는 생협운동의 정신적 태생지라 할 수 있다. 공동체운동이 처음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상지대 생협은 그 정신을 지키려는 게 강하다. 뭘 판매할 때도 이윤보다는 학생들에게 진짜 맛있는 걸 제공하려고 한다. 이윤 추구에만 매달리지 않다 보니 지금까지는 잘 운영되어 온 것 같다."

- 식당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은?
황도근 "상지대 생협의 가장 큰 브랜드는 '친환경 식단'이다. FTA로 농업이 더 어려워질 텐데 무역 관계만으론 해결되지 않을 것 같고 지역 단체급식이 지역 농산물을 쓴다면 지역이 살 것 같다. 그 모델을 여기서 해보고 싶다.

지역 농산물을 쓴다지만 아직 상지대로 100% 친환경을 쓰지는 못한다. 단가가 문젠데, 가격 체계만 좀 더 정비되면 될 것 같다. 구성원들도 '돈을 더 내도 무조건 먹겠다'는 마음이 있으면 좋고. 다른 어려움은 없다. 단지 친환경 급식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는 거. 상지대는 준비도 많이 했고 유기농 센터도 있는데 쉽지 않다."

"좋은 밥 먹이고 싶은 부모 마음... 그런데 급식은?"

▲ 우영균 국제친환경 유기농센터장.
ⓒ 오마이뉴스 김도균
- 단가를 낮추는 방법은 없나?
우영균 "친환경 농산물은 일반 관행농산물에 비해 1.5배에서 2~3배 비싸다. 기본적으로 생산가격이 비싸고 유통단계에서 유통비가 많이 들어서 더 비싸진다. 친환경이 소비 전반에서 벽에 부딪혀 있는 것도 문제다.

우선은 가격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어떡하면 소비자가 쉽게 접근할 것이냐가 과젠데 하나의 방안이 '직거래'다. 중간 유통업자 없이 생산자 단체와 생협 같은 소비자 단체가 결부돼 중간 유통 마진을 없앤 직거래로 단가를 낮출 수 있다. 상지대에 직거래로 들어오는 물품은 시중의 일반 농산물 가격과 큰 차이가 없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조직화가 중요하다."

- 어떻게 조직할 수 있나?
우영균 "일단 생산자는 특정 품목을 생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소량 다품종을 원하는데 생산자들은 한두 품목에만 집중하니까 안 맞는다. 공급의 안정성을 위해서는 생산자 조직이 커질 필요가 있다. 생협 안으로 쌀·야채·축산물까지 생산하는 분들이 들어와서 다양한 품목을 대량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친환경 분야는 아직 조직화가 덜 됐다. 소비자단체 입장에서는 거래상 한군데와 얘기해 해결하면 좋은데 이 생산자 저 생산자 직접 모으려니까 힘들다. 대학 생협도 규모가 아직 크지 않기 때문에 구매 분야에 대한 마케팅 능력이 높지 않다. 이 과정이 귀찮고 어려우니까 대기업 유통업체에 의존하기도 한다. 그러면 직거래가 안 되고 가격이 오른다. 그래서 친환경 생산자들의 광역적인 조직화가 중요하다. 농민들도 유통이나 판매에 직거래를 위한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그걸 생산자나 소비자에게만 맡길 순 없을 것 같고 센터가 중계자 역할을 할 수 없을까 고민 중이다."

황도근 "소비자 입장에서 하나의 '운동' 차원의 개념이 필요하리라 본다. 어느 부모가 자기 자녀에게 좋은 식재료 먹이지 않고 싶겠나. 그런데 우리나라 단체 급식은 대부분 그렇지 않은 실정이다. 현실적으로 집에서 먹는 밥의 단가는 그렇게 낮지 않다. 그런데 유독 단체 급식만 낮은 단가를 고집한다. 상지대도 1600원인데 이 가격으로는 운영이 어렵다.

이제 한국도 경제규모도 세계 10대 안에 들어가 있지 않나. 집에서만 잘 먹을 게 아니다. 오히려 학생·직장인들은 밖에서 먹을 수밖에 없다. 단체 급식의 질을 향상 시킬 필요가 있다. 저소득층에 해당하는 분에게는 지원 단가를 높여서 지역 농산물을 연계해 먹으면 해결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구조만이 아니라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 상지대는 원주의 생협들과 함께 유기농 지역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함박은영
"유기농, 지역과 함께 해야 살아남는다"

▲ 최덕천 국제친환경 유기농센터 국장.
ⓒ 오마이뉴스 김도균
- 유기농센터는 어떤 일을 하나?
최덕천 국제친환경 유기농센터 국장(이하 최덕천) "지역의 친환경 농업을 종합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예를 들면 홍천군 마을 4곳을 하나로 묶어 '유기농 생태마을'을 만드는 사업을 3년째 후원 중이다. 교육이나 품질 인증, 유기농업을 순환농업으로 하는 '클러스터 조성사업'도 하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값싸고 품질 좋은 유기농산물을 제때 공급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농민들은 안정적으로 판매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산자, 소비자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야 하는데 생산자들에게 유통의 안전성, 판매의 안정성, 판매경로의 다양성 같은 요구를 많이 받는다.

