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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4일 오후 서울 성북구 길음뉴타운 부근 부동산 중개업소에 '문을 여시면 부자됩니다'라는 홍보문구가 붙어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얼마 전까지 계속된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유명해진 인사 가운데 경실련 아파트값 거품빼기운동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헌동씨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김씨는 각종 언론과의 인터뷰 및 정책토론회 참석 등을 통해 참여정부와 여야를 싸잡아 비판하며 분양원가 공개 및 후분양제 도입이 부동산 문제 해결의 첩경임을 설파해 왔다.

김씨가 자주 사용하는 직설적 표현과 유창한 화술 덕분인지 그는 적지 않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쉽게 말해 김헌동씨는 적어도 부동산 분야에서는 매우 돋보이는 시민운동가인 셈이다.

그러나 녹녹치 않은 대중적 인기와 그에 따르기 마련인 상징권력을 지닌 김씨가 한국사회의 고질인 부동산 문제의 해결에 제대로 기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돌이켜 보면 부동산 문제의 원인 및 해법에 대한 김씨의 주장이 객관적으로 평가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최근 김씨가 뷰스앤뉴스와 한 인터뷰(2007. 5. 14)를 보면서 부동산 문제에 대한 김씨의 주장에 대해 엄정한 평가(더 정확히 말하면 비판)을 더 미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씨는 보유세의 함의를 알기나 하나?

김씨는 뷰스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철저히 실패했다고 말했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김씨의 평가를 직접 들어보자!

"그렇다. 철저히 실패했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골자는 세제강화와 공급확대 두 가지다. 임기 5년간 또 앞으로 퇴임 후까지 건설물량만 잔뜩 늘려서 공급강화하고 세제강화까지 했지만 실제 세수가 얼마나 늘었나. 종부세 늘어봐야 1년에 3조원 수준이다. 땅값은 1년에 5백조원이 뛰었고 아파트값은 1년에 1백조 이상 뛰었다. 이렇게 만들어놓고 세금 3조 걷어서 80~90% 국민에게 무슨 도움이 됐나. 종부세 걷어서 집없는 서민들에게 나눠주기라도 할 텐가. 참여정부는 자신들의 정책 실패를 아직도 반성하지 않고 바로잡을 생각조차 못하는 우매하고 무능한 정권이었다. 결국 소위 반쪽짜리 진보개혁세력들의 아집이 총집결한 게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이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던 그건 김씨의 자유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 가운데 가장 소중하다 할 세제개혁-그 중에서도 보유세-를 폄하하는 김씨의 단견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성 싶다.

주지하다시피 부동산-보다 엄밀히 말해 토지-문제는 부동산을 보유 또는 처분할 때 발생하는 불로소득이 가장 큰 원인이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추구하는 수요를 투기적 가수요라고 부르는데 국민의 정부 말부터 시작돼 최근까지 지속된 부동산 가격 폭등은 바로 이 투기적 가수요의 존재가 결정적이었다.

또한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하거나 환수하는 데는 보유세 만한 것이 없음은 경제학계의 상식이다. 기실 양도소득세나 각종 개발이익환수장치들도 보유세가 미약하기 때문에 필요한 장치들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보유세를 투기억제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수단으로 평가절하 하는 듯한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보유세 없이 투기적 가수요를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김씨가 한 번 제시해 보기 바란다.

▲ 서민주거안정을 위한 부동산 정책의 연내입법을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 공동기자회견이 지난해 12월 13일 오전 여의도 국회앞에서 참여연대, YMCA전국연맹, 환경정의, 토지정의시민연대, 주거복지연대 등 33개 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이 필요하다는 김씨의 위험천만한 인식

부동산 거품은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을 통해 제거해야 한다는 김씨의 주장은 듣는 이들의 귀를 의심케 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김씨의 육성을 직접 옮겨보자!

"풍선에 바람을 넣을 때는 바람이 들어가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풍선에서 바람이 빠질 때는 순식간이다. 부동산 거품에 연착륙은 있을 수 없다. 지금 대한민국의 부동산전문가나 언론은 모두 연착륙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의 8,90%는 연착륙보다 경착륙을 원한다. 거품 붕괴로 인한 타격 때문에서라도 연착륙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는데 타격은 이미 거품이 낀 상태에서, 아니 발생할 때부터 서민들의 고통으로 나타난 것이다. 심리적, 경제적 고통이 얼마나 심했고 지금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데 그 고통을 빨리 해소해줘야지, 천천히 제거하는 게 좋겠나. 가령 사람이 돌에 깔렸다면 빨리 치워야 살 수 있지 않겠나. 8,90% 국민이 활력과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거품을 빼야한다."

건강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부동산 거품이 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을 통해서 이뤄야 할 일이다.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을 통해 부동산 거품을 급격히 붕괴시키면 국민경제가 파국적 상황을 맞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부동산 거품의 급격한 붕괴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10년'을 보낸 이웃 나라 일본의 사례를 보면 이런 말이 실감날 것이다.

