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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강재섭대표 등 지도부가 25일 밤 당사에서 재보선 개표방송을 지켜보다 결과가 참패로 나타나자 침통한 표정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보희

4ㆍ25 재보선의 개표결과를 지켜보는 열린우리당의 표정은 묘했다. 열린우리당은 분명 한나라당보다 더 참패한 정당이다. 55개 선거구 가운데 14곳에서만 후보자를 냈고, 그 가운데 기초의회선거 단 한 곳에서만 당선자를 냈으니, 참패도 이런 참패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도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정세균 의장은 줄곧 웃는 모습을 보였다. 애당초 열린우리당의 선전은 기대하지 않았기에, 열린우리당의 성적표보다는 민주당이나 국민중심당 같은 비(非) 한나라당 세력의 승리에 관심이 더 갔던 것이다. 그래서 열린우리당은 4ㆍ25 재보선결과를 비(非) 한나라당 세력의 승리라고 규정하며 반겼다.

4·25 이후 고개드는 지역주의 논리

이제 열린우리당의 기대는 4ㆍ25 재보선 결과에 따라 범여권 대통합 논의가 진전되는 상황으로 향하고 있다. 비(非) 한나라당 세력이 연대하면 한나라당을 이길 수 있음을 이번에 보았으니, 이제 범여권의 대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모습이다. 정세균 의장은 범여권 대통합을 위한 '제정당ㆍ정파 연석회의'를 제안했다.

실제로 이번 재보선 결과는 범여권 세력이 힘을 합하면 한나라당을 이기지 못할 것 없다는 자신감을 주었을 법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하곤 했던, 결국은 1대 1 양자대결구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범여권 대통합의 앞길이 그렇게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4ㆍ25 재보선 결과가 범여권의 대통합 논의를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는 하겠지만, 그 의미가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 25일 치러진 대전 서을 지역 보궐선거 개표결과 꾸준히 앞서나가는 국민중심당 심대평후보가 승리를 확신한 듯 주요 당직자들과 손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준호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범여권의 대통합 논의가 지역주의 정치에 기반을 둔 지역연합의 논리에 따라 전개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전남 무안.신안에서 민주당 김홍업 후보가 승리하고, 대전 서을에서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가 승리한 것은 호남과 충청이라는 지역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민주당과 국민중심당은 자신들이 주도하는 통합을 말하고 있다. 범여권 통합 논의에 있어서 민주당은 호남지역에서의 대표성을, 국민중심당은 충청지역에서의 대표성을 주장하는 상황이 예견된다. 그렇게 되면 결국 범여권 통합은 지역연합의 형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커진다.

민주당 박상천 대표는 이번 재·보선 지원유세 과정에서 "서부벨트(호남-충청연대)가 이루어지면 대선 필승"이라고 말해왔다. 이번 선거결과에 따라 호남- 충청연대가 적극 모색될 것으로 범여권 내부에서는 내다보고 있다. 그때 '호-청연대'의 주도권은 민주당과 국민중심당이 쥐고가려 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국민중심당 심대평 대표와 정운찬 전 총장은 서로가 "못 만날 이유가 없다"며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연대 가능성을 시사하고 나섰다.

열린우리당내 다수의 의견도 그러한 흐름을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일로 받아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12월 대선에서의 승리를 위해서는 각 세력이 갖고 있는 지역적 기반을 최대한 활용하고 통합의 시너지 효과를 얻어내야 한다는 논리가 될 것이다.

실제로 지난 1997년 대선에서 있었던 DJP 연합은 그같은 지역연합의 논리에 기초한 것이었고, 김대중 대통령을 만들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해 볼 일이다. 10년전 김대중 대통령이 지역연합론에 기대어 대선승리를 거두었다고 해서, 2007년에 대두될 지역연합론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는 없는 일이다. 자칫 우리 정치가 10년 전으로 뒷걸음질치는 일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 10년의 세월동안 우리 정치가 이루어낸 괄목할만한 개혁과 변화의 성과가 다시 무너져 내릴지 모른다는 우려가 든다.

▲ 25일 무안.신안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민주당 김홍업 후보가 개표 결과 압도적인 표차로 앞서 나가자 무안읍 사무소에서 지지자들의 축하를 받으며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형민우

'반(反)한나라'로 지역주의 정당화되나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반(反) 한나라당'이라는 기치는 과연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인가.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서는 다시 지역주의에 손을 내미는 행위까지 용서되고 정당화되는 것인가. 한나라당의 집권은 '절대 악'이고, 지역주의 회귀는 그것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현실인가.

현실정치에서의 어쩔 수 없는 딜레마일 수도 있다. 그러나 범여권이 추진하겠다는 대통합이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 가는 통합이 되려면, 그 과정에서 지역주의 논리는 제압되어야 한다.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서는 지역주의와 손잡는 것도 무방하다는 주장은 10년 전에나 통용될 수 있었던 도그마이다.

그럼에도 상황은 녹녹치 않아 보인다. 지금의 정치지형에서 민주당과 국민중심당이 등을 돌리는 통합은 결국 '도로 우리당' 밖에 되지 못한다. 그래서 민주당과 국민중심당이 지역적 대표성을 들고 나와도 뭐라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4.25 재보선 이후 고개들 들고 있는 지역주의 논리를 제압하지 못한다면, 범여권 통합은 지역연합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이념적.정책적으로 공통분모가 없는 잡탕세력이 단지 한나라당 집권에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하나가 되는, 원칙없는 통합이 생겨나게 된다.

사실 국민중심당이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까닭은, 그들이 한나라당이 아니라는 것 말고는 찾기 어렵다. 국민중심당은 이념적으로야 한나라당보다 더 보수적이면 보수적이었지, 결코 덜하지 않다. 그럼에도 범여권 통합의 한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연합에 기초한 통합은 정치사적 견지에서 볼 때, 발전이 아니라 명백한 후퇴이다. 그렇게 될 때, 지역주의에 바탕을 둔 신당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했던 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직계세력들이 어떠한 선택을 할지도 변수이다. 범여권 내부의 또 다른 분열을 낳을 수도 있다.

모든 통합이 선(善)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사에 의미있는 통합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어떠한 통합이냐는 물음에 자신있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이유로 지역주의를 정당화하려는 논리는 구시대적인 궤변일 뿐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태그:#지역보궐선거, #반한나라, #범여권, #지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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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 수술 이후 방송은 은퇴하고 글쓰고 동네 걷기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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