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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권 V가 18일 개봉한다. 사진은 과거 콘텐츠문화센터에서 열린 태권 V 전시회 장면 중 일부.
ⓒ 오마이뉴스 김대홍
두근거림... 어릴 적 온통 '태권 V 태권 V'

1976년 7월 24일 <로보트 태권 V> 개봉. 서울 관객 18만. 그 해 한국영화 관객 동원 2위. 1976년 12월 13일 <로보트 태권 V> 제2탄 우주작전 서울 관객 9만. 1977년 7월 20일 <로보트 태권 V> 제3탄 수중특공대 서울 관객 5만 5천…. 2006년 1월 18일은?

오는 18일 <로보트 태권 V>가 디지털로 복원돼 전국 150여개 극장에서 개봉한다. 두근거린다. 30년 만의 만남이니 그럴 수밖에. 그 때 미래를 결정하는데 태권 V는 아주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꿈은 항상 과학자였다. 다른 남학생들도 대부분 꿈이 과학자였다. 이유는 태권 V 때문이었다. 애니메이션 속 로보트를 직접 만들겠다는 책임감 또는 희망 때문이었다. 게다가 나는 태권 V를 만들어서 김일성을 무찌르고 북한 백성들을 구하겠다는 아주 황당한 사명감까지 갖고 있었다.

그 시절 많은 남학생들이 태권도를 아주 열심히 배웠다. 홧김에 때려치우긴 했지만 나도 태권도장을 한 달 정도 다녔다. 역시 태권 V 때문이었다. 주인공 훈이의 날아 차기는 아주 환상적이었다. 태권도를 배우면 그처럼 화려한 발차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환상을 품었다(<마루치 아라치>의 환상적인 태권도도 빼놓을 순 없다).

골목길을 달릴 땐 '빰빠라 빰빠빠'를 외치곤 했다. 태권 V 주제가를 부르면 힘이 난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무튼 절로 그런 노래가 나왔던 것 같다.

▲ 과거 잘 나갈 때 음반, 장난감 등 태권 V 부가상품이 만들어졌다.
ⓒ 오마이뉴스 김대홍
제일 먼저 본 만화책은 태권 V였다(같은 시기 <철인 깡타우>를 샀기 때문에 정확히 뭐가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태권 V 테이프를 구입했다. 태권 V 줄거리를 옮긴 테이프였다. 비행접시가 나올 땐 '쉬이익' 하는 소리가 나오고, 깡통 로보트가 나올 땐 '나는 나는 깡통 천하무적 깡통'이라는 노래가 나왔다. 이를 테면 뮤지컬 형식의 테이프였다.

그 테이프를 중학교 때까지 갖고 있었다. 아쉽게도 지금은 없다. '이종환의 디스크쇼'에 한창 빠져있던 시절 마음에 드는 곡을 녹음하는데 썼기 때문이다. 인생의 오점 중 하나다.

그런데 지금 기억을 되돌려볼 때 참으로 의아한 것 중 하나는 태권 V 조립 제품을 본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프라모델 조립을 한창 하던 시절이었음에도 이상하게 태권 V, 깡통 로보트, 메리와 같은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들을 장난감으로 본 기억이 없다. 제품이 출시되지 않았거나 인기가 없었거나 둘 중 하나였던 것 같다(80년대 들어 전혀 다른 모양의 태권 V 조립 제품이 나오긴 했다).

아무튼 태권 V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 귀환한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다. 더불어 태권 V를 볼 수 있는 비밀의 장소들을 소개할까 한다.

▲ 태권 V는 4탄까지 대본이 완성됐지만 3탄까지만 만들어졌다.
ⓒ 오마이뉴스 김대홍
춘천애니메이션박물관에 미개봉 대본 있어

춘천애니메이션박물관에 가면 태권 V와 관련된 다양한 비밀들을 엿볼 수 있다. 이 곳에 소장된 원화 대본을 보면 원래 <로보트 태권 V>가 반공 목적으로 제작됐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엔 '반공 주체사상을 고취하기 위한 계몽성 작품'이란 글이 적혀 있다.

또 미개봉 대본도 볼 수 있다. <태권 V> 시리즈는 3탄까지 상영됐지만, 시나리오는 4탄까지 나왔다. 박물관엔 지상학 각본의 '지하 대탈출'이란 제목의 시나리오가 전시돼 있다.

여기선 초창기 태권V가 마징가를 흉내 내고자 한 흔적도 볼 수 있다. '마징거 태권 V'라는 이름이 붙은 각본엔 그레이트 마징가와 거의 차이가 없는 로보트가 등장한다. 이 각본에 대해 춘천애니메이션박물관 한승태 학예연구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처음 김청기 감독이 태권V 도안을 그렸을 때 나온 모양은 지금 상영된 모양이 아니었습니다. 그레이트 마징가의 모양을 그대로 가져왔지요. 이름도 '마징거 태권'이었구요. 그런데 김청기 감독도 모방에 대해서 심적 갈등을 많이 겪었던 모양입니다. 당시 스튜디오가 세종로에 있었는데, 그 곳에서 이순신 장군 동상이 보였거든요. 그 모양을 보고 저거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투구 모양이 이순신 장군 동상에서 가져온 것이지요.

태권V를 일본 로보트의 모방이라고 혹평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태권V가 일본 로보트에 영향을 끼친 바도 큽니다. 원래 일본 로보트물에서는 무술 로보트가 없었어요. 모두 무기 로보트이었거든요. 그런데, 김청기 감독이 무술 로보트 개념을 도입하자, 일본에서도 무술 로보트 개념이 만들어졌어요. 문화라는 게 일방적인 것은 없거든요."


▲ 태권 V 조종석은 가슴이다. 머리에 있는 것보다 안전하지 않을까?
ⓒ 오마이뉴스 김대홍
부천만화박물관, 태권 V 조종석은 어디?

