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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교 신도시 중소형 아파트 당첨자가 발표된 지난해 5월 경기도 분당에 있는 주택공사 견본주택을 보러온 당첨자들이 당첨확인 절차를 거치기 위해 줄을 서있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정부의 분당급 신도시 선정 발표가 임박하면서 신도시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는 경기도 용인과 화성·광주 일대의 땅값이 들썩이는 등 잠잠하던 부동산 시장이 요동칠 기미를 보이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하향 안정 국면에 들어선 마당에 느닷없이 불거진 신도시 건설 재료가 투기심리에 불을 붙이고 있는 셈이다.

도대체 정부는 무슨 생각으로 신도시 건설을 강행하려 하는 걸까?

부동산 안정되는 마당에 주택공급 확대라니

정부의 이번 신도시 개발 계획은 11·15부동산 대책에 근거한 것이라 한다. 익히 알다시피 11·15부동산 대책의 핵심은 '주택공급 확대'와 '주택담보대출 관리'였다. 그 중에서도 '주택공급 확대'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투기적 가수요가 시장에 만연한 상황에서 공급확대를 골자로 하는 11·15부동산 대책이 별 효과도 없었지만, 백보를 양보하더라도 11·15부동산 대책이 나온 배경에는 '단군 이래 최고 수준'이라는 수도권 집값 급등 현상이 있었다. 즉 유효한 처방은 아니었지만 이해할 구석은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부동산 시장은 '보유세 현실화'와 '주택담보대출 관리'로 인해 하향 안정화의 초기 단계에 진입한 상태이다. 쉽게 말해 지금은 신도시 추가 건설로 상징되는 공급확대정책이 전혀 불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분당급 신도시 건설을 관철시킬 태세다.

부동산 시장이 안정된 마당에 신도시 하나 건설한다는 발표가 뭐 그리 큰 파장을 일으키겠느냐고 의아해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2002년 판교신도시와 지난해 가을 검단신도시 건설 발표가 투기심리를 자극해 부동산 시장을 요동치게 만든 것을 기억한다면 그런 생각이 단견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부동산의 불안요소는 실수요 아닌 투기적 가수요

▲ 신도시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는 경기도 용인과 화성·광주 일대의 땅값이 들썩이는 등 잠잠하던 부동산 시장이 요동칠 기미를 보이고 있다(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남소연
정부가 현 시점에 분당급 신도시 건설을 강행하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 여전히 수도권 부동산 시장이 불안하다고 보고 지속적으로 공급을 확대해 수도권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려는 목적에서다.

정부의 진단대로 수도권 부동산 시장에 불안요소가 상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의 진단이 옳다 해도 그 불안요소는 실수요가 아니라 단연 투기적 가수요에서 기인한다.

주지하다시피 국민의 정부 말기부터 시작해 참여정부 내내 계속된 부동산 가격 폭등의 원흉은 투기적 가수요의 존재였다. 이는 주택보급율은 106%인데 반해 자가보급율은 60%수준이라는 점, 이른바 '버블세븐' 지역의 주택담보대출 금액과 비중이 타 지역을 크게 압도한다는 점, 강남벨트 등의 주택 소유 편중도가 극심하다는 점, 버블세븐 지역의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전국 최저 수준이라는 점 등이 명확히 증거한다.

한편 부동산 가격 앙등의 원인을 투기적 가수요로 볼 것인지, 아니면 실수요로 볼 것인지에 따라 정부의 처방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즉, 부동산 가격 상승의 원인을 투기적 가수요로 볼 경우 보유세 및 양도세 현실화 등의 세제개혁 등을 통하여 투기적 가수요를 제거하는 정책이 우선적으로 채택되어야 할 것이고, 부동산 가격 상승의 원인을 실수요로 볼 경우 택지와 주택의 공급을 늘리는 정책이 채택되어야 한다.

과거의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해가 쉽다.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에 전국을 강타했던 부동산 투기 및 부동산 가격 폭등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지만 52%에 수준에 이르는 낮은 주택 보급률이 큰 원인이었다. 이처럼 실수요에 기인해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경우에는 응당 택지 및 주택을 많이 공급해야 한다.

당시 정부는 토지공개념 3법의 도입과 함께 분당·일산·산본 등의 1기 신도시 건설을 추진했는데 이는 적절한 정책집행이었던 셈이다. 반면 국민의 정부 말기부터 시작해 참여정부 내내 지속된 부동산 가격 앙등은 위에서 실증적 증거를 통해 살펴본 것처럼 실수요가 아닌 투기적 가수요가 주된 원인이었다.

부동산 시장에 투기적 가수요가 창궐하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 국민의 정부가 인위적 경기부양을 위해 각종 투기억제책을 철폐하여 사실상 부동산 투기를 용인한 점과 낮은 금리로 인해 시중에 유동성이 풍부해진 점을 들 수 있다.

