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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랜드 전경. 건물을 움직이고 지탱하게 하는 건 비정규직들이다.
ⓒ 강기희

@BRI@경칩날(6일) 강원도 정선의 날씨는 영하로 곤두박질쳤다. 며칠 전만 해도 철없이 날뛰던 봄은 이미 저만치 달아난 듯 했다. 해발 700m가 넘는 강원랜드 주변엔 눈이 쌓여있었다. 누가 뭐래도 강원랜드의 풍경은 겨울의 한가운데 있었다.

강원랜드의 뾰족지붕은 화려함과 날카로움을 함께 간직하고 있었다. 국내 유일 내국인출입 카지노와 하이원 스키장, 골프장 등 '도박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내고 가족중심의 고원레저 문화 창출을 표방한 강원랜드는 외관상으로는 평온해 보였다.

평일임에도 강원랜드의 주차장은 만원이었으며 외지 차량도 꼬리를 물었다. 그들이 찾는 곳은 카지노. 얼마의 돈을 준비했는지 카지노로 들어가는 걸음은 의기양양하다. 그와 달리 초췌한 얼굴로 카지노를 나서는 이의 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단식 투쟁 8일째'를 지나치는 무심한 발걸음

카지노가 있는 건물인 강원랜드의 지하. 직원들이 출입하는 건물 복도에 '단결투쟁'이라는 문구가 적힌 조끼를 입은 사내들이 있었다. 출입조차 힘겨운 건물로 들어서니 건물 벽엔 '투쟁 49일째'라는 문구와 '단식투쟁 8일째'라는 문구가 커다랗게 붙어있다. 그 옆으로는 투쟁의 목적과 요구사항 등이 적힌 대자보가 가지런히 붙어있다.

급하게 편 단식농성장 앞으로 강원랜드 직원들의 무심한 발걸음이 지나친다. 발걸음 멈추고 "수고한다"라는 말 한 마디 건네는 이들도 없다.

강원랜드에 근무하는 정규직의 당당한 발걸음 뒤로 날리는 먼지를 마시며 단식투쟁 중인 이들은 다름아닌 강원랜드 비정규직 노동조합 조합원들이다.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이는 차장훈(강원랜드 비정규직 노동조합 위원장)씨, 김희수(회계감사)씨, 신현성(조직부장)씨. 강원랜드와 용역계약을 한 업체에 소속된 비정규직이다.

이들은 강원랜드 용역업체인 아이서비스에 소속된 계약직들이다. 이들은 강원랜드 보일러·전기·기계 등을 담당한다. 이들이 손을 놓으면 강원랜드는 순식간에 귀곡산장으로 변한다.

차장훈 위원장의 얼굴빛은 파리하다. 애써 정신을 차리려 몸을 가눠보지만 입술을 달싹이는 것도 힘겨워 보인다. 소금과 물뿐인 극한의 투쟁 현장 앞으로 객실로 배달되는 음식 냄새가 지나며 코를 자극한다. 말을 걸기도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이 "단식투쟁이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힘들지요, 목숨을 건 투쟁이니까요. 그렇지만 우리는 이 투쟁을 멈출 수 없어요. 목숨보다 중요한 가족들이 굶어죽을 판인데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이들의 요구사항은 부당해고된 노동자 전원을 재계약과 고용안정 보장 등이다. 고용불안만 해소된다면 두 발 뻗고 잠들겠다는 이들은 예전에 광부였다. 그 때도 이런 대접을 받지는 않았다며 차라리 그 시절이 좋았다고 말한다.

▲ 단식투쟁 8일째를 맞은 노조 차장훈 위원장(사진 우측)과 노조원. 누가 저들을 투쟁의 길로 내모는가.
ⓒ 강기희
▲ 단식투쟁 중인 복도를 무심히 지나치는 발걸음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이다.
ⓒ 강기희
폐광 살리자고 들어선 강원랜드, 그러나 광부들은

폐광지역특별법으로 들어선 강원랜드는 광부들과 그들의 가족을 먼저 챙겨야 함에도 설립 취지의 근본을 잊었다.

강원랜드 정규 직원 중에도 지역 출신은 30% 남짓이다. 강원랜드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비정규직은 지역출신이 90% 가까이 된다. 광부일을 하던 이들은 비정규직이 고작이다. 그쯤 되니 지역 전체가 불안에 떤다.

