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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6일자 11면에 게재된 산청 간디고등학교 관련 기사.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것을 알리지 말아 달라."

간곡한 청에도 불구하고 <중앙일보> 기자는 기사('산청 간디학교' "대안교육 무너진다" - 첫 서울대 합격 자랑 안해')를 썼다. 경남 산청군 신안면 외송리에 자리를 잡고 있는 대안학교 간디고등학교 이야기다.

이 학교는 올해 처음으로 서울대 합격자를 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한사코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기를 꺼려했다. 오죽하면 "알리지 말아 달라"고 기자에게 통사정을 했을까. 기자라는 직업이 그런 점에서는 참 비정하다. "알리지 말아 달라"는 주문이야말로 기사거리라고 생각했을 터이니. 어쩌겠는가. 그게 기자의 숙명인 것을.

다른 학교 같으면 자랑스러워했을 서울대 합격 사실을 왜 알리지 않으려 했을까? "대학에 가지 않고 사회에 진출하는 학생도 똑같이 배려"하기 위해서란다. 무엇보다 "대안교육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교사들은 회의를 거쳐 언론매체 취재에 응하지 않기로 했다. 서울대에 합격한 학생 또한 "기사를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취재를 거부했다. 그런 즉 <중앙일보>의 이 기사는 '취재를 거부당한 기사'다.

그래서 이 기사는 간디학교에 대한 풍경을 전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서…서울대 우리 학교에서는 말도 안돼", "우리 학교 분위기가 이상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는 아이들의 학교 홈페이지 글들이 그 풍경을 잘 전하고 있다. 해마다 40명의 졸업생 중 70%는 대학에 진학한다고 한다. 나머지 아이들은 비정부기구 활동가나 목수, 농부, 디자이너, 음악가 등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내 인생을 당당하게 꾸려가는 자유인"의 길을 택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혈세 10억 지원하는 사설 기숙학원 보도한 <한국>

<한국일보>는 전혀 다른 풍경을 전한다. 강남의 학원이 부럽지 않은 '공립학원' 풍경이다. 공립학원? 세상에 이런 학원도 있나? 순창 옥천인재숙에서 이야기다(국내 첫 공립학원 '대입 반란' - 순창 옥천인재숙 명문대 20명 합격).

군에서 연간 10억 원의 예산을 지원하는 사설 기숙학원이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군립 학원으로 운영했지만 "세금으로 소수 학생만을 위한 사교육을 조장하고 평등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군수가 제소당해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기소유예)를 받은 다음 학원으로 정식 등록했다고 한다. '직영'에서 '지원'으로 방식을 바꾼 셈이다.

군내 중3에서 고3까지 학교장의 추천과 자체 선발을 통해 학년별로 50명씩 200명을 기숙시키면서 '방과 후 특별교육'을 시키고 있다. 서울과 광주 유명학원의 강사들이 초빙됐다. 두 명이 올해 처음으로 서울대에 합격했다. 이들 이외에도 22명이 고려대와 연세대, 이화여대등 수도권 유명대학에 들어갔다. 지난 4년 동안 40억 원 이상을 쏟아 부은 성과다.

교육문제로 인구가 급감하는 악순환을 막기 위해 군수가 결단을 내렸고, 유죄판결에도 불구하고 그 뜻을 접지 않았다. 매년 줄던 순창군 인구는 2004년 332명이 늘었다. 2006년에는 473명이나 늘었다. 옥천인재숙 효과다. 그런데 2005년에는?

최소한의 경비도 추렴하기 어려워 한 때 학교 운영이 위태로웠던 간디 학교. 빠듯할 군비에서 10억 원씩 투자한 순창 옥천인재숙. 서울대에 간 것이 더욱 자랑일 수 있지만, 그것을 애써 드러내지 않으려는 간디학교. 교육단체들의 비판에도 어쨌든 그 성과로 말하겠다는 순창군.

길은 어디에 있는가? 두 갈래 길에서 어디로 가야 할까? 다른 길은 없을까? 오늘 두 개의 학교(학원) 풍경이 조금은 서글프게 겹쳐진다.

태그:#백병규, #미디어워치,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조간신문 리뷰, #한꼭지 조간신문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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