그러나 김씨는 돌에 깔린 사람의 비유를 들면서 하루속히 부동산 거품을 제거해야 한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백보를 양보하여 김씨의 주장처럼 국민 가운데 80~90%가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을 원하고 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부동산 거품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 보다 여러 갑절의 해악을 불러올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을 택할 수는 없는 일이다.

모름지기 시민운동가라면 국민들이 듣고 싶은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알아야 할 얘기를 해야 할 것이다.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을 통해 부동산 거품을 급격히 붕괴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국민들이 듣고 싶어 하는 얘기인지, 알아야 할 얘기인지는 김씨가 직접 판단해 보기 바란다.

'분양원가 공개'가 만병통치약?

한편 김씨의 주장을 차분히 따라가다 보면 도착하게 되는 종착역이 있는데 그 종착역의 이름은 바로 '분양원가 공개'이다. 김씨에 따르면 부동산 가격 앙등의 주원인은 불철저한 분양원가 공개 및 검증이다. 쉽게 말해 불철저한 분양원가 공개 및 검증이 주변 시세 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아파트 분양가 책정을 가능케 하고 이는 다시 주변 아파트 시세를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이런 전제 위에서 보면 김씨가 철저한 분양원가 공개 및 검증을 부동산 투기를 잠재우고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묘방으로 제시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김씨의 발언을 직접 살펴보자!

▲ 종합부동산세 자진 신고납부가 시작된 지난해 12월 1일 라이트코리아 주최로 열린 '조세저항 국민운동' 결성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15일까지 종합부동산세 납부 거부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힌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지금의 아파트값 하락은 노무현 정부의 정책적인 결과가 아니다. 정책효과로 부동산 가격이 안정된 것이 아니라 터무니없이 비싼 분양가에 대한 정보와 현재의 고분양가에서 투자를 해봤자 손해 볼 가능성이 크다는 자각이 주 원인이다. 특히 언론이나 시민단체에서 지속적으로 건설업체의 고분양가 속에서 엄청난 폭리와 거품이 존재하고 곧 거품 붕괴의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을 전망을 내놓으면서 지금 집을 사면 안된다는 인식이 확산돼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 오히려 참여정부보다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최근 분양원가를 공개하면서 집값 안정세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울시가 법정 공개항목 이외 60개 세부항목을 공개하면서 노무현 정부도 원가공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지 않나.

…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부터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분양된 서울 동시분양아파트의 분양가를 경실련이 검증해보니 평당 건축비가 3백만원 수준인데도 평균적으로 5백만원, 최고는 9백만원에 승인됐다. 이게 다 고건, 이명박 전 시장이 재임하는 기간에 서울시에서 분양승인 한 내용이다. 참여정부의 실정과 지방자치단체들의 무늬만 검증이 결국 사상 유례가 없는 부동산 망국을 현실화시킨 것이다."


야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김씨가 앞장서 전파하고 있는 '분양원가 공개' 프레임은 조중동의 '세금폭탄론' 및 '공급확대론' 프레임과는 다른 의미에서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안정을 저해하고 있다.

김씨는 분양원가 공개 및 이를 통한 분양가 인하가 집값 안정에 필수적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그러나 김씨의 이런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작년 4월 건교부와 지자체의 발표를 보면 전국의 주택은(공동주택+단독주택)은 약 1301만호에 달한다. 그런데 신규로 공급되는 주택물량은 전체 주택 총량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설령 김씨의 주장처럼 분양원가 공개 및 이를 통한 분양가 인하가 실현된다 해도 지금과 같이 투기적 가수요에 의해 기존 주택의 가격이 높게 형성된 상황에서는 분양가 인하의 효과가 전체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극히 제한적이다. 최초 분양자들만 엄청난 수혜를 입을 뿐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주변시세 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분양가는 투기적 가수요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이를 혼동한 나머지 분양원가 공개를 마치 집값 안정의 필수적 조치인 것처럼 주장하는 행위는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릴 뿐이다.

분양원가 공개는 건설업계의 부패 근절 및 투명성 제고를 위해서는 필요한 조치일지 모르나 집값 안정과는 별 상관이 없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후분양제의 도입도 그간 건설업체가 일방적으로 누리던 특권을 철폐한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여기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 옳지 않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김씨는 쉼 없이 분양원가 공개 프레임을 유포하고 있다. 이런 김씨의 노력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분양원가 공개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이 80%를 넘으니 말이다.

그러나 김씨의 빛나는 성취에 흔쾌히 박수를 보낼 수는 없다. 김씨의 성공이 부동산 시장 안정에는 무익할 뿐 만 아니라 오히려 유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자세히 살핀 것처럼 부동산 문제에 대한 김씨의 인식과 처방은 오류투성이다. 김씨가 고독한 몽상가에 머문다면 그것이 그리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김씨는 이미 한국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상징권력을 지닌 시민운동가다.

그런 김씨가 부동산 문제의 원인을 엉뚱한 데서 찾은 나머지 잘못된 처방을 제시한다면 한국사회가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너무 커진다.

따라서 이제라도 김씨는 기존에 자신이 제시했던 부동산 문제의 원인 및 해법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기존에 자신이 고집했던 프레임에서 벗어나 부동산 문제의 근본원인과 해법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에서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대자보와 뉴스앤조이, 다음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김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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