도대체 태권 V의 조종석은 어디일까. 답은 가슴이다. 마징가, 그랜다이저, 그레이트 마징가 등 많은 로보트들이 머리에서 조종하는 데 반해 태권V는 제비호가 머리 쪽으로 도킹하긴 하지만 몸통으로 조종석을 이동하여 조종하는 형태다. 그래서 조종석의 위치는 가슴이 된다.

태권 V 조종석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부천만화박물관이다. 여기엔 태권 V 조종석이 만들어져 있다. 태권 V 가슴 모양 속 조종실이라면 아주 실감나겠지만 아쉽게도 그렇진 않다. 또 주인공 훈이와 영희 대신 김박사(?)가 타고 있다. 역시 아쉽다. 세 개 모니터에선 수시로 태권 V 영화 도입부가 흘러나온다. 퀴즈 하나. 태권 V 회심의 필살 기술인 3번 버튼은 사진에서 과연 어디일까.

로봇박물관, 태권 V가 모방이면 아톰은?

태권 V는 아주 오랫동안 마징가 Z를 모방했다는 비난에 시달려왔다. 태권 V 팬이라면 지긋지긋해서 떼어내고 싶은 대목이다. 그렇다면 서울 대학로에 있는 로봇박물관을 방문해봄직하다.

서울 대학로에 있는 로봇박물관은 40개 국가의 로보트와 고전 캐릭터 3500여 점이 전시된 곳이다. 2층의 1전시관과 3층의 2전시관, 3D 입체 영상실 등으로 나눠져 있다.

이 박물관에서 눈여겨볼 점은 태권 V 표절에 대한 정보다. 일본 만화영화 표절이라는 비판에 시달려온 '로버트 태권V'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글을 만나게 된다. '로버트 태권V는 최상의 응용작…한국적 투구모양…태권 동작'이라는 글이 전시돼 있고, 한 편에는 '아톰도 모방'이라는 제목아래 '아톰은 미키마우스와 슈퍼맨의 모방'이라는 내용이 대비돼 전시중이다.

'국가이미지 경쟁관'에는 일본, 미국, 한국, 중국 네 나라 대표 캐릭터가 전시 중인데, 아톰, 슈퍼맨, 로버트태권V, 서유기 등이 각국 대표역할을 맡았다.

▲ 남산만화박물관에 가면 앙증맞은 태권 V를 만날 수 있다.
ⓒ 오마이뉴스 김대홍
문화콘텐츠센터와 남산 만화박물관

서울시청 앞에 있는 태권 V의 높이가 3.5m. 이에 못지않은 위용을 자랑하는 태권 V가 서울 역삼동 문화콘텐츠센터에 있다. 역삼역 6번 출구에서 차병원 쪽으로 1분가량만 걸어가면 당당하게(?) 벽에 박혀 있는 로버트 태권V를 볼 수 있다.

내부에선 로버트 태권V의 거대한 손바닥 위에 올라탄 철이와 영희, 김 박사, 깡통 로보트의 모습이 손님을 맞이한다.

남산 만화박물관의 태권 V도 빼놓을 수 없다. 문에 태권 V 축소 모형이 서 있으며, 2층 입구에도 태권 V가 전시돼 있다. 재미있는 점은 2층에 있는 로보트다. 얼굴 크기가 거의 상반신과 흡사해 전체적으로 3등신이다. 아기 체형을 떠올리게 해 위협감보다는 앙증맞은 느낌을 준다.

태권V 관련 X-파일

▲ <태권 V>는 <피터팬> 영향을 받았다?

1953년작 <피터팬>은 국내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그런데 이 작품은 단순히 인기를 끌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애니메이터들이 이 작품에서 큰 감명을 받아, 한국 애니메이션의 밑거름이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청기 감독도 이 작품에 큰 감명을 받았다. 팅커벨이 하늘을 나는 장면을 본따, < 태권V >에서 메리가 하늘을 비행하는 장면을 집어넣었다.

▲ 태권V 영희는 내숭녀?

태권V의 주인공은 훈이와 영희다. 훈이의 아버지인 김박사가 영희를 며느릿감으로 인정할 정도로 훈이와 영희 사이는 돈독하다. 그런데 아주 우직해 보이는 훈이와 달리 영희는 타고난 내숭녀. 아버지가 납치당했을 때 훈이 앞에서는 우는 척하지만 훈이가 없을 땐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인다.

▲ <태권 V>와 <마징가>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애니메이션 팬들이 많이 하는 내기 중에 로버트 태권 V와 일본 대표 로봇인 마징가 Z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가 있다.

로버트 태권 V의 손을 들어주는 이들은 신장의 차이를 말한다. 마징가 Z가 18m, 그레이트 마징가가 25m인데 반해 로버트 태권 V의 키는 무려 35m나 된다. 격투를 벌일 때 마징가 Z가 아무리 팔을 뻗어도 닿지 않는 거리에서 로버트 태권 V는 유유히 펀치를 날린다는 이야기. 또 72년 TV 시리즈에서 첫 선을 보인 마징가 Z에 비해 로버트 태권 V는 4년여 뒤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마징가 Z를 지지하는 이들은 힘의 차이를 이야기한다. 로버트 태권 V가 38만8900마력인데 비해 마징가 Z는 65만 마력으로 두 배 정도 힘이 강하다. 그레이트 마징가는 무려 130만 마력이나 된다. 일본의 기술수준이 한국보다 한참 높았기 때문에 당연히 마징가 Z가 이긴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몇몇 사람들은 마징가 Z가 수소폭탄급의 자폭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마징가 Z가 최악의 경우에도 비길 거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정답은 두 로봇이 겨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알 수 없다이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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