오진과 잘못된 처방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투기적 가수요 억제'와 '공급확대' 양자를 아우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투기적 가수요 억제에 방점을 찍었던 것은 참여정부가 바로 그런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참여정부가 조중동 등의 수구언론과 한나라당 심지어 여당 내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한 투기적 가수요 억제책(예컨대 보유세 및 양도세 현실화, 각종 개발이익환수 장치의 강화 등)이 서서히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부동산 가격 앙등의 주원인을 투기적 가수요에서 찾은 참여정부의 인식이 어느 정도 정확했던 셈이다.

물론 참여정부가 투기적 가수요 억제책만 선택했던 건 아니다. 참여정부는 2기 및 3기 신도시로 상징되는 공급확대정책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이는 조중동 등의 수구언론과 시장근본주의 성향의 경제학자들 그리고 관료들의 집요한 요구를 참여정부가 뿌리치지 못한 탓이었는데, 이처럼 참여정부가 투기적 가수요 억제와 공급확대라는 서로 상반되는 신호를 시장참여자들에게 준 것은 정책적 오류라고 할 만하다.

시장에 투기적 가수요가 만연한 상황에서 신도시 건설 등을 통해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정책은 오히려 투기심리를 자극해 부동산 시장을 불안하게 만들 뿐이다. 이론상 무한대로 팽창이 가능한 투기적 가수요를 공급확대를 통해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에서 살핀 바 있는 판교 신도시 및 검단 신도시 개발 발표 그리고 강남 재건축 아파트 규제 완화 등의 사례는 어설픈 공급확대정책이 얼마나 부동산 시장의 불안을 초래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정이 이와 같은데도 정부는 여전히 엉뚱한 진단에 기초하여 공급확대에 연연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공급확대를 통해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정부의 모습에서 병을 오진한 나머지 잘못된 처방을 하는 의사를 연상시키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이대로 나가면 공급 과잉... 정책 수정하는 용기 보여라

▲ 인천 서구 검단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앞에서 한 시민이 시세판을 보고 있다.
ⓒ 연합뉴스 강종구
둘째, 정부정책의 신뢰성 담보를 위해서다.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정부 일각에서도 신도시 건설 계획을 백지화시키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이 대두되었지만 정책의 신뢰성 담보를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정부가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정부 정책의 신뢰성은 잘못된 정책을 고집스럽게 유지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잘못된 정책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이를 수정할 용기를 국민들에게 보임으로써 얻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신도시 추가 건설 계획이 염려되는 것은 공급과잉으로 인한 집값 폭락의 가능성 때문이다.

머지않아 2기 신도시(김포·판교·파주·양주·수원 이의·화성 동탄 확대)등으로 공급물량 34만가구가 지속적으로 시장에 나오게 된다. 또한 검단 등의 3기 신도시도 조만간 착공될 것이다. 사정이 이쯤되면 공급부족이 아니라 오히려 공급과잉을 걱정해야 될 판이다.

지금이야 부동산 시장에 투기적 가수요가 남아있는 터라 공급이 부족한 듯 보이지만 얼마 후 투기적 가수요가 사라지고 시장에 실수요만 남게 되는 상황에서는 공급과잉 및 이로 인한 미분양이 속출하기 쉽다.

엄밀한 수요예측 없이 투기적 가수요에 현혹돼 공급확대를 꾀하는 것은 장차 닥칠 지도 모르는 공급과잉 및 이로 인한 부동산 시장 경착륙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정책당국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국토균형 발전과 수도권 과밀화 해소는 포기했나

정부의 신도시 추가 건설 계획은 국토균형 발전 및 수도권 과밀화 해소에도 역행하는 조치이다. 참여정부가 야심하게 내세우는 치적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국토균형발전이다.그런데 바로 그런 참여정부가 국토균형발전을 크게 저해할 수도권 신도시 건설을 추가로 강행하려고 하니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정부의 신도시 추가 건설 계획은 그렇지 않아도 포화상태인 수도권 과밀화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 자명하다. 기실 정부가 추진 중인 2기 및 3기 신도시 건설만으로도 수도권에서 시행 중인 교통총량제와 환경총량제는 심대한 타격을 입은 상태이다.

정부가 지금과 같이 수도권에 신도시를 건설해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려는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국토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화 해소는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이 자명하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현 시점에서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신도시 추가 건설은 잃을 건 많고 얻을 건 없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정부는 신도시 추가 건설을 백지화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통계에 따르면 종부세 납부대상자 중 40% 이상이 3채 이상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3주택 이상 보유자가 2채를 남겨두고 나머지만 처분해도 19만 3천채의 신규 공급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는 판교신도시를 6개 짓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발휘하는 셈이다.

위의 통계가 정책당국자들에게 말하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지금 참여정부가 할 일은 신도시를 추가로 건설하는 것이 아니고 참여정부가 구축해 놓은 부동산 정책 그 중에서도 투기적 가수요 억제책과 주택담보 대출 관리를 동요 없이 지속시켜 나가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태경 기자는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에서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대자보와 뉴스앤조이, 다음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신도시,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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