생협의 원칙 중 하나가 '지역에 기반을 둬야 한다'이다. 센터에서 교육 받고 인증한 38명의 생산자들을 영농조합으로 조직, 직거래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면 유통 경로가 단순해지고 마진이 좁아지면서 단가가 일반 농산물과 유사해진다. 원만히 되려면 수요, 공급량이 안정되고 조직화되어야 한다. 공백 없이 유지 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앞으로의 과제다."

우영균 "친환경 농업은 단일품종 농업과 축산업이 연계된 순환농법이 중요하다. 한국의 친환경은 오리·우렁이 농법 등 특정 농자재에만 의존하는 형태로 발전해 왔다. 불가피한 부분도 있고 기여도 컸지만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원을 재순환할 수 있는 농법을 개발해야 한다.

상지대 농학계열에는 교수가 30명 있는데 그동안은 현장 중심보다는 학술 중심의 연구가 많았다.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 같은 것에 대해 어두울 수 있다. 센터가 발족한 것은 실제로 농민들을 돕기 위해선데 학문 따로, 현실 따로가 되서는 곤란하다.

친환경농업 분야에도 현장 전문가들이 많다. 그중 20여분을 센터의 초빙 교수로 모시고 함께 교육이나 기술개발 사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농업 전반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들과 업무를 나눠서 강원도 이외 지역의 지자체 10여곳과 교류 협약을 맺었다. '산학관' 협력체제다."

"유기농 넘어 로컬 푸드 정신으로"

- 앞으로 계획은?
황도근 "향후 10년 전 세계가 글로벌화되면, 친환경·생태·생명운동이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올 거다. 이념적 운동은 줄고 실생활에 대한 운동은 커질 것이다. 그래서 대학 생협을 끌어나갈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이윤보다 이미지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 가장 대표적인 먹을거리만이라도 모범이 되게 하는 것이다.

사실 학교가 식당에 투자를 하니 이정도 할 수 있는 거지, 다른 대학은 쉽지가 않다. 상지대가 모범적으로 보여서 이미지가 개선된다면 모델이 될 수 있다. 지금 원주도 조금씩 도시가 커지고 있는데 그냥 커지면 난개발이 될 수 있다. 친환경 대학 같은 기반이 있으면 도시가 클 때도 '생태 도시'로 커나갈 수 있다."

우영균 "최근 들어 농업 발전을 위해서는 생산자 교육도 중요하지만 소비자 교육이 절실하다는 걸 느낀다. 소비자들에게 '친환경 농산물이 필요하구나, 좀 비싸도 지역 생산 농산물을 먹어 건강도 지켜야겠구나, 그래야 지역 경제, 넓게는 한국 경제를 지킬 수 있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야 한다. 생산자 교육 이상으로 소비자 교육이 중요한데 그동안 별로 안 되어 왔다. 농업을 지키기 위한 부담을 생산자에게만 떠넘겨 온 거다. 그래선 안 된다.

더 나아가서 '로컬 푸드 시스템'이라는, 지역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고 경제 자체가 지역에서 순환될 수 있게 하는 진보된 개념의 운동을 위한 중계자 역할을 강화해야 하지 않을까. 단순히 '친환경 농산물이 좋다'는 것만으로는 농업 발전이 어렵다. 친환경 농산물의 기본적인 의미는 '농약을 치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유기적으로 생산된 것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게 가장 좋다는 환경에 대한 고려가 깔려 있다."

최덕천 "센터가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자와 생협이 직거래 할 수 있게 중계했는데 시스템은 어느 정도 됐다. 활성화가 중요한데, 생산자와 소비자가 같이 연구해야 한다. 생산 현장은 고령화, 공동화되어 있다. 농민들이 상지대 생협과 주도적인 관계를 맺기 어렵다. 아직도 여러 부분에서 정부 의존적이다. WTO 체제에서는 중앙 정부 지원이 지역 공동체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다. 소비자 교육은 물론 생산자들이 지역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지역의 인재를 발굴하고 그들을 지원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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