불합리한 고용계약은 1년마다 이들의 목을 죈다. 다시 계약을 하려면 업체측에 잘 보여야만 가능하다. "일할 사람 얼마든지 있다"는 말이 이들을 가장 괴롭힌다.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업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무기이기도 하다.

광부 시절이 좋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도 그 때는 고용불안엔 시달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에 해고된 강원랜드 비정규직 노동조합 기능인지부 황상해 지부장의 연봉은 1750만원. 전문직종을 가진 40대 가장의 보수치고는 보잘 것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고용불안만 없으면 견딜 수 있다"고 한다. 자신들보다 못한 비정규직도 많으니 연봉의 적고 많음보다 중요한 것은 고용안정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불안에 떨던 이들이 결국 이번에 해고통보를 받았다. 강원랜드와 용역을 계약한 업체측에서 재계약을 하지 않은 것이다. 아이서비스에서 일하는 계약직 직원은 86명, 이번 재계약 결과, 업체측은 31명을 해고했다.

해고자들은 용역업체와의 재계약을 요구하며 투쟁에 나섰고 결국 단식까지 감행했다. 단식투쟁 중인 사람들의 현재 신분은 '무직'이다.

비정규직 노조? 무시하고 해고하면 그만

이번에 해고된 노동자들은 일반 비정규직과 달리 전문직 종사자들이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자격증만 해도 보일러 기능장을 포함해 29개 종목 90개나 된다. 이들을 해고한 업체측은 강원랜드를 가동시키기 위해 20여명의 대체 인력까지 투입시켰다. 업체측에서 투입한 대체 인력은 외부에서 수혈했다.

해고자들은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조합원이다. 노조는 작년에 합법적으로 만들어졌지만 강원랜드는 노조가 마뜩치 않았다. 노조가 그동안 십여 차례 상견례를 추진했지만 만나주지도 않았다. 지역의 시민단체들도 연일 성명서를 내고 강원랜드의 전향적 자세를 요구한다. 그럼에도 강원랜드는 묵묵부답이다.

강원랜드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와해시키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조합원과 계약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비정규직의 서러움을 극복하기 위해 만든 노동조합이 오히려 이들의 발목을 잡았다.

이렇게 파리 목숨보다도 못하다는 비정규직은 강원랜드에만 18개 협력업체에 1000여명에 달한다.

전국적으로 파리 목숨 대접을 받는 이들은 이들뿐 아니다. KTX 여승무원들의 투쟁은 해를 넘겨 지금도 이어진다. 조직이 갖추어지지 않은 일반 사업장은 이보다 더 심하다. 어느날 고용주의 말 한 마디에 직장을 떠나야 하는 이들도 많다. 이런 이들이 전국적으로 600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현실은 이렇듯 처절하지만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이는 많지 않다. 정부나 노동부에서도 답을 내놓지 않는다. 참여정부는 한술 더 떠 한미FTA 협정서에 도장찍을 날만 기다린다. 비정규직의 앞날이 안개 속을 넘어 암흑이다.

강원랜드의 '노사공동혁신운동', 비정규직은 어디에

강원랜드는 요즘 혁신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른바 'Best 2015 노사공동혁신추진단'이 그것이다. 강원랜드에도 곳곳에 걸어놓은 현수막에 "마음을 열면 혁신이 이루어집니다"라는 글귀가 적혀져 있다.

그러나 이 혁신 운동에 강원랜드 비정규직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정규직과 강원랜드만의 혁신 운동인 것이다. 강원랜드 비정규직은 마음을 열어야 할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강원랜드를 위해 일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할까. 비정규직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광부들의 무덤이 지척인데 전직 광부들이 그런 대접을 받는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곡기를 끊게 하는 일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그들이 외친다. "해고를 하느니 차라리 우리의 목을 쳐라!"라고. 강원랜드를 나서는데 찬바람이 얼굴을 친다. 다시 겨울이다.

▲ 혁신 운동의 대상에서 제외된 비정규직의 서러움.
ⓒ 강기희

덧붙이는 글 | 강원랜드비정규직노동조합 홈페이지는 http://www.klheart.org 입니다. 현장을 찾아 기사를 작성한 시점(6일)의 상황은 8일 현재까지 변화가 없으며, 다만 건물 벽에 붙은 문구가 '투쟁 51일째', '단식투쟁 10일째'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태그:#강원랜드, #비정규직, #단식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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